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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Aug 14. 2023

갑자기 날아온 친구의 황당한 제안

운명이 이끄는 곳으로


'아직 충분히 할 수 있다', '어리기 때문에 괜찮다'라는 다짐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사회의 쓰디쓴 맛은 다 보며 살았다. 하는 것마다 열심히 하지 않은 게 없었다. 직장생활할 땐 1년도 되지 않아 승진하고, 현장에선 일당이 금방 뛰었다. 새로운 일을 배우고자 국비지원학원을 다닐 땐 반에서 성적 우수상도 받고, 매일 방과 후에 남아서 담당 선생님을 괴롭혀가며 산업기사 자격증도 땄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뭐든지 잘 해내고 싶었다. 오히려 대충 하는 게 더 힘들었다. 나를 믿고 움직이기만 하면, 모든 게 생각대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살아도 인생은 쉽게 흘러가지 않았다. 노력은 충분했으나 방향이 엉망이었던 건지, 새롭게 하는 일마다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의 벽에 계속 부딪혔다. 그런 것들은 실제로 일해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아무리 정보를 캐면 뭐 하겠는가. 정작 필드에 들어가 보면 사전에 알아본 것과는 상황이 완전히 다른데. 세상에 존재하는 갖가지 업무환경을 미리 파악하는 건 21세기 정보화시대라도 한계가 있었다. 어쩔 땐 신이 나를 어느 한 곳으로 몰아가려고 작정하고 일을 꼬이게 만드나 싶기도 했다.


방황의 시기는 생각보다 길어지고 난 어느덧 30대가 되어 있었다. 서른 살이 넘어갈 때쯤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결혼도 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완전히 달랐다. 여전히 자리를 잡지 못해 오갈 데는 없었고 더 이상 젊음의 패기를 내세울 수도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결혼까지 생각했던 여자친구와도 헤어졌다. 언제나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대로 당차게 살았지만, 그에 따르는 대가는 항상 따랐다. 다행이었던 점은 선택이 불러오는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질 각오가 미리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나마 버틸 수 있었다.


쉴 틈도 없이 눈에 밟히는 모든 걸 도전해 왔지만, 인생을 걸 만한 일은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은 더 조급해지기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굴복하기 싫었던 건 어정쩡하게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잘 살고 싶었다. 부모님처럼 가난하게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자유롭고 당당하게 금전적으로 큰 고민거리 없이 그렇게 살고 싶었다. 당장에는 주변 사람들과 차이가 좀 벌어지더라도 진심을 다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다할 수 있는 일이어야만, 그 일을 통해 남다른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그런 당찬 포부와는 다르게 끊임없이 마주하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하고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상황은 곧 나아질 거라는 생각과 이젠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종일 오락가락했다. 밖에선 괜찮은 척했지만, 혼자 있을 때면 거의 자포자기한 사람처럼 풀어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친구에게서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다.


"야, 우리 회사 들어올래?"

그 친구는 구미에 있는 한 철강회사에서 교대근무를 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는 내게 공장에서 일할 생각이 있으면 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이전 같았으면 헛소리하지 말고 끊으라고 했을 것이다. 원래부터 난 고향인 대구를 평생 벗어날 생각이 없었고 공장에서 일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교대근무는 영영 할 일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공장일에 대한 선입견도 있었지만, 야간에 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이 많이 좋지 않았다. 친구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기엔 할 것도, 갈 데도 없었다. 가뜩이나 여태껏 해온 모든 것들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현실을 한껏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 같았으면 단칼에 거절했을 법한 제안 앞에서 난 망설이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공장이라면 돈이라도 많이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살아온 지긋지긋한 동네에서 이젠 벗어나고 싶기도 했다. 난 이미 절벽 끝에 서 있었고, 더 이상 잃을 것도 없었다. 그래서 마지못해 추천서를 써달라고 했다.


그렇게 난 30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공장에 취직하게 되었다. 하지만 홧김에 내린 그 선택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그땐 미처 몰랐다. 친구의 갑작스러운 제안 덕분에 고향을 벗어난 이후로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아마 그때 살던 곳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면,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며 여전히 방황 속에서 살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나저나 대체 그 친구는 어떻게 하필 그 타이밍에 갑자기 내게 그런 제안을 해왔을까. 친한 사이긴 했지만 평소 연락을 자주 주고받지도 않았고,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 말한 적도 없었다. 그 친구에게 이유를 직접 물어보니 '그냥'이라고만 한다. 적당한 때가 돼서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고향에서 밀어낸 걸까.


인생은 참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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