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미 Sep 04. 2022

안 오십니다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선풍기, 에어컨, 물에 의지하지 않고는 지낼 수 없는 여름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이런 날엔 살면서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어떤 일들까지도 감정선을 건드리곤 한다. 얽히고설킨 감정의 실마리를 풀다 보면 그렇게까지 감정 소모를 했어야 할까 싶을 정도의 일들이 대부분인 경우가 많다. 


연 1회 예정되어 있는 안과 예약 날짜를 변경하기 위해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예약 담당직원과 상담 중에 내 담당 의사 선생님이 연수를 떠나게 되어 예약 변경이 어렵겠다는 안내다. 순간 오히려 잘 됐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진행 중인 코로나19가 완전히 끝날 때까지 진득하게 기다렸다가 진료를 받을 수 있겠구나 싶었던 것이다. 정확히 아는 건 연수를 가신다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음에도 연수 기간과 돌아올 날짜까지 확정된 듯 직원에게 물었다.

"연수 가시면 1년쯤 후에는 돌아오시지요? 그럼 그때쯤으로 변경해 주실 수 있나요?"

"안 오세요."

순간의 놀라움이었지만 그 순간의 충격은 영원인 듯 강렬했다.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 내 눈은 휘둥그래 커져 있었을 것이다.

"네?"

"공부하시러 가는 거라 안 오십니다."


당황스러웠다. 죽음이라는 이름으로만 영원한 이별이 준비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 직감했다. '안 오십니다.'가 주는 여운이 오래 지속될 듯하다. 마치 오래도록 풀어야 할 숙제처럼. '안 오십니다'는 영원한 결별을 뜻한다. 그가 살아있든 그렇지 않든 나와 관계 있었던 모든 연결 통로를 끊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 2년 6개월이 넘도록 전화 한 통 없던 이가 전화를 걸어왔다. 그 2년 6개월 동안 내가 사는 자치구 어느 기관에는 일주일에 적어도 두세 번은 다녀갔을 그이다. 자신의 편의를 봐 준 내게는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적어도 전화 한 통 정도는 건네 감사의 마음을 전할 사람일 것이라 여겼던 나를 접으며 핸드폰을 교체와 함께 그이의 전화번호를 삭제했다. 그이와 가까운 이의 전화번호도 함께 지웠다. '내가 전화할게.'라는 말을 적어도 2년은 믿으며 기다렸던 나마저 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고맙다는 말 한 마디 기다리다 전화번호를 지웠다. 오래전의 나였다면 이런 나 자신을 옹졸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정당하다고 나를 옹호해 주기로 한다. 어떤 이들은 누군가를 이용하려는 속내를 오래도록 지속해 온 결과 자신의 속내를 다른 사람이 결코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라고 오해하며 살기도 한다. 낯선 전화번호 너머서 갑자기 반갑게 나를 아는 체하는 그이를 일단은 반갑게 맞이했다. 그리고 깜찍하게 거짓말을 했다. 폰을 바꾸는 바람에 전화번호를 저장해 두지 못했다고. 상대방도 이미 알아차렸을 거짓말을 정말 그럴 수 있다고 믿는 듯 뱉었다. 그러나 그이는 요즘 핸드폰 교체하는데 전화번호가 왜 날아가는가고 묻지는 않았다. 다행이었다. 물었더라면 또 그때 임기응변으로 그이를 따돌릴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이 그이의 전화를 기다리는 동안 내공처럼 쌓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이가 뒤늦게나마 고맙다는 말로 내 옹졸한 마음을 풀어주기를 기대했다. 아니었다. 또 다른 부탁이었다. 일언지하에 거절하지 못하는 나는 그이의 부탁을 듣는 잠깐 동안의 통화에서 하늘을 오르내리듯 갈등했다. 원래의 나는 이렇지 않았어. 세상에 처음 발 디디던 시절의 그 순수함을 잃으면 안 돼. 저편에서도 언젠가는 나를 알게 되는 날이 올 거야. 아니야, 영원히 알지 못해도 상관없어. 지금 그이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면 그는 다음에 또 다른 부탁을 해 올 거야. 이 줄다리기의 결정은 내 마음 가는 대로 한다 해도 신께서 적어도 나를 탓하시지는 않을 거야.


그의 부탁을 완곡하게 거절했다. 전화를 끊은 잠시 후 그이가 그동안 연락 한 번 없다가 뜬금없이 전화해서 부탁이나 해서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괜찮다고 답을 했다. 하느님께서 보고 계실 내 심장이 쫄아들었지만 하느님께 그이가 자신을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아뢨다. 그리고 다시 내게 이런 식으로 접근하지 않도록 그이는 물론 다른 사람들도 주의할 수 있도록 부탁드렸다. 나는 나대로 가만 있는데 괜한 바람이 나를 건드려 세상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게 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일과 관련한 안내 문자가 왔다. 알려주셔서 감사하다는 답을 보냈더니 감사하다는 내 답에 다시 감사하다는 답이 왔다. 얽힐 이유 없이 가라앉았던 마음이 조금 더 환하게 풀렸다. 이 또한 '안 오십니다'와 같은 맥락으로 흘러갈 일이다.


안 오십니다. 피곤이 몰려왔다. 내 어머니와 아버지,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물론 초등학교 졸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떴다는 소식으로 우리를 놀라게 했던 초등학교 동창과 울창하게 자란 아카시아나무에서 낙엽이 되어 내리기엔 너무 이른 노란 물든 아카시아 잎 하나가 떨어지던 모습이 뒤죽박죽 오버랩 되었다. 일찍 자야 하려나 보다.


에어컨을 제습으로 해 두고 선풍기는 미풍으로 맞춰 둔 다음 막 잠을 청하려는데 비를 모아 두었던 하늘이 통째로 무너진 듯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끄고 문을 열어 둔 채 잠에 빠졌다. 


새들 우짖는 소리에 눈을 떴다. 새들이 오늘은 내 새벽잠을 깨운 것이다. 안 올 거라 생각한 적 없지만 와 주어 고맙다, 새들아. 언젠가는 안 오게 될 어느 날을 생각하며 아침 걷기를 위해 내려갔다. 오늘도 나와 주어 고맙다는 마음을 담아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간밤에 비가 엄청 왔어요."


더위를 쫓아보려는 온갖 방법들이 동원 되었지만 팅팅 불은 몸과 마음이 가법게 하는 데는 역시 사람 관계가 최고다. 





언젠가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드는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안 오십니다'는 반드시 이 세상과 다른 세상과의 결별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끊어낸 어떤 것들은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드는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우리가 끊어낸 어떤 것들은 누구의 과오랄 것도 없이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마음을 열기 전까지는.






작가의 이전글 무더위 속 비비추와 선녀벌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