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3-1
아내와 내가 부모가 되기 이전에 갔던 제주도 여행에서 잊을 수 없는 음식이 몇 가지 있었다. 그중 하나가 '산지해장국'이라는 식당에서 먹었던 내장탕이었다. 내장이 넘칠 정도로 풍부했다. 맛도 좋았지만 뚝배기가 넘칠 것만 같아 함부로 밥을 말 수 없을 정도로 건더기가 가득했던 게 인상적이었다. 고기를 몇 점 주지도 않으면서 간장을 내주던 육지의 해장국집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도 그 해장국집을 꼭 들르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추억 속의 해장국집은 성산일출봉 근처에 있었다. 제주시에 위치한 숙소로부터는 상당히 먼 거리여서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아쉬운 마음에 검색해보니 의외로 그 집이 체인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더 놀라운 건 그 체인 중 하나가 숙소에서 걸어서 5분 거리라는 점이었다.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아침부터 과거의 추억을 한 숟갈 뜨기 위해 우리는 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지해장국으로 향했다.
지도앱에서 확인한 대로 골목을 나와 직진만 하니 정말 '산지해장국'이라는 간판이 보여 신이 났다. 그런데 가게 외관이 다소 음침해 '영업을 하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마침 맞은편에서 온 일행이 그 가게로 들어가는 걸 보고 우리도 안심하고 뒤따라 들어갔다.
희한하게도 외부보다 내부가 더 음침했다. 직원들이 홀을 오가고 천장 불이 다 켜져 있었음에도 가게 안은 특유의 잿빛 분위기를 자아냈다. 뭐 체인점이니 음식은 비슷하겠지 싶었다.
"내장탕 두 개 주세요."
예전에도 그랬던가. 직원들은 모두 중국인이었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 느낀 건 제주도에 중국인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었다. 유모차에서 얌전히 치발기를 물고 있는 현이를 볼 때마다 직원들은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 순수한 미소가 얼마나 귀한지 알 리가 없는 현이는 무표정으로 응수했다. 그마저도 귀여웠다.
기다리던 내장탕이 나왔다. 보통 기대를 하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엔 달랐다. 딱 기대한 만큼, 기억하고 있던 만큼의 내장탕이었다. 직원이 국을 테이블에 놓는 순간 국물이 넘쳐 테이블이 지저분해졌지만 얼른 한 숟갈 뜨고 싶은 마음에 그런 건 마음에 걸리지 않았다. 사진을 몇 장 찍고 해장국을 휘저으며 건더기가 가득 들어있는 걸 자랑하고픈 마음에 동영상도 찍었다.
국물을 먼저 맛보고 내장을 꺼내 와사비 간장에 찍어 먹었다. 미치도록 맛있진 않아도 '맛있다'고는 충분히 말할 수 있는 그런 맛. 배가 고프지도 않았는데 넘치는 내장을 다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맛있었다. 젓가락으로 내장을 건져 간장에 찍어 먹는 행위를 여러 번 반복해도 내장은 한참 남아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맛이 한층 깊어지는 착각을 일으켰다.
예전처럼 아내가 건더기가 많다며 내게 나눠주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나였다. 한 숟갈 듬뿍 양고기를 내 밥그릇에 덜어줬고 나는 주저 없이 받아 먹었다. 아내가 뚝배기를 다 비우기도 전에 자기가 건네준 고기를 벌써 다 먹은 나를 보며 아내는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우리는 배불러 터질 것 같은 표정으로 서로를 잠시 응시하다 이제 일어설 때란 신호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평소처럼 외할머니가 하던 대로 테이블의 잔반을 한 곳에 모으고 그릇을 차곡차곡 쌓아 정리했다. 그냥 일어나면 찝찝한 기분이 들어 이제는 이런 정리가 익숙해졌다. 매번 그렇게 치우고 일어나면 확실히 마음이 홀가분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해장국집을 나와 숙소로 돌아갔다. 배도 부르고 현이 밥도 먹여야 해서 잠시 쉬기로 했다. 오후 일정은 제주도립미술관 방문이었다. 우리는 종종 미술관에 들른다. 아내는 미술품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솔직히 별 감흥이 없다. 그럼에도 미술관 방문을 제안하는 아내의 말이 반가운 건 '미술관에 다녀온다'는 사실 자체가 마음에서 묘한 자극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은 유독 나가기 싫었다. 아침부터 과하게 배를 채운 탓도 있지만 추적추적 비까지 내렸기 때문이다. 렌터카 상태도 썩 좋지 않아 사이드미러에 맺힌 빗물이 시야를 가려 운전이 불안했다. 그래도 오래된 자취방을 떠올리게 하는 칙칙한 숙소에만 있을 수는 없어서 우리는 미술관으로 향했다.
출발하자마자 차가 막혔다. 제주도에서 교통체증을 겪을 줄은 미처 몰랐다. 앞뒤로 꽉 들어찬 차들 사이에서 브레이크를 수십 번 밟다 보니 현타가 왔다. 집 근처에서도 잘 겪지 않는 교통체증을 제주도까지 와서 겪다니. 비까지 내리니 기분은 더 가라앉았다. 결국 다음과 같은 생각이 마음을 삼키기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CONN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