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회사, 나는 로봇!

표현하지 않습니다.

by 이서진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선 공부를 해야 된다고 합니다.

잘 살기 위해서는 돈을 아껴서 써야 된다고 합니다.

참는 자에게 복이 온다고 합니다.

...

이렇듯, 한 개를 얻기 위해선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됩니다.

마찬가지로 '내 멋대로 회사를 다니기'위해서도 몇 가지 감수해야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몇 가지 중 지난 글에서

첫 번째, '회사에 기대하지 않습니다!'라는 주제로 말씀드렸습니다.

https://brunch.co.kr/@lovebero/255

오늘은 궁극적으로 회사를 편하게 다니기 위해

우리가 감수해야 되는 두 번째! 바로, '회사에서는 감정 표현을 하지 않습니다!'입니다.


대다수 직장인의 출근시간은 오전 9시입니다.

8시 50분, 혹은 회사 정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자기 자신에게 마법을 겁니다.

"나는 감정이 1도 없는 로봇이다! INPUT - OUTPUT를 무한 반복하는 기계다!"


회사에서 여기저기 치이다 보면 정말 로봇으로 변해버리고 싶은 순간이 많습니다.

내용은 똑같은데 그놈의 서식! 따위에 이리저리 결재를 반려하는 상사님들.

내가 물건을 만든 것도 아니고,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온갖 다양한 욕을 퍼붓고,

비만 오면 우울하다며 전화 와서 진상 부리는 고객님들.

시도 때도 없이 떨어지는 지시사항에 사랑하는 내 새끼 잠든 모습만 보게 만드는 저~위의 간부님들.

로봇으로 변하면 덜 힘들고 속상할 텐데 인간인 우리들은 결국 감정에 휩쓸리게 됩니다.

비록 정말 로봇이 될 수는 없겠지만 노력하면 조금은 덜 속상할 수 있습니다.


그 노력의 첫 번째, 사람에 대해 '좋고, 싫음'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지난번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회사 동료는 '찐 친구'가 아닙니다. 잠시 이해관계가 맞아 내 옆에 있게 된 '직장 동료'일 뿐입니다. 그냥 잠시 옆에 있는 사람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기엔 우린 너무 바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얼마 뒤 나와 어떤 관계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습니다.

'난 네가 싫어!'라는 나의 유치한 감정을 상대방이 느끼도록 행동했는데, 훗날 그 상대방이 내가 도움을 구해야 될 부서로 이동했거나, 초고속 승진을 해 내 상사로 올 수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네가 너무 좋아~'라고 표현을 했던 사람이 나의 경쟁 부서로 옮기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동료에게 느끼는 '좋고, 싫은'감정은 순수한 감정의 차원이 아닙니다. 그저 그 사람과 내가 업무로 엮이지 않은 현재 상황을 대변하는 단어일 뿐입니다. 동료와의 관계도 이런데 하물며 상대방이 상사라면 감정표현을 더욱더 삼가여야겠죠. 후배도 마찬가집니다. 존경받는 선배가 되기 위해선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믿음을 후배에게 심어줘야 합니다.

특히, 누군가 당신에게 '그 사람 너무 나쁘지 않아?'라며, 동의를 구하는 질문을 하는 경우를 조심해야 됩니다. 이때 '응. 나도 그 사람하고 일해 봤는데 정말 나쁘더라.'라고 동조하지 말고 '그런 일이 있었구나... 요새 네가 힘들겠구나.'정도로 슬~쩍 넘어가야 됩니다.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에 공감 해 주지 않은 당신에게 서운한 감정을 느낄 수도 있지만, 당신을 신뢰하는 마음은 더 커질 것입니다. '아... 이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내 욕을 안 하겠구나.'라고 믿게 됩니다.

상대방과 친해지기 위해서 억지로 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는 경우가 있지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회사에서는 공감보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사람을 신뢰한다는 것을! 공감보다 신뢰가 중요하다는 것을!


둘째, 자신의 업무를 '좋아한다고, 싫어한다고' 표현하지 않습니다.

업무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남들 보기에 멋져 보이는 업무 Vs 초라한 업무

깔끔한 업무 Vs 잔손이 많이 가는 업무

적성에 맞는 업무 Vs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


일은... 그냥 합니다. 회사에서 시키면 일을 하고 월급을 받습니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음료수가 내려오듯, 일도 그냥 합니다. 개인적으로 더 선호하는 업무가 분명히 있을 수 있지만 일단 정해졌으면 그냥 해 봅니다. '나를 그런 부서에 보내다니! 내가 어떻게 저런 일을 해!' 등 투정 부리는 모습을 주변에 보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회사든지 한번 결정된 인사명령, 업무분장은 변경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다음 인사시즌까지 기다려야 됩니다. 짧으면 반년, 길면 수년 동안 찡그리는 표정을 계속 보인다면 회사에서 당신의 이미지는 '투덜이'로 찍힐 뿐입니다. 그리고 주변의 동료들은 당신을 구제할 능력이 없습니다.

투덜거리지 말고 다음 인사이동 시기에 맞춰 자신을 PR 하는 자료를 만듭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잘하는지 정리한 후 조용하고 강력하게 인사부서에 제출합니다.


업무에 대한 감정은 표현하지 않고 조용하면서도 강하게! PR 하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셋째, 삶에 대한 가치관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삶에 대한 이상향, 돈에 대한 생각, 정치적 성향, 가족의 의미 등 업무와 상관없는 개인의 사생활과 삶의 이상향 등을 회사에 공개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회사는 나의 꿈과 가치관을 존중하지 않으니깐요. 자신도 모르게 흘린 개인적인 성향이 훗날 중요한 업무의 적임자를 찾을 때 당신을 배제시키는 구실이 될 수 있습니다. 회사란 개인의 약점을 다독이기보다 후벼 파는 곳입니다.

어차피 깊어지지 않을 인간관계를 위해서, 연차를 조금 덜 미안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복잡한 일에서 당장 배제되기 위해서 당신의 소중한 생각을 '공개'하지 않길 바랍니다.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것'은 제가 가장 안 되는 것 중 하나입니다.

낙엽이 떨어지는 것만 봐도 울고 웃던 여고 시절도 무덤덤하게 보낸 저인데,

아들을 출산하면서 호르몬이 어떻게 변했는지 시도 때도 없이 북받치는 감정과 눈물을 통제하는 게 너무 어려워졌습니다. 갑자기 울어서 주변 사람을 난감하게 하고 부끄러워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적은 이 글은,

회사에서 '시크'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깔끔하게 근무하기 위한 필수요소지만

제 스스로 다짐하는 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16년 동안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존경하고 싶은 상사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당신이 감정을 표현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당신을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구설수에 오를 일이 적습니다.

사람들에게 당신의 감정을 궁금하게 만들어 당신에게 먼저 다가오게끔 만듭니다.

결국, 정말 중요한 시기에 당신이 스스로 원하는 포지션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명심하십시오!

내일부터 회사에 들어서는 그 순간, 당신은 감정이 없는 로봇이라는 것을!


우리는 연구를 거듭한 끝에 최근 분업이라고 하는 위대한 문명의 발명품을 완전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에 잘못된 이름을 붙이고 있다. 올바르게 표현하자면 일이 나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작은 부분으로, 작은 덩어리로, 작은 조각으로 나뉜 것이다. 그래서 각자에게 남은 판단력도 줄어들어 핀 하나 못 하나도 온전히 만들지 못하고 고작해야 핀 끝이나 못대가리만 만들 수 있게 되어버렸다.
-러스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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