예전에 나는 가능성이 보이는 남자를 지나치지 못했다. 누군가 호감이 생기는 사람을 만나면 나는 기어이 그와 약속을 잡았다. 그와 대화하다 보면 그 역시 나에 대한 감정이 생기는 걸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럼 그때부터 게임은 시작되었다. 사적인 만남이 늘어가고 대화가 딥해지면 그 사이에 생기는 서로의 생일과 같은 특별한 날에 상대는 고백을 해왔다. 하지만 그때부터 그에 대한 마음은 급격히 식었다.
왜인진 모르겠다. 당시에는 그런 것들이 재미의 요소로 작용했다. 한 명을 그러고 나면 나는 다른 사람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아 다음 상대를 찾아 헤맸고 그런 다음도 어김없이 동일했다. 몇 번의 술자리,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상대가 취하는 행동은 중독성이 있었다. 나는 그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게 당시에는 나를 증명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당시 몇십 명이던 과 동기 중 수치화되어 나의 인기순위를 가늠해 볼 수 있었고 그들이 내 시야에 흘끔흘끔 들어오는 일이 생기면 또다른 시작이었다.
하지만 그건 흥미는 있을지언정 할수록 허무감이 엄습해 왔다. 결국 그런 것들도 끝없는 반복 속의 일원으로 존재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다음에는 '더 이상 이래선 안 되겠다'라는 생각에 좀 더 긴 연애를 시작했다. 어김없이 그를 어느 정도 알았다고 생각한 순간엔 권태가 찾아왔으나 그런 시간을 지나야 더욱 견고해지는 것이라고 책에서 읽은 구절과 누군가 말했던 경험을 토대로 조금 더 길게 이어지게 해 봤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같은 공간에 있는 어느 무료한 오후의 순간을 참을 수가 없어 어느 날은 그에게 나가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었다. 반납할 책이 있다는 이유로 그를 폭우가 쏟아지던 날 내보내곤 나서 집 안에서 혼자 생각했다. '타인의 조언이 쓸데없는 것이었을까, 내가 문제인 걸까, 아님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아서인가' 결국 나는 그와 헤어지고 말았다.
그 이후에는 누군가 가능성이 보이는 사람을 만나도 가만히 있게 됐다. 그건 어쩌면 더 명확하기도 했다. 내가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아도 상대방은 기어이 내게 와닿곤 했으니까. 하지만 지겨움은 어김없이 그를 밀어내게 했다. ‘가능성을 보였던' 누군가가 내게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아도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되기도 했다. '번거롭지 않으니 얼마나 좋아'라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