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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서진 Nov 21. 2023

이유를 알 수 없는 자의 답답함

'00 해서 00 한다'라는 놀이를 혼자 해봅니다.


적게 먹어서 살이 빠졌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이 올랐다.

돈을 많이 썼기 때문에 가난해진다.

청소를 하지 않아서 집이 더러워진다.

에어컨을 많이 사용했더니 전기요금이 많이 나왔다.


제법 인과관계가 성립되는 것 같습니다. 역시 모든 일엔 원인이 있나 봅니다.


이제, 아들 둥이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유를 찾아봅니다.


임신했을 때 뭔가 잘 못 먹어서 둥이가 지능이 낮다.

 - 열 달 동안 라면을 두 번 먹었었지, 커피도 몇 번 마셨던 거 같아.

출산할 때 위험한 순간이 있어서 둥이가 성적이 낮다.

 - 자연분만이 아닌, 제왕절개를 해서 그런가?

20대 후반, 약물과다 복용 한 적 있어서 둥이가 사회성이 낮다.

 - 감기약 찌꺼기가 자궁에 남아 있었을 수도.

엄마가 지체장이인이어서 둥이가 게임의 규칙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 그래, 그럴 수도 있지.

우리 부부 모두 '개'띠인데 '용'띠 아들을 낳아서 둥이가 집중력이 낮다.

 - 개들이 시끄럽게 짖어 용의 승천을 방해한다고 무속인 할머니는 말씀하셨지.

유기농 자연식을 안 해서 둥이가 짜증을 잘 낸다.

 - '농약'없이 농작물 재배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신념이 문제였다.


둥이의 검사결과를 들은 후 나와 남편, 친정 부모님의 반응은 동일했습니다.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왜? 둥이가 왜?"

그래서 혼자 나름의 이유를 찾아보려고 노력했는데 아니, 노력하지 않아도 계속 생각났습니다. 설거지 중에도, TV를 보다가도,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를 보다가도, 더러운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면서도, 책을 읽다가도, 음악을 듣다가도 계속 생각했습니다.

위에 열거한 저 모든 것들이 이유인 것 같다가도 '그래도, 그렇지'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도 내 눈앞에서 방긋방긋 웃는 둥이를 볼 수 있음에 감사하다가도 '나도 장애인인데, 아들까지 장애인인 건 너무 하잖아!' 울분을 터뜨립니다. 


이유를 알 수 없어서 답답한 시간이, 오늘도, 그냥 지나가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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