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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Sep 04. 2022

무더위 속 비비추와 선녀벌레

하루살이의 사리 빚기

감나무 전지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감나무 전지 며칠 후 무성하게 자란 비비추를 싹 밀어버렸다.

왜 꽃 필 철이 되어서야 나무며 화초를 민머리로 만드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무에 대해서도 화초에 대해서도 보이는 것 외엔 볼 수 없는 무지가 원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감나무와 비비추에 대해 그리 깊은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눈이 닿을 때면 약간의 불만을 느꼈을 뿐이다.

감나무와 비비추에 대해 더 깊이 알려는 노력은 하지 않았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지는 것보다 더 빨리

감나무와 비비추가 있는 자리를 지나오면서 바로 그들에 대해서는 잊곤 했었다.

장마 초입, 드디어 감나무 새 순이 몇 개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감이야 내년을 기약하면 되지. 

가 본 적 없는 미래 내년을 혼자 상상하고 기약하며 즐겁다.

속이 가볍기는 거위 속털이 부러워할 정도로 가벼운 나를 본다.




오늘 이른 아침 깔끔한 연둣빛 비비추들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엊그제 민머리였던 비비추들이 언제 새 잎을 냈을까.

민머리가 된 비비추들이 민망해할까 싶어 가능한 한 못 본 척 지나치던 내게 

비비추들이 서운해했을 수도 있겠다.

괜찮다고 어서 새 잎 내라고 한 마디 건네주었어야 하는데

눈길도 주지 않고 지나치더니 연둣빛 새 잎 앞에서 환한 얼굴 하려는 내가 또 민망하다.

민망한 마음 감추지 않고 다가가 아는 체를 한다.

방금 세수 끝내고 아직 수건으로 물기를 닦기 전 얼굴이다.

"이쁘네. 한 번 싹 밀고 나니 봄 첫 잎처럼 깔끔하고 이쁘다. 근데 올해 꽃은 올릴 수 있는 거니?"

대답 없는 비비추를 뒤로하고 한 시간여를 걸었다.

집으로 들어오는 길, 머리카락에서 땀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손으로 뒷 머리카락을 꼭 쥐어짰다.

방금 냉장고에서 꺼낸 찬 물병처럼 

내 살갗은 소강상태인 장마철 공기 중의 습기를 있는 대로 끌어모은 중인가 보다.


구름은 높게 떠가고

일찌감치 떠오른 해가 나무 사이로 빛을 쏘며 아침 인사를 건넨다.ㅇ

오늘도 무지 덥겠구나. 

저녁 무렵에나 바깥에 나와야겠다.

움직이지 않으면 아직까지는 땀이 비 오듯 솟지는 않는다.

한낮에도 아침처럼 살랑바람이 불어준다면 무더위도 견딜 만하겠다.





요즘 보기 쉽지 않은 질경이를 아파트 현관 근처에서 만났다.

그리고 보고 싶지 않은 어린 선녀벌레를 질경이 옆에서 만났다.

선녀벌레도 나를 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드디어 나 사는 아파트 화단에도 선녀벌레가 등장했다.

날개인지 발인지 구분하기 힘든 덥수룩한 흰 털 뭉치 같은 몸을 이끌고 달아나기에 바쁘다.

움직이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저 작은 삶의 향방이 궁금하다.

살아 있음이 죽음을 부를 수도 있음을 이 작은 생물을 통해 깨닫는다.

쥐 죽은 듯 있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 혹은 언제였는지 언제일지 나는 알 수 있을까?

요즘 보기 쉽지 않은 질경이를 아파트 현관 근처에서 만났다.

그리고 보고 싶지 않은 어린 선녀벌레를 질경이 옆에서 만났다.

선녀벌레도 나를 보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드디어 나 사는 아파트 화단에도 선녀벌레가 등장했다.

날개인지 발인지 구분하기 힘든 덥수룩한 흰 털 뭉치 같은 몸을 이끌고 달아나기에 바쁘다.

움직이지 않았다면 모르고 지나쳤을 저 작은 삶의 향방이 궁금하다.

살아 있음이 죽음을 부를 수도 있음을 이 작은 생물을 통해 깨닫는다.

쥐 죽은 듯 있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 혹은 언제였는지 언제일지 나는 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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