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아이가 햇살 환한 벽에 기대어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이는 흰 무명 저고리와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검정치마에 검정고무신 차림이었다. 아이의 눈이 머물고 있는 곳에서는 낮은 처마 그늘에 앉은 아이들이 공기놀이 중이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아이를 힐끗 돌아보고는 다시 놀이에 열중했다. 잠시 후 조금 전의 그 아이가 흰 무명 저고리와 검정치마의 아이에게 다가왔다.
“같이 놀자.”
두 아이는 손을 잡고 공기놀이 중인 아이들 틈으로 들어가 앉았다. 낯빛을 빼면 무채색 투성이인 흰 무명 저고리와 검정치마의 아이는 어떤 색으로 물들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나는 동화 속 거위 공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누구에겐가 공주의 자리를 빼앗기고 시녀 일을 하며 공주 자리를 되찾을 날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은 어느 날에도 공주는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공주의 자리를 빼앗은 시녀일 수도 있었다. 공주도 아니면서 공주과로 오해받을 때면 동화 거위지기 공주를 떠올리곤 했다.
초등학교 입학 전 나는 할아버지가 올라와 계시는 기간을 제외하면 거의 엄마 아버지를 따라 잠실벌을 드나들며 지냈다. 지에무씨를 실은 큰 배 가장자리에 선 아버지 팔에 매달려 한강을 건널 때면 남동생이 안겨 있는 엄마 품이 부럽지 않았다. 강 건너에 닿으면 새 다리 같은 가느다란 다리로 모래밭을 펄쩍펄쩍 뛰어다녔다. 희고 넓어 더 평화로운 모래밭의 주인은 누구도 아닌 바로 나였다. 한적하다 못해 적막한 그 모래밭 모래알들의 숨소리를 들으며 지내는 하루하루에 대해 지루하다는 느낌을 받았는지는 기억에 없다. 행복했을 것이다. 땀이 묻어난 손바닥에 붙어 반짝이는 모래의 희고 검은 알갱이들은 하늘이 나를 위해 뿌려놓은 땅에 뜬 한낮의 별이었다. 군데군데 무더기진 풀더미는 밥 먹는 시간 외에는 말 나눌 사람 없는 내게 큰 산이요 나무였다.
아버지의 일터는 잠실 모래밭이었다. 일터에 도착하면 어제저녁 어둠과 함께 일을 접었던 깊고 큰 웅덩이가 우리를 맞이했다. 엄마 아버지가 분리해 놓은 자갈이 작은 동산 만하게 쌓여 있기도 했다. 엄마와 아버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점심 식사 시간 외에는 쉬지 않고 구덩이를 만들어 흙을 파고 체로 쳐 자갈을 분리했다. 그 자갈을 팔아 번 돈으로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렸다.
일터에는 구멍 크기가 다른 돌을 고르는 체가 여러 개 있었다. 아버지는 아침마다 그날 쓸 체를 점검했다. 점검한 체를 체의 길이에 맞춰 한쪽은 낮고 반대편 쪽은 높은 두 개의 막대 위에 올려놓고 앞뒤 좌우로 흔들어 알맞은 자갈을 고르는 데 불편하지 않을지 살펴보곤 했다. 이제 됐다 싶으면 아버지는 고개를 몇 번 끄덕거리고는 어제 자갈을 파내던 깊고 큰 웅덩이 아래로 펄쩍 뛰어내렸다.
아버지는 끝이 뾰족한 삽으로 웅덩이를 파내어 모래흙을 부지런히 모았다. 모래흙이 어느 정도 모이면 아버지는 끝이 뾰족한 삽 대신 끝이 일자 모양인 삽으로 바꿔 들고 파 놓은 흙을 가득 떠서 엄마가 붙잡고 있는 지상의 체로 훌쩍 던졌다. 엄마는 체를 잡은 손에 힘을 모았다. 체는 웅덩이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 웅덩이 가까운 쪽이 낮고 먼 쪽이 조금 높게 비스듬하게 들린 상태로 아버지의 삽이 던지는 흙을 받았다. 아버지는 깊은 웅덩이에서 던지는 흙을 잘 받을 수 있도록 체의 방향을 잡아 두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던진 한 삽 흙이 담긴 체를 엄마는 앞뒤나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면 체의 눈 크기에 따라 체의 눈보다 작은 것들은 아래로 빠지고 체의 눈보다 큰 것들만 체 위에 걸렸다. 엄마는 그중 주먹만큼 큰 것들은 골라서 멀리 던져 버리고 다른 체로 한 번 더 쳐서 자갈을 두 가지 정도로 선별하곤 했다.
아버지가 웅덩이에 들어가 모래흙을 파 모으는 사이 엄마는 나와 동생을 위한 그늘막을 만들었다. 안 쓰게 된 이불 홑청이나 큰 무명 보자기의 네 귀퉁이를 높이 세운 네 개의 장대 끝에 묶어 펄럭거리는 그늘막이었다. 그러다 다오다라고 불리기도 했던 나일론이 나오자 그늘막에도 변화가 생겼다. 네 개의 장대 간격을 더 멀리 세우고 가벼운 나일론 천을 이어 장대마다 묶으니 더 크고 네모진 그늘막이 만들어졌다.
“동생 잘 봐라.”
엄마는 예닐곱 내게 세 살 터울의 남동생을 부탁했다. 대답은 늘 시원시원했다. 저녁 무렵이 되면 어김없이 나는 나대로 동생은 동생대로 따로 떨어져 모래투성이로 발견되기 일쑤였다. 어느 날 저녁엔가는 동생이 그늘막에서 한참 떨어진 풀더미 위에 엎어져 자고 있는 걸 발견했다. 엄마는 내 머리를 말없이 쓰다듬었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은 사르르 떨고 있었다. 말없이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엄마의 손바닥과 손가락에는 배추나 무의 잎과 줄기처럼 잔 가시가 나 있었다.
엄마가 분리해 놓은 자갈이 어느 정도 쌓이는 저녁 무렵이면 늦게 도착한 지에무씨에 아버지는 끝이 납작한 삽으로 자갈을 퍼서 올렸다. 어떤 날은 지에무씨 조수석에 타고 있던 아저씨가 내려와 아버지를 돕기도 했다. 아버지가 전표를 받아 챙기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며칠 있다 쏘주나 한 잔 하세.“
지에무씨는 잠실벌 이곳저곳을 돌며 모아 온 자갈을 마을 가운데 부렸다. 말 그대로 자갈판이었다. 자갈이 지에무씨 차 바닥을 긁으며 내려오는 소리는 모든 자갈들이 ‘세상 빛을 보게 해 주어 감사합니다’ 하고 외치는 소리처럼 들렸다. 엄마와 아버지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여전히 축축한 흙 속에서 지내고 있을 자갈들의 환성이었다.
지에무씨가 자갈 한 차를 부렸다고 해서 자갈더미가 크게 높아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가운데 자갈 쌓을 자리를 먼저 잡아두고 그 주변으로 둘레둘레 처마를 맞댄 집들이 앉아 있었다. 자갈더미가 높을 때는 건너편 집은 물론 그 뒤의 낮은 산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았다. 아이들은 자갈더미 위에 올라가지 말라는 어른들의 말을 피해 살금살금 자갈더미 위에 올라가 달려 내려오는 놀이를 즐겼다.
때때로 자갈은 부엌까지 따라 들어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