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삶은 내게 그대로 유전될 것이었다. 보고 배운 것이 그녀였기에 그녀를 이어받는다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녀의 시어머니에 의하면 그녀는 부모가 짝 지어준 사람과 결혼을 했으나 무슨 연유에선지 실패를 한다. 다시 부모가 맺어준 사람과 재혼을 했으니 그 재혼 상대가 바로 할머니의 외아들 즉 나의 아버지다. 그에게는 전 부인이 둘 있었으며 두 부인 모두 친정에 일 보러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 열무 밭에서 뼛속까지 젖을 정도로 비를 맞고 집에 돌아온 날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두 딸과 한 아들을 두었으며 그 이상은 내가 궁금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중학생이라는 옷을 입으면서 그녀라는 옷을 벗어 버리기로 했다. 나는 그녀를 통해 세상에 나왔지만 그녀의 복제품이 아닌 전혀 다른 개체로 태어났으며 이미 그녀처럼 살고 있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그녀를 보지 않을 때조차 그녀 생각만 하면 내가 그녀의 삶과 닮은 삶을 살게 될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혀 화가 치밀었다. 그녀의 무조건적인 인내가 내게 전염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아버지의 우리 장미에 대한 비호는 내가 중학교 교복을 입으면서 점차 극을 향해 달렸다. 그녀의 인내심의 끝이 어디인지 실험이라도 하듯 나는 그녀에게 화살이 돌아갈 일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어떻게든 찾아서 했다. 나는 집안 어떤 것에도 관심 가질 필요가 없이 오로지 공부에만 열중하면 되었다. 아니 책상 앞에 앉아만 있으면 되었다.
따르르릉. 시계가 5시 반을 알린다. 나는 알람과 함께 일어나 씻고 교복을 입는다. 이렇게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에서 15분이면 족하다. 연탄불이나 석유곤로 위에서 노란 양은 냄비에 내 밥만을 따로 지어 대령하는 그녀는 내가 준비를 끝낸 시간에 맞춰 내 앞에 작은 은색 양은 밥상을 대령한다. 시간 맞춰 밥상을 대령하지 않으면 나는 말없이 운동화를 신고 바로 등굣길에 오른다. 그녀는 뜸도 들지 않은 밥 한 술을 찬물에 말아 들고 나오며 사정한다.
“한 술 뜨고 가거라.”
나는 콧방귀도 뀌지 않고 새벽을 가르며 재게 걷는다. 그녀는 종종거리며 몇 걸음 달려오다 재빨리 들어가 싸다 만 도시락을 주섬주섬 챙겨 나온다.
“벤또라도 갖고 가야제.”
나를 바라보고 있을 그녀의 시선이 뒤통수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음을 느끼며 나는 걸음을 더 빨리한다. 종일 배고플 것이다. 그녀는 오늘 종일 배고픈 나를 생각하며 마음 아파야 한다. 버스를 기다리는데 그녀가 헐레벌떡 육교를 내려오며 소리친다. 손에는 낯익은 도시락 주머니가 들려 있다.
“아가, 벤또 갖고 가야제. 아침도 못 묵었는디 정심이라도 묵어......”
나는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아닌 줄 알면서 내 앞에 멈춰 선 아무 버스에나 올라탄다. 버스 비가 없어 아니 버스 비가 있다 하더라도 아까워서 버스에 따라 오를 생각을 못한 채 망연히 바라보고 선 그녀를 나는 시선 가장자리 밖으로 밀어낸다. 나는 그 순간 그녀를 모르는 사람이다. 버스가 달리기 시작하면 비로소 그녀는 버스 뒤 창문을 통해 내 시선의 정중앙에 들어온다. 달리는 버스 뒤꽁무니에 매달려 나와 함께 달리는 그녀의 시선이 그녀와 나 사이를 하루 종일 물고 늘어진다. 나는 슬프다. 그녀에게 나는 내일도 같은 일을 반복할 것을 안다.
유치하다. 내가 타서는 안 될 버스인 줄 알면서도 올라탔으니 두어 정거장 만에 내린다. 그리고 내가 가야 할 방향으로 가는 버스로 바꿔 탄다. 7시쯤이면 학교에 도착한다. 학교에 도착하면 아직 교문을 열어 놓지 않은 날도 있다. 때로는 교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리기도 하지만 철문을 마구 두드려 꿈결 같은 단잠을 마저 떨치지 못한 숙직 아저씨로 하여금 교문을 열게 하기도 한다.
작은 덧신 안에 할머니가 이름 붙여준 커다란 도둑년 발을 구겨 넣고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올라간다. 소리 안 나게 복도를 걸어 교실 앞문 위에 놓아둔 열쇠를 집어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1등으로 교실에 들어가 자리에 앉는다. 칠판을 바라보고 수업 시간 순서에 맞춰 책을 정리하면 끝이다. 가끔 교실을 장식하고 있는 화초들을 들여다보거나 우두커니 운동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이들이 하나 둘 교실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7시 반이다. 교실의 적막은 잔잔한 파도처럼 번져 사라지고 이내 왁자지껄해진다.
학교를 오가는 차비 외에는 용돈 한 푼 없는 내 뱃속에서는 그런 날 하루 종일 뱃속에서 도랑물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허기진 배를 안고 새벽 등굣길 헐렁한 버스와는 달리 고무로 된 버스였으면 싶은 만원 버스를 타고 집으로 온다. 배가 고파 실신 직전이다. 집에 특별한 먹거리가 준비되어 있을 리 없다. 삶은 감자를 껍질 대강 벗겨 먹거나 식은 밥을 김칫국물에 비며 허천 들린 듯 아구아구 입속으로 쑤셔 넣는다. 공장 야근까지 마치고 저녁 9시가 넘어 집에 돌아온 그녀가 한 술 뜬다. 내가 보는 앞에서 아버지는 그녀를 쥐 잡듯이 몰아세운다. 아침에 어린 딸년에게 무너진 그녀는 늦은 저녁을 먹으면서 남편에게 한 번 더 무너진다. 낳아 주고 키워 주고 먹여 주고 입혀 주며 애지중지 키운 열여섯 살 딸년이 제멋대로 정한 새벽 등교 시간에 맞춰 아침밥 하나 대령 못했다고 마흔 중반의 그녀가 주눅이 들어 한 마디 대거리도 못한 채 체할 것 같은 늦은 저녁밥을 넘긴다.
나는 이 시기 김동인을 읽고 입센을 읽고 파우스트를 읽었다. 난중일기도 논어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어 없앴다. 한때 어린 나를 아버지 몰래 키워준 기본서였던 아버지의 ‘죄의 고백’은 기억 속에 묻힌 지 오래다.
내가 미친 듯이 읽어대는 책들 중에는 그녀라는 제목의 책도 있었다. 그러나 그 책에만은 더 이상 손대지 않았다. ‘거그까장만 알아라.’에서 덮어둔 그녀라는 책은 어디 있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관심을 끊기로 하니 끊어졌다. ‘거그’일 때 그녀와 나의 사이는 엄마와 딸이었다. ‘거그’에서 벗어났을 때 그녀가 써 내려온 그녀라는 책에는 얼마나 많은 것이 들어 있든 관심 밖이 되었다. 이야기를 숨긴 책에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거그까장만 알아라' 대신 '거그까장만 알먼 안 되겄냐?" 라고 했더라면 달랐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비루먹은 짐승처럼 맹지로 내몰렸다. 맹지로 내몰린 비루먹은 그녀의 탯줄에서는 여전히 나를 향해 뭔가가 흘러나왔다. 아무리 부정해도 그것은 사랑이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맹지로 내몰린 그녀라는 짐승은 더 이상 뽑힐 털도 갖고 있지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고통이 그를 살아있게 하는 힘이 아닐까 생각하는 날들이 가끔 나를 찾아와 머물다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