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서울 깡촌의 어느 하루

by 장미

이른 봄, 대바구니를 든 엄마를 따라나섰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땅이 녹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신발 바닥에는 녹은 땅덩어리가 들러붙어 발이 무거웠다. 마른풀 위에 신발 바닥을 여러 번 문질러 들러붙은 흙을 떼어 냈다. 아버지가 짜 주신 까만 귀마개를 하고 손가락마다 다른 색을 넣어 짠 무지개 손가락장갑을 꼈는데도 들판의 이른 봄은 시리고 추웠다.


바람이 없는 이른 봄 들판은 해를 가릴 것이 없어 다른 데에 비해 따뜻했다. 엄마는 흙이 대강 녹은 자리를 찾아 엄마의 큰 고무신 한 발을 쿡 눌러 찍었다. 그 발자국을 밟고 따라오라는 뜻이다. 가끔은 고무신이 찌익 미끄러지는 적도 있었다. 엄마도 몇 걸음 걷다가 마른풀 위에 고무신 바닥을 문질러 가며 고무신을 벗겨버릴 기세로 들러붙은 흙을 떨쳤다.





땅이 거의 녹은 자리에 자라고 있는 나물들은 힘을 덜 들이고 캘 수 있었다. 엄마는 그 자리에 쭈그리고 앉아 눈에 띄는 대로 여러 가지 나물을 캤다. 평소에는 사용하지 않는 끝이 뾰족하고 작은 칼을 나물의 뿌리 근처에 대고 깊이 찔러 넣었다. 땅이 많이 녹았을 때는 뿌리가 바로 뽑혀 올라왔지만 이제 녹는 중인 땅에서는 뿌리 주변에 칼을 대고 같은 동작을 두어 번 더 반복해야 나물을 캘 수 있었다. 나물 뿌리에는 덩어리진 흙이 붙어 있었다. 쑥은 물론 별 같은 곱고 작은 꽃을 피워서 아름도 별꽃인 좁쌀나물, 냉이와 달래 외에도 황새냉이 뿌리도 좋은 봄나물이었다.


잎은 검푸르거나 검붉은 이른 봄 냉이는 땅바닥에 찰싹 달라붙어 있지만 자세히만 들여다보면 다른 풀들과 구별하기 쉬웠다. 얼음을 깨고 빨래를 하던 엄마 손은 빨간색이었지만 나물을 캐는 날의 엄마 손은 냉이와 같은 검푸르딩딩한 색이었다.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추운 겨울을 견디는 냉이는 있는 지혜로운 나물처럼 보였다.

“냉이는 잎사구도 좋제만 뿌리를 더 친단다. 저실내 언 땅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은 뿌리라 사람이 묵으면 냉이가 저실을 전딘 좋은 심을 묵는다고 생각해서 그란단다.”


날씨가 조금씩 더 풀리면서 황새냉이 잎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황새냉이와 일반 냉이를 구별할 수 있었다. 황새냉이는 일반 냉이에 비해 잎에 밝은 연두색이 더 많이 돌뿐만 아니라 바닥에 납작 엎드리지도 않고 키도 컸다. 또 황새냉이는 뿌리가 일반 냉이보다 훨씬 도톰하고 길었다.


나물은 손이 많이 가는 먹거리다. 추운 날 들판에서 나물을 캐는 것도 일이지만 나물을 캐 온 것으로 일이 끝나지 않는다. 추운 날이니 방바닥에 커다란 보자기나 묵은 달력을 펴고 그 위에 캐온 나물을 쏟는다. 손을 쓸 수 있는 가족들은 모두 둘러앉아 종류별로 나물을 가리고 다듬어 커다란 바구니나 양은 대야에 모아 담는다.


사람이나 큰 물건이 드나드는 큰 문 외에 방과 부엌 사이 반찬이나 밥 등을 들이고 낼 때 쓰는 쪽문이 있었다. 그 쪽문으로 엄마가 나물을 데치는 동안 하얀 김 속에서 바삐 움직이는 엄마의 모습을 한참씩 지켜보았다.


나물을 데쳐 내는 동안 엄마의 입에서는 ‘쉬이’ ‘쉬이’ 소리가 새어 나왔다. 쪽문에 대고 부엌의 엄마에게 많은 것을 물었다. ‘소금은 왜 넣어?’ ‘왜 찬물에 빨리 담가야 하는 거야?’ ‘ 엄마 손 안 뜨거워?’ ‘지금 삶는 건 뭐야? 쓴 내가 나네.’ ‘이번엔 냉이다, 맞지?’ 이런 질문에 엄마는 싫은 내색 없이 하나하나 답을 해 주었다.


소금을 넣는 이유는 잎이 초록색을 띤 나물일수록 데쳤을 때 초록색이 살아나게 하기 위함이다. 소금을 넣었더라도 찬물에 바로 헹구지 않으면 펄펄 끓는 물의 열기 때문에 나물의 푸른색이 누렇게 변하거나 지나치게 물러 버릴 수 있다. 황새냉이 뿌리 역시 찬물에 빨리 헹궈야 열기에 의해 물크러지는 걸 방지할 수 있다. 물쑥 뿌리는 쓴맛을 줄이기 위해 데쳐 낸 후 물에 얼마 동안 담가 두기도 한다.





땔감 마련 또한 엄마의 몫이었다. 나무 하러 가는 엄마를 따라 뒷산에 올랐던 적이 있다. 엄마 손에는 갈퀴 한 자루와 가지런히 사린 새끼줄 꾸러미, 그리고 낫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산에 쌓인 눈은 며칠 지나면 처음 내려 쌓일 때와는 달리 숨이 많이 죽어 있곤 했다. 군데군데 푹 꺼지거나 위쪽은 얼어 있는데 아래쪽은 녹아 있는 등 여러 가지 모양을 보여 주었다. 이엉 위에 쌓인 눈이 녹을 때처럼 고드름 형태를 한 것도 있었다. 겨우내 쌓이고 녹고 다시 쌓이고 녹기를 반복한 눈은 아주 엷은 하늘빛이나 회색빛이 돌았다.


엄마가 눈이 제법 녹은 자리에 새끼줄 세 개를 두어 뼘 간격으로 나란히 늘어놓았다. 그리고 너른 잎 몇 개 붙인 채 말라 뒹구는 참나무 가지를 주워 나란히 놓인 새끼줄 위에 척척 걸쳤다. 잎이 다 떨어진 소나무 삭정이도 낫으로 몇 가지 잘라 그 위에 올렸다. 그런 다음 주변 눈 녹은 자리를 찾아다니며 솔가리들을 갈퀴로 긁어모았다.


“저렇게 크고 좋아 보이는 참나무 잎사구들은 크기는 해도 불만 붙었다 하먼 금방 벌벌 타 재가 되야 부러야. 마디지가 못하제. 불이 세지 못하고 오래가지도 못한단 말이여. 솔잎은 작고 가늘어 보여도 불이 오래가니라. 사람도 마찬가지여. 좋은 사람 같어도 오래 알고 지내다 보먼 겉과 속이 다른 사람도 많단다. 우리 애기는 솔잎 같은 사람이 되얐으먼 좋겄다.”


배꼽시계가 신나게 울어대다 지칠 때쯤이 되어서야 엄마는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새끼줄 위에 쌓인 솔가리를 묶기 시작했다. 세 개의 새끼줄 중 먼저 가장자리에 놓인 두 개의 새끼줄부터 양쪽 끝을 하나씩 당겨 힘을 주어 묶었다. 다음으로 가운데 놓인 새끼줄 양쪽을 잡고 아주 힘껏 당겨 묶었다. 그런 다음 다시 처음 묶었던 가장자리 두 개의 새끼줄을 하나씩 차례로 풀었다가 다시 세게 당겨 묶는 과정을 거쳤다. 엄마 입에서는 나물을 데쳐 낼 때와 같은 ‘쉬이’ ‘쉬이’ 소리와 ‘끙’ 소리가 섞여 나왔다.





“아가, 어서 가자. 산 쥔 만날까 무섭다. 솔가리를 솔밭에 그대로 둬야 하는디 내가 이렇게 긁어가니 산 쥔은 안 좋아하제. 나무가 묵어야 할 것을 내가 갖고 가부니 말이다.”

이렇게 큰 산의 주인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헤졌다.


“아가, 엄마가 여그다 머리를 댈 것잉께 너는 그 짝에서 받침서 아조 쪼깐만 밀어 주라. 할 수 있겄냐?”

엄마는 솔가리 둥치 한가운데를 가리키며 경사진 쪽으로 약간 굴렸다. 경사 아래쪽으로 내려간 엄마가 머리를 솔가리 둥치에 댔는지 ‘밀어라’ 하고 소리쳤다. 엄마는 솔가리 둥치 아래쪽에 있는 데다 솔가리 둥치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다. 엄마가 아래쪽으로 구르면 어쩌나 걱정은 되었으나 엄마 말대로 아주 조금 힘을 주었다. 힘겹게 솔가리 둥치가 조금씩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빨아도 빠지지 않을 엉긴 얼룩에 구겨진 엄마의 일복 바지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마침내 엄마 허리가 보였다. 가슴이 보이고 상기된 엄마의 턱이 보였다.


엄마는 산 쥔을 만나게 된다 하더라도 가족의 따뜻한 잠자리를 위해서는 솔가리를 긁어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먹고는 살아야 했고 식구들이 얼어 죽지 않게 하려면 엄마에게는 무엇이든 아궁이를 지필 것이 필요한 겨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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