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그리고 1만 시간을 투자하면 그 분야에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1만 시간의 법칙!'도 있다.
과연 '노력'이란 것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줄까?
박용철 작가님의 '감정의 습관이다'라는 책을 읽었다. 공감됐다. 읽으면서 스스로 많이 반성했다.
불행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습관처럼 다시 슬픔으로 돌아오는 나 같은 사람들!
하지만 계속 슬픔에 머무르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나는 무엇인가를 계속해야지 우울감이 줄어들 것 같아서 되도록이면 가만히 있지 않는다.
가만히 앉아만 있지 말고 뭐라도 같이 해보자는 친구의 권유로 피아노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다행히 회사 근처에 피아노 학원이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 퇴근 후 레슨을 받는다. 최근에 유행하는 성인 피아노 학원이 그렇듯 체르니부터 배우는 게 아니라 수강생이 원하는 곡을 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내가 고른 곡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한번 들은 후 사랑하게 된 피아졸라의 'Oblivion(망각)'이었다. 다소 어두운 분위기지만 수십 년간 사랑했던 곡이니까 멋지게 완주하고 싶어서 선택했다.
하필이면 못하는 것(피아노)을 사랑한 탓에 피아노 선생님 여러 명을 거쳤지만 장애인인 나의 손 모양을 바르게 고쳐주려던 선생님은 없었다. 원래 지체장애인이니까 악보대로 치기만 하면 '잘 쳤다'며 칭창 해 주셨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선생님은 조금 달랐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내 모습을 보신 선생님께서는,
"서진님이 피아노를 치는 손 모양이 예쁘지 않은 것은 근육의 문제라기 보단 습관 때문인 것 같습니다. 피아졸라의 곡은 강하고 깔끔하게 연주해야 되기 때문에 기본이 탄탄해야 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뜬금없이 '하농'을 연습하자고 하셨다. 피아졸라의 망각 악보를 앞에 두고 졸지에 하농을 연습하는 신세가 됐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드디어 내게 맞는 스승님을 만난 것 같았다.
내가 남편에게 반한 것도 비슷한 경우였다. 신입직원 오리엔테이션 때 팀을 나눠 등산을 했다. 힘들다고 주저앉아 있던 내게 "서진아, 이 등산은 우리 조원들이 1등 하는 게 목표가 아니고 함께 끝까지 올라가는 거야. 그러니까 쉬엄쉬엄 네 속도에 맞게 같이 올라가자!"라고 말해 줬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잠시 다른 얘기로 빠졌지만) 물론, 업무 때문에 1주일에 30분 레슨시간 외 따로 연습을 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일주일에 하루는 피아졸라, 하농과 만나고 있다.
다음으로 내가 하는 것은 런데이!
그동안 내가 올렸던 여러 글에서 '런데이'에 대한 언급을 여러 번 했었지만 최근엔 거의 운동을 하지 못했다.
가을은 공무원들에겐 가장 바쁜 계절이기 때문이다. 내년도 본예산 편성, 국정감사와 행정감사, 각종 자료 제출과 행사 개최!
야근은 기본, 주말 중 하루라도 보존할 수 있으면 땡큐! 하지만 나는 거기에다가 약과 잠에 취하면서 운동에 대한 의욕이 제로가 됐기 때문이다.
어제 오랜만에 운동을 다시 했다. 달리기는 시작하기가 어렵지 일단 뛰면 마음까지 건강하게 해주는 운동임은 틀림없다. '달리기를 멈추면서 약물에 중독됐으니 달리기를 다시 시작하면 약물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다음으로 소개할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나의 노력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둥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게 없을까?'라는 고민 끝에 찾은 것들이다.
바로, 열쇠고리 십자수 만들기와 퍼즐 맞추기!
둥이의 심리 상담 선생님은 '바느질'이 ADHD 아동에게 좋은 치료법이라고 말씀하셨다. 순서에 맞게 바느질을 해야 되고 지겨움을 참는 인내심도 기를 수 있으며 완성 후 성취감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귀엽고 간단한 열쇠고리 세트를 두 개 샀다. 둥이는 처음에는 삼십 분에 겨우 한 줄을 하더니 이젠 제법 속도가 붙었다. 무엇보다 바느질하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퍼즐 맞추기! 조각 개수가 많고 특징 없는 하늘과 풀이 많아 둥이에게는 어려웠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빨간 머리 앤, 앤의 영혼의 친구 다이애나가 평화로워 보여 선택했다.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상에 퍼즐을 펼쳐놓고 며칠에 걸쳐 조금씩 맞췄다. 앤 셜리의 초롱초롱한 눈빛과 편안하게 눈감고 있는 다이애나의 모습이 둥이와 나의 모습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정성스럽게 맞췄다.
그리고 글쓰기!
브런치에 글을 적고, 소설 습작을 하고, 곧 출간 예정인 책의 퇴고 작업까지!
현재 내게 가장 많은 위로가 되는 것은 단연코 '글쓰기'다.
내 감정에 혼자 깊게 빠지는 단점이 있지만 '글'이 없다면 나 역시 사라질 것 같을 정도로 '글'이 절실하다.
브런치 공모전에 출간 준비! 그리고 오늘부터 시작한 '온라인 소설 쓰기 강의'까지!
어제, 오늘 열 시간은 족히 책상 앞에만 앉아 있었던 것 같다. 잠이 오듯 멍하지만 침대에 누우면 한없이 가라앉을 것 같아서 책상 의자에 딱 붙어 있었다.
살다 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들이 참 많다.
"장모님, 깨끗하니까 청소 안 하셔도 돼요. 제발 편히 쉬세요."라고 아빠는 외할머니에게 늘 말씀하셨다.
외할머니는 40kg도 안됐다. 위암으로 돌아가시기 전엔 35kg 정도였다.
서 있는 것조차 불안해 보였던 외할머니는 늘 엎드려서 방바닥을 닦으셨다. 먼지 하나 없는 깨끗한 방바닥을 할머니는 닦고 또 닦으셨다.
"할머니, 왜 자꾸 그렇게 계속 닦아?"
"속 시끄러워서 그래. 방이라도 박박 닦아야지 속이 후련하지!"
그땐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외할머니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내가 약과 글에 취하듯. 피곤한데도 쉬지 못하고 운동을 하고 퍼즐을 마추 듯이!
외할머니에게 청소는 귀한 딸, 모자란 외손녀가 걱정돼 터질 것 같은 마음을 달래주는 약이었던 것이다.
"너 왜 이렇게 사니!"라고 말하며 술에 취해 울던 엄마의 등짝을 마구 때리다가 주저앉아 함께 우셨던 외할머니에게 등짝을 한 대 두드려 맞고 싶다. 하늘에 계신 외할머니를 만나러 가고 싶다. 보고 싶다.
난 여기서 뭘 더 어떻게 해야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