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으로 직접 사는 것과 장애인의 엄마로 사는 것!
(물론 둘 다 겪지 않는 게 최선이겠지만) 어떤 삶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덜 힘들까요?
제 경우를 말씀드리자면...... 그래도 본인이 '장애인'인 것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물론, 제가 경증 장애인이고 사십 년이라는 장애인 짬밥 덕분에 제 장애에는 익숙해진 반면,
새롭게 맞닥뜨린 '지적 장애' 엄마라는 역할이 낯설어서 그럴 수도 있겠죠.
그나마 정신 상태가 양호하고 주위에 좋은 사람들만 있었는데도 괜히, 혼자 힘든 일들이 많았는데 7~8세 어린아이처럼 마냥 순수하기만 한 아들 둥이가 겪게 될 어려움을 엄마인 제가 대신할 게 없다는 게 더 가슴 아프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들 둥이에겐 엄마이지만 부모님에겐 딸이지요.
평소엔 손자 둥이를 귀여워하다가도 큰일이 생기면 딸인 제 걱정을 먼저 하던 친정부모님은 둥이의 상태를 듣자마자, 손주인 둥이보다 제 걱정을 먼저 하셨습니다.
"네 마음이 아파서 어쩌니......"라고 말이죠. 그러고선,
"너도 힘든데, 평생을 아프게 살고 아파서 회사도 못 나가는데...... 그래도 네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된다. 이제 네가 아픈 것보다 둥이를 더 먼저 챙겨야 돼."라고 하셨습니다.
- 정신을 똑바로 차린다, 나보다 아들을 먼저 챙겨야 된다!
엄마에게 들은 이 두 가지 말은, 엄마가 저를 키우면서 수십 년간 어렵게 얻은, 장애인 아이를 키우는 노하우이자 진리였습니다. 어쩌면, '한 아이의 엄마인데, 강하지 못해 쓸데없이 우울증 따위로 삶을 허비하고 있는 나를 정신 차리게 하려는 조물주의 강력한 처방전이 아닐까?'라는 생각과 함께, '내 삶에 최선을 다해 살게 되면 아들이 좋아지진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애인이었던 저는 틈만 나면 힘들다고, 살기 싫다고 투정 부리고 원망했었는데
부모님은 저처럼 투정 부리거나 슬퍼할 수조차 없었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둥이의 검사 결과를 들은 지도 어느덧 한 달이 지났네요.
처음 한 주는 틈만 나면 울다가 누군지도 모를 하늘 위의 그분을 원망했습니다.
남편과 부모님 앞에서 참았던 눈물을 심리상담 선생님 앞에서 흘렸습니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너무한 거 같아요. 장애인으로 태어나, 지금까지 열심히만 산 것 같은데, 다른 사람 마음 아프게 한 일도 없는데, 겨우 어렸을 때 상처를 치료하며 이제 다시 힘내려고 하는데...... 선생님께 봄부터 상담받으면서 이제 거의 좋아졌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원점이 된 것 같아요. 왜 다시 우리 둥이한테 그 짐이 넘어온 건지, 이렇게 사느니...... 둥이가 열심히 산다고 해도 마흔이 됐을 때 저처럼 힘들어할꺼라면 같이 죽어야 되지 않을까요?"
선생님은 저와 함께 한참을 울어주셨습니다. 그리고 언론에서 떠드는 '동반자살'이란 말은 잘못된 말이라고, 엄연한 살인이라고 짚어주셨습니다.
상담이 끝난 후, 얼마동안은 멍하게 있거나 잠만 잤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수능도 끝났고, 12월이었습니다.
제 감정과 상관없이 흘러가는 시간마저도 제 뒤통수를 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야속한 시간 덕분에 이젠 일상을 조금씩 찾고 있습니다.
2023년이 지나고 2024년이 되면,
전 이제 장애인이 아닌, 장애인의 엄마로만 씩씩하고 단단하게 살기로,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며칠 남지 않은 2023년 동안. 장애인인 저의 아픔을 모두 없앨 수 있기를 바랍니다.
댓글로 응원을 주시는 많은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2023년은 그 어떤 친구나 외부인을 만나지 않고 저랑만 지내다 보니 댓글을 다는 게 낯설어지더라고요;;
한 분 한 분께 답을 해드리진 못하지만 정말 감사하게 읽고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