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어른들은 자갈 캐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책상 하나가 덩그러니 놓인 채 문만 홀로 여닫히던 하꼬방 사무실도 사라졌다. 누군가는 전표 장부를 따로 보관한 사람이 있다고도 했지만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 동네 한가운데 산더미처럼 쌓여 팔려나갈 날만을 기다리던 자갈은 잘 분류되어 있던 처음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마구 섞이면서 무너져 내렸다.
자갈더미 쪽으로 난 봉창을 통해 자갈더미 너머에 있는 집들의 지붕이 보이기 시작했다. 때때로 자갈더미 쪽으로 문이 나 있는 집 부엌에는 더 많은 자갈이 굴러들어 오기도 했다.
능내역에서 내려 엄마 아버지의 일터를 찾아가는 소나무 우거진 산길은 습하고 그늘지고 조용했다. 주황색 나리꽃이 가까이서 또는 멀리서 땀 흘리며 걸어가는 아이를 반겼다. 언덕을 몇 걸음 올라 나리꽃을 한 송이 꺾어 들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산길을 다 벗어나도록 사람 하나 만나지 못했다. 나리꽃 안쪽에는 검붉은 반점이 점점이 박혀 있었고 꽃가루도 제법 풍부했다. 칼날처럼 날카롭게 생긴 잎은 보기와는 달리 도톰하고 부드러웠다.
산길을 벗어나면 모래벌판이 나왔다. 그때부터는 군인 아저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군부대 근처에 엄마 아버지 일터인 작은 가게가 있었다. 트럭을 타고 가는 군인 아저씨들이 손을 흔들었다. 아이도 군인 아저씨들을 향해 나리꽃을 든 손을 흔들었다. 아버지를 똑 닮은 젖먹이 둘째 남동생이 아장거리며 달려와 아이에게 안겼다. 군인 아저씨가 다가와 우리 가족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무렵 아이는 종기를 달고 살았다. 눈 다래끼뿐만 아니라 옴 여기저기 종기가 가시지 않았다. 엄마는 아이를 무릎에 눕히고 미리 따 놓은 아카시아 가시에 서너 번 콧김을 쐰 다음 곪은 다래끼 꼭지를 찌르고 고름을 짜내곤 했다. 그럴 때면 엄마 손이 눈알을 누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엄마 손은 따스했고 그 따스함은 한 여름에도 싫지 않았다.
능내에 갔던 그날은 목 뒤와 사타구니에도 종기가 나 있었다. 엄마는 이번에도 무시무시한 아카시아 가시 하나를 따서 연신 콧김을 쏘였다. 목 뒤 종기는 목뼈가 있으니 고름을 짜기가 눈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수월했을 것이다.
“아이고, 으째서 이렇게 종기가 자주 난다냐.”
목 뒤 종기를 다 짠 엄마가 그 자리에 고약을 붙였다. 고약 붙일 종이를 둥글게 자른 위에 연신 침을 발라가며 떼어낸 검은 고약을 넓적하게 펴 발랐다. 다음에는 종기의 나쁜 것을 빼 낼 핵심인 흰색의 고약을 녹두알 만하게 떼어내 뭉친 후 검은 고약 중앙에 고정시킨 것을 방금 고름을 짜낸 구멍쯤에 붙였다. 쓰라림에 몸이 뒤틀리는 듯했다. 목 뒤 종기를 마무리한 엄마는 사타구니 종기 고름을 짜내기 위해 눕기를 청했다. 눕기 싫다고 빼는 아이를 억지로 잡아다 바닥에 눕혔다. 그리고 아카시아 가시로 종기를 찔렀다. 아이는 자지러졌다.
“고름이 솟는 걸 본께 금방 낫겄다.”
엄마가 손으로 고름 짜내기가 쉽지 않은 사타구니 종기에 입을 대고 고름을 빨아냈다. 아프다는 소리가 쏙 들어갔다. 아이는 엄마의 사타구니에 난 종기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낼 수 있을까 생각하곤 했다.
여름은 홍수를 몰고 왔다. 홍수로 가게가 물에 잠긴 엄마와 아버지는 일을 접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 밖으로 달려 나가 놀았다. 자갈더미에서 나오는 물을 흘려보내기 위해 물길 내는 놀이를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어른들의 눈을 피해 강변으로 나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비가 그치자 아버지가 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부지 따라 강에 나가볼라냐?”
아이는 아버지 손을 잡고 강가로 나갔다. 아버지와 함께 서서 화난 듯 무섭게 흐르는 황토색 강을 바라보았다.
홍수로 불어난 강은 평소 강가에서 놀던 때의 그 잔잔한 강이 아니었다,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물살에 휩쓸려 내려가고 있었다. 잿빛이 되도록 삭은 초가지붕 위에서는 누런 개 한 마리가 공포에 지쳤는지 미동도 없이 강가 쪽을 바라보며 물결에 떠내려갔다. 돼지 서너 마리가 돼지우리와 함께 둥둥 떠내려가는 모습도 보였다. 의지할 곳 없어 누런 물살에 이리저리 휩쓸리고 있는 황소도 보았다. 보라색 가지도 흰색 가지도 떠내려 왔다. 심한 물맛에 지친 것들은 모두 아래로 아래로 떠내려 갔다.
아버지가 말없이 아이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아이는 자리에 눕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밖으로 나왔다. 다른 아이들처럼 자갈더미에서 나오는 물에게 길을 만들어 주는 놀이에 빠졌다. 작은 웅덩이도 몇 개 팠다. 웅덩이를 파니 흙탕물이 되었다. 손가락이 쓸려 피가 비치도록 웅덩이의 흙탕물을 움켜냈다. 그러나 움켜낼수록 흙탕물은 흙탕물을 일으켰다. 새 물이 흘러들어오는 걸 지켜보다 아래쪽에 작은 웅덩이를 하나 더 팠다. 위쪽 웅덩이 물이 점점 맑아지고 있었다.
“흙탕물이 빨리 맑아지게 하려면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흙탕물을 빨리 맑게 할 생각으로 흙탕물을 움켜내면 그럴수록 힘만 들고 흙탕물은 계속 생겨납니다. 그런 땐 그냥 가만히 기다리십시오. 기다리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물이 맑아져 있을 겁니다. 용서도 그렇습니다. 잊어버릴 수 있다면 잊어버리고 기다리시는 겁니다.”
아이가 어른이 되었을 때 하얀 작은 문 너머에서 첫 고백성사를 들어주신 젊은 신부님이 들려주신 말씀이다.
겨울밤이 깊었다. 잠시 후면 ‘찹쌀떡 사려’ 소리가 들려올 것이다. 제트기 꽁무니에서 뿜어져 나온 흰 선이 푸른 하늘을 가르듯 찹쌀떡 사려 소리의 꼬리가 어둠에 그림을 그리며 지나갈 것이다. 대문 두드리는 소리에 이불속에서 나와 문을 열었다. 낚시꾼 차림의 남자 둘이 아버지를 찾았다. 아버지와 그들 사이에 무슨 말인가가 오갔고 아버지는 마당 저편 작고 허접한 창고 쪽으로 아저씨들을 안내했다. 밤하늘을 배경으로 램프 앞에 선 아버지가 창고 안에서 뭔가를 꺼내 낚시꾼들에게 건넸다.
“믓을 빌리러 왔습디까?”
엄마가 물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얼음낚시하러 왔다네. 낚시 의자 두 개랑 깡통 한 개에 숯 까득 담아 줬네. 이번 겨울이 많이 추워서 얼음 깨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디 이런 밤에도 낚시하러 오는 사람이 있긴 있네.”
시간 여유가 있는 날이면 아버지는 목침 같은 것을 뚝딱뚝딱 잘 만드셨다. 그런 아버지가 만든 낚시용 의자가 쓰임이 된다니 은근 우쭐해졌다. 그때 ‘찹쌀떡 사려’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버지가 마을 쪽으로 난 봉창을 열고 소리쳤다.
“찹쌀떡.”
아버지는 찹쌀떡과 메밀묵을 넉넉히 샀다.
좀체 형편이 나아지는 기색이 없는 날들이 오래 이어졌다. 그런 밤 찹쌀떡과 메밀묵은 오랜만에 가족들 얼굴에도 마음에도 잠깐이나마 만족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