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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의 날” 헨델 사후 열린 유품 경매

아트 컬렉터 헨델 이야기

새해부터 연재 중인 뉴스저널리즘 ‘정은주의 클래식 산책’에 쓴 칼럼 공유합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말미에 칼럼 발행 링크도 공유하겠습니다.


헨델이 세상을 떠난 지 6개월 후 열렸던 헨델 소장품 경매 공고


지금으로부터 약 264년 전인 1760년 2월. 영국 런던에서 발행된 '데일리 애드버터'에 아주 특별한 예술품 경매 예고 소식이 실렸습니다.


당시 영국의 저명한 예술품 딜러였던 에이브러햄 랭퍼드가 주최한 예술품 경매 소식이었는데요. 28일 정오 영국 런던의 코벤트 가든 피아차에서 조지 헨델이 평생 수집했던 예술품 중 67점이 공개, 경매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이 소식은 10개월 전에 세상을 떠난 헨델의 유산이 경매에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 그의 타계를 추모하며 경매가 열린 이날을 두고, 영국 예술품 경매사들은 '헨델의 날'이라 부릅니다.


모두의 예상대로 이날 경매에서 헨델이 정성스레 수집한 여러 작품들이 모두 새 주인을 찾아갔습니다. 당시 영국에서 헨델의 인기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으니까요. 아마 이러한 헨델의 인기도 작품 판매에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독일인으로 태어나 영국으로 귀화한 헨델


독일 출신의 헨델은 영국으로 귀화해서 생을 마쳤습니다. 그 시기 영국은 회화 등 예술 작품 시장의 전성기였습니다. 현대적인 건축물이 런던 곳곳에 들어섰고요. 귀족들은 벽과 벽 그리고 또 벽에 걸 예술 작품을 바쁘게 수집했습니다. 귀족 등 특정 계층이 향유했던 취미에서 시작된 영국의 예술품 경매 문화는 런던을 시작으로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헨델이 영국에서 살았던 40여 년간 1년 평균 총 5~10회의 예술품 경매가 열렸고, 약 1만5000점의 작품이 거래되었는데요. 이러한 역사 속기록만으로도 당시 영국 경매 시장의 열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영국의 상류층으로 살던 헨델도 자신과 교류하는 런던의 귀족들처럼 예술품 수집에 열을 올렸는데요. 영국 귀족들의 취미 생활을 함께하며 영국의 새로운 귀족으로 정착하려던 그의 노력으로도 볼 수 있고요. 헨델의 예술품 구입 기록에 따르면 1749년과 1750년 사이에 총 여섯 작품을 구입했는데, 렘브란트 판 레인부터 안토니오 카라치의 작품까지, 당시 액수로도 큰 금액의 작품을 샀습니다.  


당시 예술 작품을 구입하는 방법은 오늘날과 비슷했습니다. 작품 중개인이 추천해주는 작품 중에서 고르거나, 직접 갤러리에서 작품을 고르거나, 작가를 만나서 작품을 구입하는 방법 등이요. 헨델은 주로 자신과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 거래하던 아트 딜러에게 작품을 구입했고요. 때로는 런던을 방문한 유럽의 여러 화가들을 직접 만나 작품을 소장했어요. 또 이탈리아 베네치아나 네덜란드로 떠나 자신의 마음을 만족시켜주는 작품을 골라오기도 했습니다.


1776년 영국 최초의 음악사 책을 집필한 존 호킨스 경은 저서 '음악의 역사'에 헨델의 예술 작품 사랑에 대한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헨델이 예술 작품에 대해 느끼는 사랑은 무한합니다. 심지어 꽤 전문적인 그의 식견에 감탄할 때가 많습니다."


호킨스 경의 관찰대로 헨델은 아트 컬렉팅에 진심이었습니다. 또 영국의 역사학자인 윌리엄 콕스는 "헨델이 가진 회화에 대한 취향은 이탈리아에 머물던 시절에 크게 형성되었으며, 그는 예술 작품에게서 대단한 기쁨을 얻습니다"라는 글을 남겼는데요. 여러 기록으로 볼 때 헨델은 예술 작품에 굉장한 애정을 갖고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시력 잃으며 미술작품 수집 중단

헨델의 삶에 찾아온 시련 이야기는 정말 슬프고 또 안타깝습니다. 그를 싫어하는 라이벌 음악가가 등장해 음악 활동에 방해뿐 아니라 살해 위협까지 받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뇌졸중까지 앓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긍정 에너지를 발판삼아 다시 일어났습니다. 곧 건강도 회복했고요. 음악가로 명성도 다시 찾았거든요.


하지만 하염없는 세월 앞에서는 헨델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차츰 그의 시력이 나빠졌고, 결국 백내장 수술을 세 차례나 받았습니다. 심지어 수술 후유증으로 양쪽 눈의 시력을 모두 잃었고요. 작곡가로, 오르간 연주자로 또 음악 감독으로 해야 할 일이 많은 그에게 시력 상실이라는 절망이 찾아온 것입니다.


하지만 헨델이 누구던가요. 그는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았어요. 시력을 잃어가던 상황에서도 보조 작가의 도움을 받아 영어로 된 '오라토리오'를 완성했고, 오르간 앞에 앉아 눈을 감은 채 두 손과 귀로 연주했다는 기록이 전해집니다. 이날 헨델의 연주를 들은 관객은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는 관람 후기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시력을 잃어간 그는 어떤 마음으로 계속 활동했던 걸까요.


헨델 컬렉션 특징은 '내 마음대로'


지난 1985년 영국의 한 경매에서 '헨델의 날' 헨델의 작품 목록이 실린 카탈로그가 공개되었습니다. 그동안 헨델이 예술 작품을 수집했다는 사실은 그의 유언장 속 내용이 전부로, 그가 정확히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을 소유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었거든요.


헨델을 연구하던 학자들은 발견된 카탈로그 속 기록을 토대로 그가 소유했던 여러 예술 작품에 대한 목록을 찾아내어, 구체적으로 약 30점 이상의 작품 목록을 공개했습니다. 다만 아쉽게도 헨델의 유언장에 명시된 렘브란트의 작품 같은 경우는 아예 존재 자체를 추적할 수 없었고요. 아마 렘브란트의 작품은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를 동안 입이 무거운 어느 수집가의 창고에 자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문가들이 분석한 헨델 컬렉션의 특징은 '내 마음대로'입니다. 헨델은 인기 있는 작가 혹은 유망한 신인 작가의 작품을 선택하지 않았거든요. 이 이야기는 헨델이 미술 작품에 대한 특별한 기호가 없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헨델의 컬렉션에는 풍경화부터 초상화까지 정말 다양한 주제의 작품이 있는데요. 단 그는 종교적인 내용의 작품은 수집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가 영국에 귀화할 때 영국의 국교로 개종하면서 했던 서약과 관련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종교적인 내용의 예술 작품을 집에 걸어두었다가 혹시라도 영국 국교의 방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조심했던 것은 아닐까요.


또한 헨델은 유명 작가의 원작이 아닌 판화를 즐겨 구입했습니다. 이것은 인지도가 낮은 작가의 원본 그림을 구입하는 것보다 아트테크 측면에서 효과적인 방식이었는데요. 헨델의 후원자인 웨일스의 왕자 프레더릭도 이러한 방식을 선호했습니다. 미술 작품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의 취미를 향유하려 했던 일에서 시작된 헨델의 컬렉팅. 귀화한 영국인이 아니라 진짜 영국인이 되어 그 속으로 들어가기 위한 하나의 노력이었음은 분명합니다.


| 참고도서 '알고 보면 흥미로운 클래식 잡학사전' (정은주 지음·해더일 펴냄)


https://www.nget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0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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