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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Nov 28. 2023

천천히, 기다립니다.

토닥토닥! 

말랑한 둥이의 배 위에 얹힌 포근한 이불을 토닥이는 한 밤.

둥이가 제게 묻습니다.

  "엄마, 엄마는 작가라면서 다음 책은 언제 나오는 거야?"


우리 집엔 제 글이 실린 책이 두 권 있습니다.

한 권은 수필부문 신인 작가 선정작품이 수록된 한국문학예술 2021 가을호.

https://brunch.co.kr/@lovebero/211


그리고 2022년에 출간된 자전적 에세이집 <아들, 사춘기는 엄마가 먼저 할게>입니다.

https://brunch.co.kr/@lovebero/394

책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4학년임에도 맞춤법을 다 틀려가며 독서감상문을 적는 둥이도 '작가'라는 단어 속에서 묘하고, 고독하고, 아름답고, 우아함을 느끼나 봅니다. 

  "우리 엄마는 공무원이지만 사실은 작가예요. 집에 엄마가 낸 책이 두 권이나 있어요."

예의상 '그래? 엄마가 글도 적는다고? 정말 대단하시네.'라며 맞장구 쳐주는 사람들의 반응 속에서 집안 경제에 도움이 되는 공무원 보다 '작가'란 직업을 더 멋지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담임 선생님, 공부방 선생님, 친구 엄마들에게 자랑을 하며 제 책을 선물로 드리는 둥이. 자비로 출판까지 했지만 제 글을 남들이 읽는다는 게 아직 비밀 일기장을 들킨 것처럼 부끄럽지만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둥이가 대견하고 감사하네요.


얼마 전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전적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읽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7년간 재즈 카페를 운영하며 우연히 본 프로야구 개막전에서 불현듯 자신이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때 쓴 소설이 신인문학상을 타며 작가로 살게 됐다고 합니다.

끝없는 탈고, 조깅과 마라톤을 통한 체력관리, 삶을 단조롭게 해 오로지 소설에만 매진하는 그의 초인적인 노력이 그를 지금의 '무라카리 하루키'로 만들었겠지만.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자신감과 능력, 운명적인 그 순간이 참 부러웠습니다.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란 예감,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쓴 첫 소설이 바로 당선까지 되는 행운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타고난 글 실력이라곤 전혀 없는 저는 아예 꿈도 꾸면 안 되는 것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그. 


다시 둥이에게 돌아와, 엄마의 다음책을 기대하는 아들, 둥이에게 답합니다.

  "엄마가 글을 적고는 있지만, 학생으로 치면 아직 1학년도 아닌 유치원 단계거든. 그래서 공부를 더 하고 좋은 글을 많이 읽어야 돼."

  "글도 공부를 해야 되는구나."

  "그럼.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과 생각을 글로 옮기는 거잖아."

  "다 공부를 해야 되는구나. 그럼, 엄마도 나처럼 천천히 공부해. 엄마가 날 기다리는 것처럼 나도 엄마를 기다릴게."


저는, 초등학교 4학년이지만 어떤 부분은 초등학교 1학년보다 부족한 아들 둥이를 기다리고,

둥이는, 마흔이 넘었지만 글실력이 부족한 엄마를 기다립니다. 


천천히, 조금 더 천천히......

그렇게 우리 모자는 서로를 기다리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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