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열아홉과 스물아홉 사이

by 장미

그녀는 열아홉에 시집을 가서 스물아홉에 첫 딸인 나를 낳았다. 그녀의 열아홉과 스물아홉 사이가 늘 궁금했다. 열무를 다듬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애기가 빨리 안 생겼어?”

“......”





그녀에게 몇 살에 결혼했는지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녀는 열아홉에 결혼했다고 했다. 그런데 왜 그녀와 나의 나이 차가 스물아홉이나 되는지 다시 물었다.


이후 아직 그녀의 답을 듣지 못했다. 마치 지금껏 주욱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듯 나는 그녀에게 물었고 그녀는 그에 대한 답을 요구하는 질문임을 직감했다. 하늘은 우중충했고 바람은 잠잠했다. 그녀의 얼굴에서는 땀이 지렁이처럼 기어 내렸다.


열세 살, 나는 어느 정도는 잔인할 수도 있는 시기로 들어서는 중이었다. 굳이 그녀의 입을 통해 듣지 않아도 될 이야기이기는 했다. 일정 부분은 할머니의 입을 통해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온 터였기 때문이다. 한 아들을 두고 차례로 들인 며느리 둘이 하나같이 친정에 간 이후 돌아오지 않아 비어 있던 그 자리에 그녀가 들어온 데까지는 듣고 싶지도 않았다. 엄마라는 한 여자의 말하여지지 않은 부분에 대해 엄마의 입을 통해 듣고 싶을 뿐이었다.


그녀가 대답 대신 열무 단을 묶으면서 흘낏 먼 데 산을 훑었다. 평소 같으면 몇 단 더 담아도 될 헐렁한 대야에 얼룩진 무명 보자기를 덮었다. 머리에 똬리를 올린 다음 대야를 무릎에 올리며 말했다.

“여그 잔 받쳐 주라.”

나는 열무 다듬던 손을 멈추고 일어서서 그녀가 열무 담긴 대야를 수월하게 머리에 일 수 있도록 대야 아래쪽을 받쳐 주었다. 대야를 이고 일어선 그녀가 똬리에 달린 길고 가느다란 땟국물 흐르는 줄을 입에 물었다. 언젠가 겨울산에서 커다란 솔가리 둥치를 머리에 일 때도 그녀는 오늘처럼 내 작은 힘을 빌렸던 적이 있었다.

“어서 다듬어라. 오늘은 이놈 말고 한 바쿠만 더 돌고 들어가사 쓰겄다.”





열무 대야를 이고 걸어가는 그녀와 그녀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나 사이로 빗방울이 한두 개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뽑고 다듬어야 할 열무 두둑은 이제야 끝이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녀 말처럼 이번 말고 한 바퀴 더 돌고 가는 일이 오늘은 그른 것 같았다. 바삐 열무를 뽑고 다듬어 쌓았지만 빗소리는 이중창에서 사중창으로 넘어가는가 싶더니 합창으로 바뀌었다. 옆 두둑 아줌마들은 자신들이 뽑아 놓은 열무 위에 재빨리 거적을 덮었다. 비를 피해 달려가며 나를 불렀다.

“얘, 어서 가자. 비 보내고 이따 또 하면 돼.”


나는 그들을 따라 달릴 수 없었다. 빗속에 그녀의 열무를 버려두고 나 혼자 비를 피해 달아날 수 없었다. 빗방울이 더욱 바쁜 듯이 쏟아졌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할지 몰라 다듬던 열무를 손에 든 채 그대로 앉아 있었다. 그 여름 가장이 되어야 했던 그녀의 열무가 비를 맞고 있는 모습이 내가 비를 맞는 것보다 더 안타까웠다. 비 맞는 그녀의 열무에게 해 줄 수 있는 일이라곤 같이 비를 맞아주는 것뿐이었다. 비가 더 거세졌다. 그녀가 울지 않기를 바랐다. 비를 피해 처마 밑이라도 찾아들었기를 바랐다. 우르릉 꽝. 그녀에게 그 질문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녀가 도깨비 고개를 넘으며 했던 말 그대로 나는 그녀에게 원수일 수도 있었지만 그녀가 나를 대하는 여러 가지로 봐서는 원수에게는 결코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녀가 헐레벌떡 빗속을 달려왔다. 비에 젖은 허름한 옷이 그녀의 몸에 착 달라붙어 늘어진 젖가슴이 무겁게 춤을 추었다. 젖가리개를 하기 전인 내 봉긋하게 솟기 시작한 젖망울도 그녀와 다르지 않았다. 그녀가 열무 대야를 내동댕이치듯 던지며 나를 안았다.

“아이고 으디든지 쪼깐 피해 있어야제, 이 빗속에서 이것이 믓이다냐? 어서 가자.”


그녀는 입으로는 어서 가자면서 손으로는 비 맞은 열무를 한 곳으로 모았다. 나도 그녀와 함께 열무를 한 곳으로 모았다. 모은 열무 위에 그녀가 대야를 덮었던 얼룩덜룩한 무명 보자기를 엎었다. 다시 한번 번개가 쳤고 우레 소리가 따라왔다. 그녀가 나를 더 꼭 끌어안으며 땅바닥에 엎드렸다.





어렵사리 원두막에 도착했다. 그녀와 둘이서만 피신해 있을 만한 곳이 간절했다. 빗물을 줄줄 흘리며 서 있는 그녀와 나를 향한 원두막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 언저리마저 부담스러웠다. 몸에 들러붙은 옷을 떼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써도 그녀의 늘어진 젖가슴과 봉긋 올라오기 시작한 내 젖망울만은 부끄러워할 줄 몰랐다.


비가 그치고 어둑했던 하늘이 벌어진 손가락 사이만큼 빤해졌다.

“쩌 웃동네서 열무 멫 단 갖다 주라는디 이놈은 물을 많이 묵어 안 되겄다. 물기를 너머 많이 머금고 있는 것은 짐치가 싱거서 맛이 읎어야. 집에 가는 질에 그 집에 들렀다 가자. 낼 새 놈으로 갖다 준다고.”

“......”

“이 놈은 우리가 묵자. 뜨물 섞어 심심하게 버무렜다 국수도 비베 묵고, 삶어서 된장 넣고 노물도 무쳐 묵자. 된장국도 맛나제.”

“......”


윗동네 아줌마의 열무 음식도 그녀의 열무 음식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물김치도 하고 나물도 해 먹고 된장국에 넣어도 되니까 걱정하지 말고 놓고 가세요.”

그녀는 아줌마가 건네는 돈에서 얼마를 빼서 돌려주고 돌아섰다.


집에 도착하니 몸에서 쉰내가 났다.

“전학증이 얼렁 와사 쓸 것인디 으째서 서울 올라온 지 멫 달이 지났는디도 전학증이 안 오는가 모르겄다.”

학교 다닐 때로 치면 여름방학 한가운데였다.





5학년을 마칠 무렵쯤 서울행을 결심한 아버지들끼리 의논한 끝에 서울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6학년 올라가 달포쯤 지났을 때였다. 철거민 촌 옆 공터에 천막을 치고 몇 개월 동안 한 천막에서 네 집이 거주했다. 아버지가 집 문제로 다른 아버지들과 의논을 하고 이곳저곳을 왕래하는 사이 우리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었다. 철거민 촌에 빈집이 나오는 대로 한 집 두 집 철거민촌 사람들 속에 섞이게 되었다.


서울로 올라오기 전 학교에는 이사 간다는 사실을 전했지만 전학증은 바로 오지 않았다. 우리가 이주민으로서의 약속을 다 지키지 못한 데 대해 아버지들은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6학년인 나와 4학년 큰 남동생, 1학년인 둘째 남동생까지 심신이 한없이 자라도 모자랄 그 시기를 하릴없이 빈둥거리며 지내야 했다. 함께 올라온 다른 집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씻고 나온 나를 불렀다. 방바닥에는 작은 빨간 돼지저금통과 10원짜리 동전 세 개가 있었다.

“아나, 이것 받아라. 이것은 니가 오늘 일한 대가다. 엄마 도울 때마다 줄 것잉께 모탰다가 써라.”

“......”

“많이 벌먼 많이 줄 것인디 엄마가 그라지를 못한다.”

나는 말없이 그녀가 건넨 동전 세 개를 빨간 작은 돼지저금통 등에 나 있는 구멍으로 밀어 넣었다. 저축이란 것을 그녀가 건넨 빨간 돼지저금통 속에 10원짜리 동전 세 개를 밀어 넣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녀가 다시 입을 뗐다.


“니 우그로 언니 둘하고 오빠가 한나 있었드란다. 그란디 오래 시상살이를 못하고 일찍 떠 부렀단다. 어메 열아홉에서 스물아홉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거그까장만 알어라.”





전학증은 10월 초에야 도착했다. 전학을 받아줄 집에서 가까운 학교에서는 이미 1학기가 지났고 2학기도 벌써 한 달이 넘어서 이번 해에는 받아줄 수 없다고 알려왔다. 다음 해 봄, 아버지와 함께 전학할 학교에 갔다. 교감선생님께서 내 주신 분수 문제를 풀었다. 6학년에 들어갈 실력은 되는지 또 6학년 3개 반 중에서 어느 반에 배정할지를 알아보신다는 말씀이었다. 금세 풀어 교감선생님께 시험지를 드렸다.


“오, 다 맞았구나. 으음, 6학년 3반으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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