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근무 체험
친구 덕분에 들어간 회사는 생각보다 큰 중견기업이었다. 한창 성장 중인 회사였고 복지가 꽤 괜찮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자주 나갈 만큼 일은 힘들었다. 아무래도 춥고 더운 공장에서 일하는 만큼 열악한 환경을 견뎌가며 일해야 하는 고충도 있지만, 그보다 더 부담스러운 건 업무의 난이도였다. 원래 공장은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를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들어간 곳은 결코 단순한 생산직이 아니었다. 숙지할 게 정말 많았던 만큼 꾸준히 공부해야 했고, 몸도 재빨라야 했다. 그리고 갖가지 변수에 따른 알맞은 대처를 할 줄도 알아야 했다. 신입사원에게 크게 기대하는 사람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크게 봐주는 것도 없었다.
이왕 이렇게 공장에 들어오게 됐으니 제대로 일하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품고 열심히 일을 하다 보니 사람들과도 금세 친해지고 일도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가장 걱정이 많았던 야간근무도 의외로 할 만했다. 그중에 내가 가장 좋아했던 점은 쉬는 날이 정기적으로 정해져 있었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로 휴무날을 제대로 보장받은 일을 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월요병을 공감하지 못할 정도로 주말과 빨간 날은 인생에 없었다. 그래서 일은 힘들지언정 쉬는 날이 정해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위안이 됐었다. 쉬는 날이 정해져 있으니 일정을 미리 계획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새로운 지역에서 생활하는 것도 나름 재밌었다.
교대근무를 하면서 평일에 자주 쉬다 보니 개인적인 볼 일을 보기가 수월했다. 더군다나 차가 막히지도 않고 어딜 가나 사람들도 없어서 복잡하고 시끄러운 걸 좋아하지 않는 내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리고 잔업을 웬만큼 채우면 월급이 괜찮았다. 평균적으로 300만 원 이상은 매 달 통장에 찍혔다. 거기에 성과금이 1년에 두 번씩 나왔으니, 이전보다는 훨씬 안정적이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어서 좋았다.
반면에 교대근무의 단점은 생활이 불규칙해진다는 점이다. 언제는 낮에 퇴근하고 언제는 밤에 출근해야 했기에 여가시간에 따로 뭘 등록해서 배운다거나 하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다. 잔업은 그야말로 양날의 검이었다. 잔업을 하고 안하고의 월급 차이는 거의 100만 원 가까이 났다. 특히 내가 다녔던 공장의 잔업방식은 좀 특이했다. 잔업을 하고 싶으면 하고 말라면 말라는 식이었다. 그 와중에 암묵적인 눈치를 주기도 했었기 때문에 알아서 눈치껏 잔업을 해야 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누가 정확히 맞추겠는가. 어떤 날은 잔업 안 한다고 잔소리를 하다가도 어떤 날은 잔업도 눈치껏 적당히 하라고 태세전환을 하기 일쑤였다. 남아서 일하고, 일찍 출근하는 것도 서러운데 눈치까지 봐야 되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모든 공장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내가 일했던 곳은 꽤 위험한 편이었다. 주로 가전제품에 들어가는 철판코일을 생산하는 곳이었는데 기본 무게단위가 톤(ton)급이었다. 실수로 깔리거나 부딪히면 큰 부상이나 사망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작업자들은 무거운 코일을 옮기기 위해서 지게차나 크레인을 써야만 했는데 특히 크레인은 육안으로 보면 아주 천천히 이동하는 것처럼 보여서 사람이 방심하기 딱 좋았다. 그래서 더 위험했다. 철판을 생산하는 롤러에 손이 말려 들어가 다치는 사람도 많았다. 작업 중에는 그 근처에 손 댈 일이 없기 때문에 다칠 일이 전혀 없을 것 같지만 이상하게 꼭 다치는 사람들을 보면 평소와는 다른 행동을 일삼곤 했다. 크레인도 그렇고 롤러도 그렇고 겉으로 보면 크게 위험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위험했다.
그래도 이전처럼 떠돌이 생활을 하지 않아도 되고 쉬는 날이 정해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버틸만했다. 그 와중에 가장 큰 힘이 됐던 건 기숙사 맞은편에 위치한 도서관이었다. 그런 외진 곳에 새로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커다란 도서관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회사가 배정해 준 기숙사에 처음 찾아가던 날, 왠지 모르게 기분이 묘하게 울적했지만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신축 도서관을 보자마자 마음이 차분하게 놓였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이 쌓여있는 건물이 있다는 게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일하고 남는 시간엔 도서관에서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면서 지내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독서를 취미로 둔 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