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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Nov 14. 2023

[연재]지체장애 엄마, 지적장애 아들

저는 선천성 지체장애인입니다. 

그리고 10살 남자아이의 엄마입니다.


'선천성' 무서운 단어죠. 예, 저는 태어나보니 장애인이었습니다. 원인은 출산 시 난산.

태아일 때 건강했기 때문에 장애인을 출산할 것이라고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부모님은 많이 슬퍼하셨습니다. 하지만 전 그 덕분에 어릴 때부터 '장애'에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사고나 병으로 인해 장애를 갖게 된 사람들이 겪는 박탈, 상실감은 제개 없었습니다. 처음부터 제게는 없던 것이니까요. 


초등학생 때 친구들의 놀림 때문에 잠시 힘들었지만, '지능'이 낮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습니다. 공부를 할 수 있었으니까요. 감사하게도 학년이 높아질수록 주변에 좋은 친구들이 생겼고, 고등학생이 되니 적어도 제 앞에서 저를 무시하거나 놀리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비교적 무난한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대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마음이 더 편해졌습니다. 체육수업도, 미술시간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백전백승이 아닌, 무조건 꼴찌인 달리기를 하지 않아도 되고 떨리는 손으로 그림을 애써 그릴 필요도 없었고 삐뚤빼뚤한 입으로 단소 불기를 밤새 연습하지 않아도 됐으니까요.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마음 아파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앉아서 하기만 되는 공부는 성적이 안 나와도 제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되니 공평한 삶을 드디어 얻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을 못하는 것과 할 수 있는데 노력이 부족해서 못하는 것은 다르니까요.


장애인 차별이 가장 적은 곳은 '공직사회'라는 아빠의 권유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신규직원 때는 술에 취한 민원들이 '장애인 말고 멀쩡한 직원 나와!'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퍼붓는 욕에 울기도 했지만 곧 익숙해졌습니다. 아빠는 옳았습니다. 내부 직원들과의 관계, 상사들이 저를 대하는 태도, 진급 시 우선순위에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다고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결혼할 때, 시댁에서 아주 조금 제 장애를 걱정했지만 어찌어찌 결혼에 성공했고 덕분에 예쁜 아들도 만났습니다. 


학창 시절, 취업, 결혼의 관문을 다 넘고 나니 제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것을 잊고 살 정도로 더 이상 '장애'는 제 인생의 걸림돌이 아니었습니다. 키가 작거나 얼굴이 검은, 혹은 얼굴이 큰 것과 같이 저의 특징으로 '장애'가 남아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속상해할 일이 전혀 없이 십여 년을 살다 보니 어느새 아들 둥이가 초등학생 고학년이 됐고, 언제부턴가 제가 많은 것을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 엄마는 왜 다른 엄마들이랑 달라? 엄마는 병원에서 치료받을 수 없는 거야? 이게 다 낳은 거야? 외할머니는 엄마를 왜 아프게 낳았어?"

둥이가 질문할 때마다 최대한 성의 있게 답했습니다. 처음에는 둥이에게 미안하고 속상한 마음에 혼자 많이 울었습니다. '장애'때문에 겪어야 될 마음앓이가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큰 숙제가 남은 것 같았습니다. 장애인 엄마 때문에 속상해하거나, 혹은 엄마를 부끄러워할 아들을 바라봐야 된다는 것이죠.

다행히 1학년부터 3학년까지 이어지던 둥이의 많은 질문은 4학년이 되자 멈췄고 둥이는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 같았습니다. 감사하고 대견하게도 말이죠. 

둥이는 새로운 친구들이 저를 보게 되면, 

  "우리 엄마는 장애인이야. 태어날 때 아파서 그런 거니까 놀라지 마. 아픈 것 빼고 너희 엄마랑 똑같아. 나를 사랑하고, 회사도 다니셔. "라고 설명했고 친구들도 점차 제게 '아줌마'라며 편하게 다가왔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늘 새로운 숙제를 주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소아정신과 의사 선생님은 제게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머니, 종합심리검사결과 둥이의 지능이 지적장애에 해당될 만큼 많이 낮게 나왔습니다."

그리고 둥이는 겉으로 보기에 멀쩡해 보이기 때문에 더 많이 힘들 테고, 학교 수업시간 대부분을 멍하고 답답하게 보냈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둥이의 지능이 낮다는 것보다 둥이의 시간 대부분이 힘듦과 답답함으로 차였겠다, 고 생각하니 먹먹해졌습니다. 깊고 검은 바닷속에 갇힌 것 같이 답답했습니다. 


친정엄마와 저는, 비록 몸이 아프지만 머리가 나쁘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이냐,며 감사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렸을 때 위안 삼던 슬픔의 비교 대상이 먼 훗날 만나게 될 아들 둥이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었습니다. 장애가 유전되면 어쩌냐며 반대했던 시댁 식구들에게 '보세요! 저 건강한 아들 낳았다고요!'라고 반문하고 싶었는데 이젠 그들의 걱정이 사실이 됐습니다.


참고 버티며 살아온 제가 마흔이 넘어 '우울증'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처럼, 

우리 둥이가 힘들게 산다고 한들 결국 저처럼 우울하게 된다면 노력해서 살 필요가 있을까요.

슬픔에 빠져 있는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둥이의 표정이 밝습니다.

  "엄마, 오늘 학교에서 분수의 덧셈 뺄셈 시험 쳤는데 백점 맞았어. 엄마랑 공부방 선생님 말처럼, 친구들이랑 비교 안 하고 내 속도대로 천천히 푸니까 진짜 백점 맞았어. 나 잘했지?"


아이가 부모로부터 배우는 것보다 부모가 아이에게 배우는 게 더 많다더니, 아이를 키우면서 어른이 된다더니, 둥이가 저를 깨우쳐줍니다.

천천히, 둥이 성장속도에 맞춰서, 처음부터 다시, 우리만의 속도로, 살면 된다고 말이죠.


심리상담을 꾸준히 받고 있지만 제게 가장 안락한 곳은 이곳 브런치스토리니까, 브런치에서 새로운 동기부여를 받고 싶었습니다. 고민 끝에 연재 브런치북 [지체장애 엄마, 지적장애 아들]을 적기로 다짐했습니다.

우울하더라도 매주 1회씩 글을 올려야 된다면, 억지로라도 정신을 차려야 될 테니까요. 


아직 끝나지 않은 지체장애인으로서의 제 삶, 막 시작된 지적장애인으로서의 아들 둥이의 삶을 기록으로 남겨 보려고 합니다. 몇 년 후, 건강하게 잘 자란 둥이와 이 브런치북을 함께 읽을 날을 기다리면서요. 그때 안 죽고 살기를 잘했다, 추억삼을 날을 기다리며 열심히 살고 꾸준히 적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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