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저널리즘 “정은주의 클래식 산책“ 칼럼
새해 연재를 시작한 뉴스저널리즘 “정은주의 클래식 산책“ 칼럼 일부를 전해드립니다. 글 말미에 칼럼 전문
링크 넣어두겠습니다. 재미나게 읽어주세요!
1752년 프랑스 왕실의 휴양지였던 퐁텐블로 성에서 특별한 공연이 열렸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Retour à l'état de nature)"는 유명한 말을 남긴 18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1712~1778)의 오페라 '마을의 점쟁이'가 초연되었거든요. 아니 잠깐만요. '계몽주의 철학자 루소가 오페라를요?'하는 궁금증을 갖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맞습니다. 18세기 프랑스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철학자, 루소는 음악에도 탁월한 재능을 갖고 있었습니다. 철학자이자 음악가로 활동했어요.
사실 인간 루소의 삶을 들여다보면 안타까운 일도 많습니다. 스위스의 귀족 출신이던 그의 어머니는 루소를 출산한 후,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고요. 그의 아버지는 그를 이곳저곳에 맡기며 성장하게 했습니다. 이후 그는 부유한 귀족 부인의 일을 돕던 중 원치 않던 여러 경험들을 해야 했는데요. 귀족 부인이 10살이나 어린 청년 루소를 애인으로 삼으려했거든요. 루소는 어머니처럼 대하던 귀족 부인과의 관계에 대해서 훗날 근친상간을 저지른 기분이었다고 회고한 바 있습니다. 끔찍했던 시기였지만 루소는 이 시기부터 음악을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음악에 대해 쌓은 여러 호기심과 공부는 훗날 그가 평생 음악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놓지 않게 만든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이후 루소는 이탈리아의 주재원으로 활동하던 프랑스 대사의 비서로 취직했는데요. 이 시기 그는 이탈리아의 음악도 배웁니다. 그러다 그 일자리에서 해고된 그는 결국 프랑스 파리에 정착했습니다. 고국 스위스에 돌아갈 이렇다할 이유도 없었지만, 그가 파리를 선택했던 것은 음악 때문이었습니다. 서른 살이 된 그는 파리 과학 아카데미에서 새로운 악보 표기법에 대한 이론을 발표했는데요. 당시 그의 의견은 주목받지 못했지만, 그 일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을 사귈 수 있었습니다. 음악 분야에 대한 전문가로 글도 쓰고, 작곡도 하며 지내던 그는 오페라 '마을의 점쟁이'를 완성했습니다.
루이15세의 극찬 받은 사랑스런 오페라 '마을의 점쟁이'
루소의 오페라 '마을의 점쟁이'는 초연 이후 뜨거운 환영을 받았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 인기 끌던 오페라들과 차별되는 매력이 있었거든요. 보통 신화, 왕들의 이야기 등 평범한 사람들이 접할 수 없는 세계가 무대가 되었던 반면, 이 오페라는 평범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는데요. 물론 주인공들도 화려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음악이 굉장히 간결하고 귀에 쏙쏙 들어오는 스타일이고요. 오페라 가수의 난도 높은 기교도 등장하지 않아요. 한 마디로 감상하기에 어렵지 않은 작품입니다. 이러한 점이 당시 화려할 대로 화려했던 프랑스 오페라 계에 신선하게 다가갔던 것이죠.
참, 이 작품에 깊이 감동한 루이15세는 루소를 만나길 원했는데요. 왕을 알현할 수 있는 자리에 대한 심적 부담감을 느꼈던 루소는 스스로 알현을 포기했습니다. 루이15세가 선물했던 평생 연금도 거절했고요. 평소 루소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는 일화이기도 합니다. 당시 루소의 판단에 대해 주변에서는 걱정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다행히 루소는 별다른 불이익을 받지 않고 넘어갔고요. 오히려 이 사건이 화제가 되어 '마을의 점쟁이'와 루소의 이름이 프랑스 전역에 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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