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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오리 Jun 21. 2024

둘도 없는 내 친구

엄마




나는 엄마와 함께 수영한다. 엄마가 1년 정도 먼저 수영을 시작했고 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던 나는 수영을 다니자는 엄마의 끈질긴 권유에도 한사코 거절했었다. 그러다 수영을 시작한 건 작년 가을이었다.


나는 작년 봄에 첫 취직을 했고 처음 겪는 사회라는 곳은 나를 꽤나 당황스럽게 했다. 여태 꽃밭만 걸어다녔던 나는 이제 늪지를 뒹굴게 됐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나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어 침대에 쓰러졌다. 아, 내 방이 이렇게나 아늑했었나.. 느끼며 눈을 감는다. 그렇게 잠들고 다시 눈을 뜨면 다시 출근해야 하는 아침이다.


그런 생활을 하다 보니 나의 저녁시간은 삭제 돼버렸고 체력도 건강도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 자식을 안타까워하며 계속 운동을 해보라고 권하는 엄마의 고집과 가족들의 동조까지 더해져 나는 내 생일이 지나면 등록하겠다고 의지 없는 약속을 던지게 됐다. 그렇게 나는 수영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딱 한 달 해보고 하기 싫으면 말자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싸구려 수영복과 수경 세트를 하나 사고 수모는 아빠가 아주 예전에 쓰다가 처박아뒀던 걸 챙겼다. 그렇게 처음 수영장 물에 들어갔던 날은 너무 생생하다. 수영장 몇 바퀴를 돈 나는 물속에서 아아아아- 이상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마음속에서는 이게 뭐야! 너무 재밌잖아! 를 외쳐대고 있었지만 물속에서는 어떤 말을 해도 옹알이일 뿐이었다. 그마저도 너무 웃겼다. 뭐라 표현해야 하나. 엔도르핀이 마구 도는 게 느껴졌다. 한마디로 기분이 아주 째졌다.


엄마와 집으로 걸어가는 길 내내 너무 재밌다고 쫑알쫑알 떠들었다. 신이 난 자식을 보며 엄마도 덩달아 신이 났다. 우리는 그렇게 함께 수영을 다니기 시작했다.



수영을 끝내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은 15-20분 정도이다.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 10분이면 갈 테지만 엄마와 나는 팔짱을 끼고 느릿느릿 걷는다. 느긋하게 걸어가면서 우리는 하루종일 있었던 일들을 재잘재잘 이야기 한다. 내가 이야기하면 엄마는 같이 웃기도 하고 화도 내주고 편을 들어주고 조언도 해준다. 내가 이야기를 한바탕 하고 나면 이제 엄마 차례다. 엄마까지 시끄러운 속을 달래고 나면 우리 둘은 집 앞 마지막 골목에 다다른다. 그 골목에 들어설 때쯤이면 우리는 인생이 그런 거지, 사는 게 다 그렇지 라며 사는 얘기를 마무리 짓는다. (물론 종종 20분이 모자라 집 안 식탁 앞에 앉아야 할 때도 있다.)


엄마와 나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가족들 몰래 둘이서 맛있는 걸 사 먹는다거나 쇼핑을 한다. 수영장 앞에 있는 공원에 가서 맨발 걷기를 하며 괜찮은 남자 없냐고 내 연애 소식을 기웃거리고, 조심스레 내게 아빠 험담을 하기도 한다.



지난밤에는 운동 끝나고 다른 볼 일을 보러 가야 했다. 엄마가 건너야 할 횡단보도에 파란 신호가 들어올 때까지 같이 기다리다가 엄마를 혼자 보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나중에 나는 이 장면을 무척이나 그리워할거라고.


며칠 뒤에 여느 때처럼 함께 집을 걸어가며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랑 보냈던 시간이 안 그리워?"


엄마 때는 식구가 많아서 부모님의 보살핌을 충분히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식구가 많다 보니 집에서는 거의 잠만 자고 밖에서 많이 생활했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에겐 부모님과의 추억이 그다지 많지 않다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나는 나중에 내 다른 가족이 생겨도 지금이 너무 그리울 것 같아. 특히 이렇게 엄마랑 수영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


엄마는 나와 눈을 맞추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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