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온함을 느끼게 하는 환상의 공간
#리빙스턴 씨의 달빛서점 #모니카 구티에레스 아르테로
나는 여전히 서점에 대한 환상이 있다.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모두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대한 소설은 보일 때마다 읽을만한 내용인지 꼭 훑어보는 편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이 소설들은 새로운 세계로 이어지거나, 흥미롭거나 괴팍한 서점 주인들이 나오고, 대체로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어쩌면, 작가가 되어서도 서점이나 도서관에 대한 로망이 계속 이어지는 것인지 합리적인 의심이 생기는 지점이랄까ㅎ
제목과 표지 모두 동화같이 느껴지는 이 책을 빌린 것은
위와 같은 클리셰가 펼쳐질 것으로 확신했기 때문이다.
클리셰는 지겨운 동시에 편안하니까.
런던 어디쯤에 정말로 있을 것 같은,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게 되는 서점이다.
고고학자 일을 찾고자 바르셀로나에서 런던으로 온 아그네스는 일자리를 못찾고 헤매다가
달빛 서점을 발견한다.
그냥 딱 들어도 동화적 서점의 역할에 매우 충실하다.
괴팍하지만 친절하며 항상 문학적인 농담을 하는 서점 주인인 리빙스턴과,
변호사인 엄마가 서점에 방임 중인 우주비행사를 꿈꾸는 꼬마 올리버 트위스트는 나이를 뛰어넘는 친구 관계라는 콘셉트에 부합한다.
또한, 천장의 창문을 통해서 올리버는 망원경을 설치하며, 아름다운 양식의 계단과 책장의 묘사는 서점의 모습에 대한 상상력을 부추긴다. 더불어 파란 스탠드 옆에 항상 있다는 상주 작가와, 월요일마다 서점주인과 책의 내용에 대해 논쟁하는 열성적 독자인 드레스덴 부인은 책을 읽는 내내 미소를 짓게 한다.
괴팍한 서점 주인을 사랑하는 지혜로운 출판사 주인 시오반과, 책 도난 사건을 해결하려고 발을 들였다가 맨발로 걸어다니는 아그네스와 사랑에 빠진 경찰관 존의 이야기도 새롭지는 않다.
아그네스의 집주인이자 친구인 재스민과 자주 가던 식당 요리사 캐드월러더 커플도 귀엽달까.
그냥 진짜 어딘가 있을 법한 귀여운 사람들 살짝 엿본 기분이다. ㅎ
실제로도 있으면 좋을 테지만,,,
소설에서만 나오는 서점이라는 점은 아쉽다.
언젠가 이런 곳을 만들고도 싶지만,
어후, 출판산업은.............. 죽지는 않으나 버티는 게 의문인 이제는 책표지를 비롯한 여러 굿즈로 점철된 묘한 마케팅이 핵심이 된 곳이니까...
그보다는 내가 읽고 좋았던 책들을 모아서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보는 것도 어떨까 싶다.
집도 작고 돈도 없으니, 빌려 읽은 책 모두를 살 수도 보관할 수도 없어서 어릴 때부터 생각을 쭉 하고 있다.
나만의 안전하고 평안하며 아름다운 동굴로써 기능하는 도서관을 만들 게 되기를
마음 한 구석에 꿈꾼달까. ㅎ
ps. 아그네스가 결국 그녀가 원하던 고고학과 관련된 일을 하게 될 거란 건 예상했으나,
추천으로 이어지는 일자리란..
지금의 나에겐 인연이 이어진다는 느낌보다는
지긋지긋하달까 ㅎ
어쩔 수 없는 마음이지.
킬링타임으로 가볍게 읽기 좋다!
p.8
리빙스턴 씨는 자기 서점이 한 갓진 곳에 있다는 사실에 괘념치 않았다. 삶에 신비한 구석이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생각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p.21
평생 허영과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온 그녀에게는 대영박물관을 떠올리는 것조차 분수에 넘치는 일 같았다. 하지만 더없이 무모한 꿈을 입밖에 내면 꿈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용기를 얻을지도 몰랐다. 아그네스는 무분별한 뉴에이지 철학 신봉자가 아니었지만 한 번쯤은 운명의 호의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p.73
"당장 급하게 확인할 게 있어요." 그녀가 헝클어진 보랏빛 머리에 잔뜩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프로도가 죽는 건 아니죠? 그가 죽으면 안 돼요. 그러면 너무 실망스러울 거예요."
p.77
"'나는 고고학자야' 또는 '나는 우주비행사야'라는 말로 스스로를 한정 짓지 않으면 돼. 누나에겐 여러 모습이 있잖아. 우선 인간이고, 또 리빙스턴 씨의 직원이고, 미인이고......"
"고맙다."
"『피터팬』을 멋지게 낭독할 줄 알고, 또 친절하고, 똑똑하고...... 이게 다 누나 재능인걸? 그러니까 슬퍼하지 마."
p.78
자신이 사랑하는 일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고 지냈던 것 같았다.
...
꿈에 그리던 직업을 갖지 못한다고 해서, 하물며 직업이 아예 없다고 해서, 인생이 끝장난 건 아니다. 행복이 밥을 먹여주지도, 집을 마련해 주지도, 아플 때 진료비를 내주지도 않는다.
...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발굴작업에 참여하고 시질라타의 잔해를 발견하고 잃어버린 문명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개진하고 고대의 아름다운 유물을 보존하는 일을 꿈꾸고 있었다.
p.102
"그리고 바로 그 매일매일 반복되는 것들, 일상의 소소한 것들 속에서 행복을 찾아야 하는 거야."
p.128
아그네스는 항상 사람들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사람들과의 관계가 그녀의 성격 형성에 구체적으로 기여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이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수많은 영향들의 총합이기도 하다. 이 세상에 다른 이들로부터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와 함께 하는가에 따라 사소한 영향들이 하나하나 모여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훌륭한 은하수를 이루기도 한다.
p.151
"제가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하시면 직원분 걱정은 하실 필요 없겠네요."
"세상에 그런 건 없습니다, 록우드 경감." 에드워드가 미소를 지었다. "그 자체로 괜찮은 남자는 없어요. 불순하지 않은 목적이 있는가가 중요하죠."
p.189
"왜 나한테 부탁하지 않았니?"
"예전에 말씀드린 적 있어요. 그치만 그건 어린아이들이 볼 책이 아니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그건 벌써 오랜 전이잖아. 내가 너를 잘 알지 못할 때 말이야."
"제가 서점에 머무는 걸 좋아하지 않으셨고요."
"그래도 세상 모든 건 변하기 마련이잖니?"
아이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 생각엔......" 리빙스턴 씨가 말을 이었다.
"누구든 너를 잘 알고 아끼는 사람이라면 네가 더 유익하게 시간을 보내길 바랄 거야. 하루종일 책과 어른들밖에 없는 서점 안에 갇혀 있지 말고."
"저는 책이 좋아요."
"그래, 어른보다는 책이 덜 따분하지."
p.213
"나는 책 읽는 법을 배운 뒤로 항상 이상한 사람이었어."
리빙스턴 씨는 자신이 괴팍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리는 시오반이 너무 귀여웠다. 그게 그녀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 같았다.
p.218
"당신은 내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불의에 맞설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라서."
p.221
"너는 좀 더 모험을 할 필요가 있어. 이 방에 꼭꼭 숨어 있다고 인간의 악의에 상처받을 일이 없을 줄 아니? 안타깝게도 우리는 세상과 단절될 수 없어."
p.271
"하지만 만약 결과가 좋지 않고 이 주방 벽이 무너졌던 것처럼 네 삶 전체가 무너지더라도 이것만은 기억했으면 좋겠어. 최악의 실패로 인한 폐허 속에서도 이 유리벽 같은 기막힌 건축물이 탄생할 수 있다는 걸."
p.295-296
"저는 평생 이런 곳을 찾고 싶었어요. 나 자신이 되어 아무런 두려움 없이 행복을 좇아 떠날 수 있는 곳을 요."
...
"당신이 찾는 곳은 여기 있지 않아요."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특유의 미소를 지었다. "그건 당신 마음속에 있어요."
아그네스는 그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얀 눈송이가 휘날리는 대기를 뚫고 걸음을 되돌려 그를 있는 힘껏 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