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뉘엿뉘엿 잠실벌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흰 창호지 문을 뚫고 들어오는 맛난 주황빛 햇살이 방안을 물들이는데 엄마는 어디쯤 오고 있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별이 뜨고 달이 뜰 때쯤에나 엄마는 돌아오려나.
사방에서 어둠이 슬금슬금 기어들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울지 말라고 달래던 큰엄마가 방안을 한 번 들여다보고는 말없이 돌아섰다. 깜빡 졸던 아이는 잠시도 쉬지 않고 울고 있었던 것처럼 마른 울음소리를 냈다. 목이 쉬어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지도 않아 목을 쥐어짰다. 누나가 울자 따라 울던 동생은 울다 지쳐 곯아떨어졌다. 큰엄마가 차려다 놓은 작은 점심 상 연두색 조각 상보 위엔 커다란 짙은 회색 파리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아부지랑 얼렁 다녀오마. 니가 울면 동생도 따라 울어야. 뚝. 어서.”
엄마와 아버지는 새벽같이 집을 나서며 아이와 동생을 자갈더미 너머 큰엄마 댁에 맡겼다. 아이는 엄마 치맛자락을 잡고 매달렸다. 따라가겠다고 발버둥을 치며 대성통곡을 했다. 동생도 덩달아 울었다.
“맛있는 것 사 오마. 동생이랑 싸우지 말고 놀고 있거라. 물 때 놓치겄다.”
엄마는 치맛자락을 잡은 아이 손을 떼어내며 저만치 앞서 가고 있는 아버지 뒤를 따라 낮은 언덕 소나무 사잇길로 총총 사라졌다.
“이제 그만 울어라.”
“목구녕에서 피난다.”
“가짜 울음인 줄 다 알어. 그만 울어. 뚝.”
어른들은 한 번씩 달래고 갔고 또래들은 힐끔 들여다보고 갔다.
지금이라도 당장 울음을 멈추고 나가서 아이들이랑 놀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누가 한 번만 더 울지 말라고 달래준다면 못 이기는 척 그칠 것 같았다. 아이의 바람대로 누군가 와서 한 번 더 달래고 갔다. 그런데 울음이 단번에 멈춰지지 않았다. 몇 번 더 달래주면 그칠 것도 같은데 한 번 더 달래던 것마저 뚝 끊긴 것 같았다. 누가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달래주기를 바라다 저녁 해가 잠실벌 아래로 내려갈 시간까지 와 버린 것이다.
눈을 떴을 땐 엄마가 생선을 조려 저녁 밥상을 차려낸 뒤였다.
“아가, 어서 먹어라. 한 종일 울었담서? 목도 아프겄네. 생선은 물 때 맞춰 가야 싱싱한 놈으로 살 수 있어야. 젓갈도 담고 졸여도 묵고 할라먼 시간을 잘 맞춰 가사 써. 맛있지야? 엄마가 너 띠어 놓고 멀리 갈 것도 아닌디 목 아프게 믓을 그리 울었다냐.”
멸치젓도 새우젓도 갈치젓도 누구네 할 것 없이 다 엄마가 담그는 줄 알았다.
아이는 오랫동안 울보에 고집쟁이로 불렸다. 중요한 건 엄마가 돌아왔다는 사실이었다.
언제부턴가 자갈판에 쌓여 있는 자갈이 제대로 팔려나가지 않았다. 아버지를 비롯한 노동자들은 더 이상 돈이 되지 않는 자갈 캐는 일에 목숨을 걸지 않게 되었다. 가끔 화투판이 벌어지기도 했고 때로는 술 취한 아버지들 사이에 싸움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아이가 처음 이 마을에 왔을 때 흰 무명 저고리와 검정치마를 입고 처마 밑 아이들의 놀이를 구경하며 기대 서 있던 그 하꼬방 사무실은 문이 열려 있기 일쑤였다. 바람에 문짝이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하며 벽에 부딪치는 소리가 쿵쿵 울렸다. 찢어진 전표가 바닥에 굴러도 누구 하나 주워 챙기려 하지 않았다. 그동안 일한 삯을 어떻게 받아내야 할지, 떼인 것 같다고 말하는 어른들의 시름이 깊어만 갔다.
부양해야 할 가족이 늘어난 아버지 역시 이 시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아버지는 일자리를 알아보기 위해, 엄마는 채소 행상으로 종일 집을 비웠다. 이웃 마을에 라면 공장이 들어섰다며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니거나 아예 동네를 뜨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얼마 후 자갈판 바로 위 공터에도 큰 공장이 들어섰다. 동네 언니나 오빠들은 돈을 벌기 위해 그 공장에서 일을 했다.
큰집 춘심이 언니도 마을에 들어선 그 공장에 나갔다. 우리 장미, 우리 장미. 언니는 아이의 이름 앞에 언제나 ‘우리’라는 말을 붙였다. ‘우리’라는 단어 하나로 인해 아이는 춘심이 언니가 아이를 얼마나 각별하게 생각하는지 직감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그 언니가 첫 월급을 탔다. 언니는 첫 월급 기념이라며 정미네 가게를 털어내기라도 할 듯 여러 가지 물건을 사서 가까운 이들에게 돌렸다.
아이는 춘심이 언니가 공장에 나가 일한 대가로 받은 첫 월급으로 달달한 과자를 한 아름 사 주었다는 데 깊이 만족했다.
공장에 나간 지 몇 개월 안 되어 언니는 손가락이 오그라들거나 손가락 마디마디가 툭툭 불거지는 병에 걸렸다. 언니는 공장을 그만두어야 했다. 돈은 갖고 싶은 것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마법을 가졌지만 언니가 아프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병에 걸리면서까지 돈을 버는 것은 옳지 않았다.
언니는 오래도록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긴 시간 병원에 다녔으나 이발사 형부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이후로도 언니의 손가락은 본래의 그 희고 길게 죽죽 뻗었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이는 언니의 손을 보면 언니가 사준 과자를 당연하다는 듯 받아먹었던 일이 떠올라 미안했다. 상급학교에 진학하여 산업의 폐해에 대한 수업을 들으면서 언니의 그 병은 이따이이따이 병이거나 미나마타 병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언니는 60세도 되기 전 암으로 세상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