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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Aug 13. 2023

차마 견디기 힘들었던 불편한 진실

감당하기 힘들었던 현실의 벽


그때 그 시절이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출근하는 날 이른 새벽, 차디찬 겨울바람을 뚫고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는 길에 한발 두발 발자국을 내며 걷다 보면, 오늘도 힘든 하루가 될 거라는 생각에 서글픈 감정이 절로 일어났다. 하늘에서 비추는 은은한 달빛과 가로등의 아늑한 전구색 불빛을 바라보며 그래도 힘내보자고 애써 나를 달래지만, 이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을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일깨워주곤 했다. 그렇게 날이 지날수록 앞날에 대한 고민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집 근처 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있었다. 한참을 걷다가 공원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위치한 정좌에 올라갔는데 하필 그때부터 황금빛 노을이 온 세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순간 세상이 너무 아름다워 보였다. 익숙한 동네의 풍경이 특별해 보였고 주체할 수 없는 충만함이 온몸을 감싸고돌았다. 눈앞에 보이는 세상이 그리도 찬란할 수가 없었다. 내가 살고 있던 세상이 이렇게 다채로운 빛을 뿜는 곳이었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눈부신 노을빛은 온 세상을 환하게 감싸고 있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며 그렇게 한참을 넋 놓고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가슴이 시릴 정도로 기분이 우울해졌다. 집 근처 공원만 와도 쉽게 볼 수 있는 이 황홀한 풍경을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대체 언제쯤 일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게 비극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오늘이 지나면 또다시 다른 지역으로 일하러 떠나야 하고, 한 번 출근하면 언제 퇴근할지도 모른 채 일을 해야 했으며, 일이 끝난다고 편히 쉴 수 있다는 보장도 없이 살아야 하는 현실이 너무 버거웠다. 마치 일상을 모조리 빼앗겨버린 것만 같았다. 남들에겐 평범한 하루가 내겐 너무나도 특별한 날이 되어버렸다는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기술을 배우고자 스스로 선택한 목수의 길이었지만, 해보기 전엔 알 수 없었던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의 벽은 높아도 너무 높았다. 난 결국 그 벽을 넘지 못하고 목수마저도 그만두게 되었다.




그렇게 또다시 인생의 방향을 새로 잡아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나이가 어렸다는 것이다. 그만큼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그렇게도 많이 남았는데, 주변 사람들보다 조금 더 늦는다는 이유로 인생을 갈아넣긴 싫었다. 서툴고 실수투성이에 점점 자기신뢰를 잃어감에도 불구하고 믿을 건 오로지 내 생각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또다시 방황을 시작하려는 나를 걱정하며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난 그들의 말을 다 새겨들었고 그들의 주장이 결코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들은 다 일리가 있고 충분히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생각대로 살긴 싫었다. 내 삶을 직접 살아본 존재는 오직 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내 생각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가장 후회스러운 삶은 남들과 똑같아지기 위해 애를 쓰고 남들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스스로의 생각을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내 생각대로 살아온 덕분에 길을 멀리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방황하고 있는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내 생각에 대한 신뢰를 저버릴 생각은 없었다. 나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나를 위한 신중한 선택을 내린 것이기 때문이다.


뭐든지 직접 경험해 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해보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게 있다면 꼭 해보고 나서 생각해야 하는 거라고 믿었다. 설사 그런 경험을 함으로써 잃는 게 있다 하더라도 평생의 업을 찾아야 하는 입장에서 그 정도 손해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남들 잠 줄여가며 공부하는 동안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 살지 않았던 세월만큼의 고생은 충분히 감당해야 한다고도 생각했다. 그런 삶의 태도를 지닌 덕분에 주변 사람들이 우려하는 만큼의 데미지는 전혀 입지 않았다. 누가 뭐라고 하든 난 괜찮았다.


난 내가 살면서 해왔던 모든 선택들에 대해 크게 후회하지 않는다. 결과를 떠나서 모든 선택의 기로 앞에 놓였을 당시엔 충분히 그럴 만한 결정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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