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담백한 글을 쓰는 방법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감정이 솟구칠 때 토해내듯 글을 써내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순간적으로 온몸에 퍼진 내면의 상태를 최대한 많이 끄집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글을 씀으로써 마음속 깊은 곳의 무언가가 외부로 표현되고, 그 과정에서 발견하고 느끼는 깨달음이 진정한 글쓰기의 매력이다.
의식적으로 깊은 속마음을 알아내려고 애를 쓰는 건 한계가 있다. '알아낸다'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부터 이미 눈 한쪽을 감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할 때는 최대한 자기 자신을 내려놓고 쓰는 것이 좋다. 문법이 하나도 맞지 않고, 같은 단어를 수도 없이 남발하며, 초등학생도 틀리지 않을 법한 맞춤법을 틀려 가면서라도 멈추지 않고 일단 속에 차오른 건 있는 그대로 써내는 것이 중요하다. 의식이 돌아오는 순간, 알아서 잘만 움직이던 손가락은 난데없이 파업을 선언하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잘 되는 건 평소 마음에 들어있던 생각들이 시원하게 흘러나와서 가능한 일이고, 글쓰기가 잘 되다가 막히는 이유는 마음에 들어있었던 생각들이 흘러나간 빈 공간에 금세 다른 잡생각들이 또 들어차기 때문이다. 고로 글쓰기가 잘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거의 생각 때문이다. 의도와는 다르게 엉뚱한 글이 써지는 것도 생각이 방향을 잃어서 그렇다. 찰나의 순간에 일렁이던 창작의 흐름은 끊임없이 차오르는 생각들의 공격에 금세 흐트러진다. 정제되지 않은 생각은 현상의 표면에 머물기 좋아하기 때문에 생각에 빠지면 본질을 관통하는 깊은 글을 쓰긴 어렵다.
사람이 눈앞의 현상을 제대로 꿰뚫어 보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이라는 임의의 점을 찍어놓고, 그것을 기준 삼아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본인이 세워 놓은 기준 외에도 세상엔 수많은 기준들이 원래부터 있었지만 그 모든 것들은 절대법 같은 게 아니다. 나보다 먼저 세상에 태어난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의미 없는 잣대일 뿐이다. 본인이 철석같이 지키고 있는 믿음이나 기준도 그런 데에서 영향을 받아 자기도 모르는 사이 절대 진리처럼 여기게 된 것들이 많을 것이다.
아무리 살아가는 동안 이런저런 경험을 통해 스스로 세우게 된 자신만의 기준일지라도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임의의 점 하나에 불과하다. 현상 너머의 본질을 바라보려면 세상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필요가 있다. 그럴 수만 있다면 보다 깊고 넓은 사유를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담백한 글쓰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난다. 그렇게 제3의 눈을 개방한다면, 통찰력이 짙게 배인 깊고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삶 곳곳에 어떤 점들을 찍어 놓았는지, 그것들의 출처는 어디에서 온 것인지 깊은 사유의 시간을 가지다 보면 색다른 시선으로 세상과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전에 없던 열린 마음으로 모든 걸 새롭게 바라본다면 기분이 좋아야, 날씨가 좋아야, 사랑을 시작해야만 아름답게 보이던 세상이 비로소 원래부터 아름답고 찬란한 곳이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