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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아 Dec 18. 2024

식욕의 허망함

어떤 것을 욕망하고 그것이 충족되면 느껴지는 안도감에서 이어지는 지겨움은 지독하게도 날 괴롭혔다. 그건 어떤 목표를 달성하고 나서도 그랬고 어떤 사람을 가졌다고 생각할 때도 느껴졌다. 어릴 때부터 날 관통해 왔던 건 이 끝없는 순환고리였다.




무료한 오후였다. 별달리 할 일도 없이 2시간을 기다리면 퇴근할 수 없었다. 그 순간 별안간 허기가 몰려왔다. 간단한 주전부리로 지울 수 있는 허기였다. 하지만 가공식품 등 쓰레기 음식은 먹기 싫었다. 영락없이 2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집 냉장고는 텅 비어있는지 오래됐지만 장을 봐서 요리하기도 번거로웠다. 역시나 어플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뜨거운 국물이 플라스틱용기에 녹아 나오는 것도 싫어서 피드를 계속 내렸다.


굴보쌈은 5만 원이 넘는 가격이어서 싱글이 먹기에는 과했지만 가격이 비싸다고 굴을 먹지 못하는 게 더 서글플 것 같았다. 퇴근 전 시켜놓으니 이미 도착했다는 알림이 왔고 아직 퇴근은 10분 남아있었다. 음식이 식고 있다는 생각과 강해진 식욕이 춤을 췄다. 지문을 찍으러 내려오다 후배를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다. '따듯해 보이시네요' '날이 추워서' 퍼를 입은 내가 말했다. '집에 어떻게 가요?'라고 묻자 '요 앞이라서 자전거 타고 가요. 선배는요?' '난 차 타고' 대화를 마치고 차를 달려 집에 도착하니 음식은 덩그러니 현관 앞에 놓여 있었다.


플라스틱박스는 네 박스였다. '너무 양이 많은데 누구 불러야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과거 누군가를 불렀다가 그가 자신에게 마음이 있는 걸로 오해해 곤욕을 치렀던 일이 기억났다. 그런 생각들은 결국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것일 뿐이다. '누구랑 같이 먹으면 좋을 텐데'라는 것도 음식으로 막상 배를 채우면 그런 감정들은 희미해진다. 쌈을 싸서 굴보쌈을 입에 넣는 첫 순간 함께하고 싶단 갈망은 쌈을 쌀수록 옅어진다. 그래서 허기짐이 포만감으로 변했을 때는 '누구는 무슨, 다 한때의 감정일 뿐이야'라며 잠시나마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후회했다. 결국 누군가 있어도 그와 함께 먹은 후에는 나는 권태감에 시달렸으며 그가 다시 그의 공간으로 가줬으면 좋겠다고 한 과거가 생각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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