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일이 없는 하루였다. 최근 그렇다. 회사에서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고 팀장은 요새 다른 것에 혹해있어 방해하지 않는다. 점심에는 도서관 가서 책을 빌려왔다. 기존걸 반납하고 읽고 싶었던 걸 빌려온 다음 식당에서 밥도 맛있게 먹었다. 좋아하는 음악도 들었고 나름 연구도 했다. 그런데도 채워지지 않는 건 회사에 시간을 묶여 있어서 인가.
어릴 때부터 욕심이 많았다. 늘 최고여야 했고 돈에 대한 욕심도 많았다. 근데 이루고자 하는 게 많으면 필히 성취되지 못하는 것도 많다는 것과 동일하고 그럴 때마다 좌절했다. 시간이 지나면 그 감정이 옅어진다는 걸 알지만 여전히 괴롭다. 더 많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갈망은 자책으로 이어지기도 하였고 그때 그랬어야 한다는 후회로 바뀌기도 했다.
하루하루가 평범하게 흘러가는 나날이고 누군가는 그런 삶에 감사해야 한다고 하지만 감사하지 않다. 자존심도 세고 말로는 계급 따위 다 필요 없다고 하면서도 누군가가 위에 있는 걸 보면 부럽다. 그런 상위에 있는 것이 수많은 절망을 밟고 일어서서임을 알지만 내 절망은 겪어낼 때마다 아프다.
기준이 높아 내 잣대로 세상을 보고 타인을 평가하면서도 누가 나한테 평가를 내리는 건 또 극혐 한다. 이런 나의 이중잣대도 넌덜머리가 날 때도 있다. 어쩌면 사람들을 싫다고 하는 게 내가 싫어서일 수도 있다. 항상 최고여야 하는 내가 현실에선 평범한 사람이고 그걸 인정해야 할 때면 그 괴리감은 날카롭기만 하다.
누군가와 함께하고 싶다가도 누가 옆에 있을 때의 피로감을 생각하면 혼자인 게 낫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자기의 노후준비를 해나가는 싱글을 보면 멋있기도 하지만 또 가족을 이뤄 열심히 나아가는 사람을 보면 그것 또한 부럽다. 난 이제 사람을 못 믿겠는데 저 사람은 어떻게 사람을 믿어서 가족을 이룬 거지. 물론 그 끝이 찢어질 수도 있겠지만.
삶이 아무런 의미도 없단 걸 안다. 돈이란 가치는 죽을 때 사라져 버리는 거지만 그래도 불안이란 감각이 여전히 짓눌러 더 많이 가져야만 하고 그게 피곤해 좋아하는 걸 하자고 하면서도 한편으론 의심하고 있다. 이렇게 기분이 엉망일 땐 될 대로 돼라 싶다. PMS 때문인가도 생각하면 여자인 것도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