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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Dec 18. 2023

니 내 꼬시나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나게 되는 걸까


대한민국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라는 영장은 20살이 채 되기도 전에 집으로 날아왔다. 난 군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가 열리는 첫날에 바로 병무청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았다.


하고 싶은 것도, 미래의 그 어떤 뚜렷한 목표도 없었다. 그럼에도 군대는 앞길을 가로막는 장애물 같았기에 일단 군대부터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20살이 되던 해, 다니던 대학교는 1학기만 마치고 휴학을 낸 뒤 9월에 논산훈련소로 입대하였다.


하지만 당차게 입대를 한 것 치고는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 같다. 입대 후 무려 14일 동안 화장실에서 큰 일을 보지 못했던 걸 보면 말이다.


뭐, 인간은 결국 적응하는 동물이라고 했던가. 그럼에도 훈련병 시절은 걱정했던 것보다는 수월하게 잘 지나갔다. 전우애라는 것도 느껴보고, 군생활이 재밌다는 생각도 정말 아주 가끔은 하기도 했다.


다만, 입대하기 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일이 한 가지 일어났다. 그건 바로 훈련병 생활이 끝난 후 자대배치를 제주도로 발령받았다는 것이다.


육군 입대의 정석루트인 논산훈련소를 들어갔는데, 전투경찰이 돼서 제주도로 날아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제주도는 육군부대가 없어서 전투경찰로 바뀐다).


전투경찰 교육이 끝나고 제주도로 날아가기 전에 청주공항에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더니, 아버지는 뜬금없이 공항에서 전화 온 걸 받고서는 내가 탈영한 줄 아셨단다.


근데 내가 만약 제주도로 날아가지 않았다면, 과연 내 인생이 지금처럼 바뀔 수 있었을까.




제주도 전투경찰은 여느 육군부대처럼 훈련 같은 게 없었다. 그렇다고 육지의 전투경찰들처럼 시위를 막으러 갈 일도 없었다(내가 복무했을 당시엔 제주도에서 큰 시위가 없었다). 대신 24시간 동안 돌아가며 경계근무를 선다. 때문에 기상시간이 낮 12시, 정오였다.


기상시간이 대낮이라고 하면 오래 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잠잘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거점근무 한 번 나가면 6시간 동안 차디찬 바닷바람 앞에서 멍 때리다 와야 되는데, 그 짓을 하루에 2번씩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근데 난 운이 좋아서 경계근무를 일찍이 졸업할 수 있었다. '상황병'이라는 업무를 이병 때부터 맡아서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원래 상황병은 보통 상병급 이상은 돼야 할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짬이 차야 수월하게 쳐낼 수 있는 업무들이 많다는 게 그 이유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도 상황병이 되면 밖에 나가서 벌벌 떨며 경계근무를 서게 될 일은 없어지기 때문에 '상황병은 상병급 이상'이라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헌데 나처럼 이병이 상황병으로 올라간 건 이례적인 일이었는데, 거기엔 두 가지 사건이 연루되어 있었다.




첫 번째는 일명 '수첩 사건'이었다.


군대는 서기라는 보직이 있다. 내가 복무했던 곳에서 서기란, 문서와 관련된 여러 가지 잡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이었다. 누가 진급하면 계급장을 교체하거나, 초소 내에 있는 물건들의 현황을 관리하고, 소화기 점검표 따위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기도 했다. 쉽게 말해 그냥 잡부였다.


처음엔 그 서기라는 일을 내 동기가 맡아서 했었다. 근데 동기가 일을 엄청 못했다. 허구한 날 욕을 먹었다. 그러더니 결국 동기는 서기에서 짤리고 그 업무가 나한테 넘어왔다. 사유는 단순했다. 그저 동기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진심으로 하기 싫었지만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 그동안 동기가 욕을 들어먹던 게 떠올라서 겁도 났다. 난 그렇게 욕을 하루종일 먹어가며 지낼 자신이 없었다.


처음엔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막막하고 답답했다. 물어볼 만한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막막하다는 이유로 잠자코 있을 순 없었다. 뭐라도 해야만 했다. 그래서 일단은 초소에 있는 모든 걸 수첩에 싹 다 적기 시작했다.


누가 어느 생활관에 몇 번째 관물대를 쓰고 있는지부터 시작해서, 초소의 지도를 대충 그려서 소화기를 비롯한 각종 관리대상 물건들이 어디에 비치해 있는지까지 가능한 한 모든 걸 기록했다.


눈에 띄고 생각나는 것들 거의 전부를 기록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첩에 뭘 끄적이는 건 일상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고참 한 명이 갑자기 날 보일러실로 끌고 갔다.


"야, 너 요새 뭘 그렇게 적고 다니냐?"


"어떤 거 말씀인지 알고 싶습니다..?"

(제주도 전경은 '~지 말입니다'가 아니라 '~인지 알고 싶습니다'라는 말투를 썼다)


"니 새끼, 하루종일 뭐 끄적거리는 거 본 게 한두 번이 아니야. 고참들 욕하고 장난치고 이런 거 다 적어서 찌르기라도 할려는 거 아니야? 수첩 가져와 봐."


안 그래도 그 당시 분위기가 좀 안 좋긴 했다. 악명 높기로 유명한 선임 한 명이 후임이 쓴 마음의 편지로 인해 다른 초소로 날아간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까지 오해한 모양이었다.


당당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던 나는 자신 있게 수첩을 내밀었다. 고참은 내 수첩을 한 장 한 장 유심히 살펴보더니, 일그러진 표정이 조금씩 알쏭달쏭한 얼굴로 변해갔다.


"뭐야 이게? 뭘 적고 다니는 거야? 소화기는 여따가 왜 그려놨어?"


"제 동기가 서기 일을 하다가 짤려서 저한테 넘어왔는데 저도 그렇게 될까 봐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초소 안에 있는 모든 걸 파악하려고 한두 개씩 적다 보니 수첩에 그렇게 메모하게 됐습니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내 대답을 듣고서 고참은 내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리곤 다시 수첩을 뒤적거리며 몇 번 더 훑어보더니 잠시 후 날더러 다시 따라 나오라고 했다.


그렇게 따라간 곳은 초소 내 최고참들이나 간부들이 득실거리는 상황실이었다.


"이것 좀 보십쇼. 얘가 초소 전체를 수첩에 싹 다 옮겨놨습니다."

날 보일러실로 끌고 갔던 그 선임은 태세를 완벽히 전환했다.


상황병을 보고 있던 사람은 초소 내 막강한 실세였다. 그 상황병은 내 수첩을 보더니, 헛웃음을 쳤다. 그리고 의자에서 앉은 채로 내 얼굴을 올려다보며 옅은 미소를 지으며 한 마디 던졌다.


"미친놈이네 이거."


그때부터 난 고참들의 눈에 찍히기 시작했다. 물론 좋은 쪽으로 말이다. 욕먹기 싫은 마음에 적을 수 있는 건 다 적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메모 덕분에 군생활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나를 상황병으로 만들어준 두 번째 사건은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어났다. 사실 사건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어이없는 해프닝이었다.


때는 상황병을 보던 고참 옆에서 서기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이전에 나보고 미친놈이라고 했던 그 고참이었다).


그 고참은 감기몸살을 앓고 있었다.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감기약 좀 먹어야겠다며 미안한데 물 좀 떠다 달라고 내게 부탁했다.


난 아무 생각 없이 정수기가 있는 식당으로 가서 종이컵에 물을 받았다. 그때 순간적으로 '감기에 걸렸다니까 미지근한 물이 낫겠지'라는 생각이 스쳤다. 그래서 종이컵에 냉수를 채우고, 그 위에 온수를 냉수의 반만큼 더 채웠다.


종이컵을 손에 든 채 다시 상황실로 들어갔더니, 그 고참은 만화 '두치와 뿌꾸'의 마빈박사가 떠오르는 듯한 비실비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프긴 아픈 모양이었다.


내가 타 온 물을 받아 들면서는 그래도 배시시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렇게 감기약을 입에 먼저 털어 넣고, 천천히 물을 한 컵 들이켜던 고참은 이내 갑자기 눈을 커다랗게 뜨고 날 빤히 쳐다봤다.


"야, 이거 뭔데?"

텅 빈 종이컵을 손가락질하며 내게 물었다.


"약 먹을 때 미지근한 물이 좋다고 하길래 살짝 미지근하게 타왔습니다."

아무렇지 않게 대답은 했다만, 속으로는 '왜 저러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미친놈이네 이거. 니 내 꼬시나?"


초소 내 강력한 실세였던 그 고참은 미지근한 물 한 잔의 배려로 일종의 감동?을 받은 듯했다. 그때 이후로 간부에게 끊임없이 나를 상황병으로 올려야 된다며 적극 추천한 걸 보면 말이다.


그 덕에 난 상병 정도는 돼야 겨우 할까 말까 한 상황병이라는 업무를 이병 때부터 도맡아 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을 맞으며 경계근무를 서게 될 일도 당연히 없어졌다.


사실 처음 상황병이 됐을 당시엔 '몸이 좀 더 편해지겠네'라며 가볍게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나 훗날 내가 인격이 바뀔 만큼의 변화를 이룰 수 있었던 건, 상황병이라는 업무를 맡은 게 상당히 크게 작용했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면 참 신기하다. 날 어딘가로 이끌기 위해 작은 일들이 적당한 때에 맞춰서 일어나는 것만 같은 건 기분 탓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오늘의 글은 날 또 어디로 인도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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