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들지 않는 숙소

day 3-2

by 달보


제주도에 도착한 첫 날 아내 친구가 마련해 준 숙소에 처음 들어섰을 때의 당혹감과 그에 뒤따른 여러 불만과 짜증 섞인 감정을 애써 잘 감추고 있었다. 하지만 비 내리는 끈적이는 날씨 아래 꽉 막힌 도로에 갇혀 있다보니 마음에서 덩치를 불려가던 께름칙한 감정에 점점 젖어들고 있었다.


제주도에서 육지와 가장 비슷한 곳인 제주시 한복판에 위치한 숙소. 어릴 적 지내던 자취방을 연상케 하는 칙칙한 분위기의 거실 딸린 투룸. 머리카락 한 올조차 빠져나갈 수 없을 만큼 막힌 세면대. 물을 조금만 틀어도 금세 물이 차오를 만큼 배관이 막혀 있는 화장실 바닥 배수구. 삼시세끼 현이의 이유식을 전자레인지로 데워야 했던 우리 부부에겐 한없이 가혹한 전자레인지가 없는 곳. 좋게좋게 생각하며 억눌러 온 모든 불편함이 한꺼번에 역류하듯 밀려오며 온 세상이 오염되는 것만 같았다.


“우리 숙소 옮기면 안 될까.”

평소 아내와는 의견충돌이 거의 없었기에 숙소를 옮기자는 내 말에 아내가 흔쾌히 동의할 거라 생각했다.


“음, 사실 난 이제 적응 다 했는데.”

그 말인즉슨 전자레인지도 없고 화장실에 물도 빠지지 않는데 지인이 제공한 숙소라는 이유로 그 어떤 건의도 할 수 없는, 갓길과 도로에 차가 빼곡한 제주도 번화가 한복판에 위치한 공간에서 집에 돌아갈 때까지 머물러도 상관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다.


제주도, 다음에 또 올 수도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꼭 가고 싶은 곳이 있다거나 뭔가 전에 없던 깨달음을 얻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럼에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제주도에 온 지도 3일 차가 되었는데 렌터카 연료 게이지는 12칸 중 겨우 1칸이 줄었을 뿐이고 그 흔한 제주도 바다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상태였다. 이런 상황을 만든 결정적 요인은 다름 아닌 숙소라고 생각했다. 제주도를 언제 또 올지도 모르는데 여러 모로 적잖은 불편함을 기꺼이 감내하겠다는 아내를 보고 있자니 '무슨 조치라도 취해야 한다'는 내면의 울림을 무시하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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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셋째 날, 제주도립미술관 방문 후에 들린 카페 '담화헌'-1


나에게 제주도 여행이란 곧 서귀포 근처를 맴도는 것이었다. 예전부터 제주도 숙소를 잡을 때면 시계 방향으로 5시에서 8시 사이에 있는 곳을 위주로 잡았다. 그 근처에서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고 바닷가 근처 옛마을을 거니는 게 나만의 제주도를 즐기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아내는 서귀포를 고집하지 않았다. 도심이든 시골이든 간에 제주도는 어디든 제주도라 여겼다. 아내는 나보다 사고가 유연한 사람이었다. 나는 고집이 셌다. 3일 동안 바다 한 번 보지 못하고 매연 가득한 도심을 떠도는 건 더 이상 그만하고 싶었다.


가뜩이나 마음도 답답한데 물 빠지지 않는 화장실에서 현이를 씻기는 건 울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구멍 막힌 세면대는 아예 쓸 수가 없었다. 아내 친구에게 받은 아기욕조는 너무 커서 현이가 계속 미끄러졌다. 목욕을 좋아하는 현이는 낯선 욕조에서 아빠가 어설프게 씻겨서 그런지 내내 울기만 했다. 당시의 현이는 허리힘이 많이 부족했다. 따뜻한 물과 찬물이 제멋대로 나오는 샤워기로 제 몸 하나 가누지 못하는 아기를 씻기는 일은 그 자체로 고역이었다. 그도 그런데 화장실에 차오르는 물에 바닥에 놓인 비눗곽이 잠기는 걸 보고 있자니, 자꾸만 미끄러지는 현이를 받치느라 누적된 손목의 통증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울화가 치밀었다.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내내 똥 씹은 얼굴을 하고 있으니 아내는 에어비앤비로 서귀포 숙소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아내가 골라 보낸 숙소 링크를 확인한 나는 뜻밖의 현타를 맞았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생각보다 숙박비가 저렴하다는 점이었다. 다른 하나는 아기욕조, 아기의자 등 기본적인 아기용품들이 갖춰져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운 전자레인지도 있었다.


‘진작 좀 알아볼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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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셋째 날, 제주도립미술관 방문 후에 들린 카페 '담화헌'-2


제주도에 가기 전 아내 친구가 숙소를 제공해준다고 했을 때 처음엔 좋았는데 갈수록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아내에게 다른 숙소를 잡는 게 어떻냐는 말을 슬쩍 내비쳤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내를 탓할 수만은 없었다. 나는 아내가 납득할 만큼 충분히 설득하지 않았다. 숙박비도 걱정이었다. 그리고 '지인이 제공한 숙소니까 괜찮겠지'라는 막연한 믿음을 갖기도 했다. 결국 사태의 책임은 마음의 경고를 무시하고 귀찮음을 핑계 삼아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던 내게 있었다.


‘이제라도 서귀포 숙소를 알아봐서 다행이다.’

‘이렇게 좋은 데를 왜 이제야 알았을까.’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쓸데없는 상념이 얼굴에까지 드러났는지, 여행 넷째 날 아침 서귀포로 향하는 차 안에서 아내가 내 표정을 유심히 바라봤다. 결국 우리는 말다툼을 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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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보가 쓴 책 :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달보의 일상이 담긴 :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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