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연재 중인 <지체장애 엄마, 지적장애 아들> 브런치북의 제목은 사실이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저는 나라에서 인정(?) 받은 지체 장애인이 맞지만, 아들은 아직 지적 장애인 등급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거짓인 채로 끝나기를 바랍니다.)
"어머니, 장애 등급 받는다고 서진이가 더 아프게 되는 게 아닙니다. 서진이에게 맞는 교육과 복지 서비스를 받을 수 있으니 고민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장애인으로 태어난 저는 열다섯 살이 돼서야 비로소 장애인 등급을 받았습니다.
엄마는, 그 당시만 해도 복지 서비스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주홍글씨 같았던 '장애 등급'을 받고 싶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장애인 등록을 하면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고등학교로 배정받을 수 있다'는 중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의 권유 덕분에 저는 '장애인등록증'을 발급받게 됐습니다.
선생님은, '고등학교는 무작위로 배정 돼 버스나 봉고차를 타고 등하교하는 학생들이 많다'며, 서진이는 남들보다 몇 배나 힘들 테니 장애 등급을 받아 집 근처 학교로 갈 수 있게 노력해 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복지서비스는 갈수록 많아질 테니 향후 제가 건강하고 안정적으로 사는데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엄마를 설득해 주셨습니다.
당시 장애 종류에 대해서 모르셨던 엄마는 제 팔다리가 떨리니까 '지체장애'려니 생각하셨고 그렇게 저는 지체장애인이 됐습니다.(성인이 되고서야 정확한 제 장애명이 '뇌병변장애인'이라는 것을 알게 됐네요.)
그렇게, 전 중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의 권유 덕분에 아파트와 같은 담벼락을 쓰는 고등학교를 편하게 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26년 후, 우리 가족은 다시 담임 선생님의 따뜻한 말씀 덕분에 용기를 얻었습니다.
둥이의 검사결과를 알게 된 후, 저는 누구보다도 둥이의 담임 선생님과 상담하고 싶었습니다.
담임 선생님이야말로 둥이의 일상생활, 사회관계, 학습적인 부분 등을 가장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학년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을 통해 둥이가 뭔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3학년 담임선생님 덕분에 교육청에서 실시하는 '교육복지안전망 사업' 대상자로 선정 돼, 여러 프로그램을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4학년 선생님도 학습이 부족한 둥이를 위해 별도 숙제를 내주시고, 하교 후 보충학습도 시켜주셨죠.
몇 년간의 경험을 통해 담임 선생님이야 말로, 둥이에 대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선생님께서 지금 통화가 가능한지 알 수 없었기에 우선 문자를 남겼습니다.
"선생님, 교육청 지원사업으로 실시한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둥이 지능이 65 미만으로 매우 낮게 나왔네요. 학교 생활 등 상담드리고 싶은데 시간이 언제 괜찮으신지요..."
그날 오후,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둥이 담임입니다.
검사 결과 듣고 많이 놀라셨겠어요. 걱정이 많으시지요."
청천벽력을 맞은 것처럼 놀란, 그럼에도 뭘 해야 될지 몰라서 걱정만 하고 있는 제 마음을 담임 선생님께서는 바로 짚어 주셨습니다. 선생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오랫동안 나눴습니다. 선생님은 지능 점수로만 보면 지적 장애인 등록이 가능하겠지만 둥이는 충분히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고 제게 희망을 주셨습니다.
분명히 학습 능력이 많이 부족하지만 그동안 겪었던 다른 지적 장애아동과 달리 일대일로 차근차근 설명해 주면 충분히 학습이 가능하니 포기하지 말자고 위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교우관계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절 안심시켜 주셨습니다. 둥이 학급에서는 조금 부족하다는 이유로 친구들이게 놀림받는 일은 절대로 없고 둥이를 좀 더 세심하게 살필테니 혹여 왕따를 당하진 않을까라는 걱정도 하지 말라고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장애 등록은...... 약물 치료를 꾸준히 받고 기초학습을 꾸준히 반복한 후 내년에 다시 고민하자고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수십 년 동안 다양한 아이들을 교육한 경험을 가지신 담임 선생님께선 확실히 교육 전문가셨습니다.
한 통의 전화를 통해 선생님은 제 고민의 대부분을 해결해 주셨습니다.
사실 둥이의 상태를 알고 난 후, 전 '엄마'라는 자리가 정말 부담스럽게 느껴졌거든요.
'장애인 등록'을 해야 될지 말지부터 고민이 됐습니다.
장애인 등록을 하는 경우, 둥이가 훗날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없게끔 주홍글씨를 제 손으로 새겨주는 건 아닌지 걱정됐습니다.
장애인 등록을 하지 않는 경우도 생각해 봤습니다. 등록 여부와 상관없이 둥이의 지능이 높게 되는 것도 아닌데,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도 모르는 친구들과 비슷해지려고 애쓰며 살게 될 둥이가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이렇듯 둥이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에 대한 모든 결정은 엄마인 제 몫이라는 게 무척 부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남편은, 검사가 잘 못 된 것 아니냐, 둥이가 그때 컨디션이 유독 나빴던 게 아닐까? 대학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받자 등 둥이의 상태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듯 보였습니다.
아내가 장애인인데 자식까지 '장애인'이라니, 피하고 싶은 남편의 마음도 이해 됐지만, 저는 점점 더 외롭고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부담스럽고 혼란스러운 저를 다독여준 사람은 남편도 부모님도 아닌, 둥이의 담임 선생님이었습니다.
"어머님, 많이 힘드셨을 텐데 저를 믿고 말씀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 믿음만큼 둥이를 더 챙겨보도록 하겠습니다."
둥이 담임 선생님의 따뜻한 한마디 덕분에 우리 가족은 다시 힘을 낼 수 있게 됐습니다.
유난히 춥게 느껴지는 겨울이지만, 선생님의 응원과 격려에 힘입어 다시 힘을 내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