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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Jun 11. 2024

돌고 돌아 결국 브런치로

ep 3. 블로그를 접고 브런치로 갈아탄 이유


희한하게도 전 블로그에 글을 쓰다 보니 얼떨결에 브런치에 닿게 된 케이스였습니다(블로그를 방문하셨던 분들 중에 브런치 작가님이 계셨는지, 제가 우연찮게 발견하게 된 건지는 확실하게 기억나진 않습니다). 브런치, 분명 처음 본 플랫폼은 아니었습니다. 브런치가 출시되자마자 호기심에 앱스토어에서 다운로드했던 기억이 어슴푸레 납니다. 받자마자 몇 번 눌러보고 바로 삭제했던 것 같지만요. 여하튼 오랜만에 마주하게 된 브런치는 무심코 흘겼던 이전과는 달리(글쓰기 자체를 하지 않았던), 왠지 모르게 발이라도 한 번 담가나 볼까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브런치가 특이했던 건 여느 블로그처럼 회원가입만 한다고 바로 글을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브런치는 작가 신청을 하고 내부심사를 통과해야 비로소 공개적으로 글을 발행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처음엔 쥐뿔도 없는 제가 작가 승인을 받을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좀 더 살펴보니 작가 신청란에 SNS링크를 첨부할 수 있는 곳이 있었습니다. 그걸 보고서는 일말의 희망이 보이는 듯했습니다. 그땐 블로그에 써 놓은 에세이가 제법 쌓여 있었거든요. 그래서 왠지 블로그를 연결하면 작가심사를 통과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고, 미룰 것 없이 바로 행동에 옮겼습니다.


물론 SNS링크를 첨부하는 곳 말고도 작가 본인에 대한 소개글과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한 내용도 쓰는 란이 있긴 했습니다. 근데 전 그 부분은 당최 뭐라 적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대충 쓰고 말았습니다. 실은 돼도 말고 안 돼도 말고였습니다. 왜냐하면 브런치 작가 승인이 난다 한들, 한참 열심히 활동하던 블로그를 접을 생각은 없었습니다. 가뜩이나 직장 생활하느라 블로그도 시간을 쪼개가며 하는 것이었기에 브런치까지 한다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참 살다 보면 기대하지 않는 것일수록 쉽게 이루어지는 경향이 없잖아 있더라니,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서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을 축하한다는 메일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 번만에 브런치 작가심사를 통과한 것입니다.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정작 되고픈 마음에 수차례 도전했던 네이버 도서 인플루언서는 계속해서 낙방하고 있었거든요. 그에 비해 되든 말든 무심코 도전한 브런치작가는 단번에 합격한 것이 그저 허할 따름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했듯 브런치를 제대로 해 볼 요량으로 작가신청을 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런 만큼 브런치는 블로그에 썼던 글을 복사 붙여넣기로 해서 몇 번 발행만 해보고는 이내 방치하고 말았었습니다.


시간적인 여유가 좀 더 있었다면 블로그와 브런치를 동시에 운영했을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블로그에 들어가는 품만 해도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고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봤습니다. 길지 않은 고민 끝에 제가 선택한 건 네이버 블로그였습니다. 욕심만큼 가파르게 치솟지만 않았을 뿐이지, 블로그와 관련된 각종 지수는 계속해서 꾸준한 우상향의 흐름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블로그를 생태계 파악도 전혀 못한 브런치를 한답시고 느닷없이 접는 건 당연히 아까웠습니다. 더군다나 그 당시엔 브런치를 하면 뭐가 좋은 지도 아예 몰랐던 탓에 더욱 그랬습니다. 요컨대 눈앞의 나무 한 그루에 정신이 팔려 숲의 조망을 살펴볼 생각을 못 했던 겁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블로그로 경로를 고수하려 했던 저의 야망은 점차 꺾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진심을 다해 할 수 없는 것들은 그 어떤 것이라도 도중에 관두고 마는 습성이 있었습니다. 성과가 좋으면 웬만큼은 그냥저냥 참고할 법도 한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본심과의 접점을 찾을 수가 없는 활동이라는 판단이 들면 그게 무엇이든 얼마 가지 못해 손을 털곤 했습니다. 덕분에 사회생활하는 동안 직장을 수없이 옮겨 다니기도 했습니다. 근데 블로그가 그랬습니다. 블로그에 글 쓰는 건 좋았는데, 그 외적으로 해야 하는 것들을 지속하는 게 영 찜찜했습니다.


남다른 커리어가 있거나 특별한 재능이 있지 않는 저 같은 평범한 사람이 블로그를 키우고자 한다면, 소위 '소통'이라는 걸 해야만 했습니다. 소통이란 여러 사람들과 이웃을 맺고 서로의 블로그를 찾아가서 댓글을 달아주는 등의 활동이었습니다. 특히 비인기 주제를 다루는 초보 블로거일수록 소통을 하지 않으면 블로그를 찾는 방문자는 거의 없다고 봐야 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저도 이런저런 블로그를 일일이 찾아 들어가서 이웃을 맺고 소통이라는 걸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확실히 블로그를 찾는 사람들이 점차 눈에 띄게 늘긴 했습니다. 소통에 들이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블로그에 전에 없던 활기가 도는 게 체감이 될 정도였습니다. 문제는 주객전도가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었지만요.


예컨대 글 쓰는데 1시간이 걸린다면, 소통하는 데는 대략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됐습니다. 블로그가 커질수록 그 양상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방문자가 늘어나는 만큼 글에 달리는 댓글도 많아질뿐더러, 그에 따라 저도 다른 블로그를 방문해야 하는 게 도리였으니까요. 요컨대 그런 주고받음이 당장엔 선순환 같아 보여도, 길게 보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악순환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소통이 취향에 맞아서 그 과정을 통해 긍정적인 기운을 얻는 분도 있을 터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니었습니다.


비록 시간을 많이 잡아먹어도 그만큼의 의미가 있는 활동이라면 모르겠는데, 생각하면 할수록 제가 하는 소통은 블로그 방문자를 늘리는 수단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왜냐하면 소통을 핑계로 이웃 블로그를 찾아 들어가서 마주하는 대부분의 글이 제 관심사와 동떨어진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되도록이면 블로그 주제가 비슷한 분들과 이웃을 맺었음에도 그랬습니다. 시간 들여 읽을 법한 글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가뜩이나 블로그에선 가독성 좋은 글이 거의 없었습니다. 블로그 에디터가 제공하는 여러 가지 도구는 컨텐츠를 꾸밈으로써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덴 효과가 좋았으나, 적용하는 게 많아질수록 텍스트를 찬찬히 읽어 내려가기엔 되레 악영향을 미치는 듯했습니다. 하물며 블로그는 중간중간 사진도 많이 넣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 같은 것도 있어서 그런지, 담백하게 읽어 내려가기 좋은 포스팅은 더욱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때문에 소통을 한답시고 이웃분들의 글을 정독하고 싶어도 생각보다 읽는 게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런 것에 들이는 시간이 글 쓰는 시간 이상만큼이나 들어가고 있었으니 회의감이 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소통을 아예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하필이면 제가 독후감이나 에세이 같은 비주류의 주제를 물어버린 탓에, 소통이라는 절차를 누락시킨다면 블로그는 거의 혼자 쓰는 일기장으로 전락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블로그를 접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따로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저는 제가 블로그에 포스팅하는 독후감 같은 글을 단 한 번도 찾아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전 저조차도 읽지 않는 글을 써 놓고서는, 생판 모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블로그로 찾아 들어와서 읽어주길 기대했던 것이나 다름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 자명한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후로는 전의를 상실하여 더 이상 독후감을 쓸 힘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럼 독후감 말고 에세이를 쓰면 될 일이긴 했습니다. 하지만 네이버 블로그에 에세이를 써서 올리긴 싫었습니다. 제 눈에는 아무리 봐도 네이버 블로그와 에세이는 결이 맞지 않는 것 같았거든요. 나름 궁지에 몰렸음에도 그랬던 걸 보면,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어지간히 블로그에 수필을 쓰긴 싫었나 봅니다.


그럼 남은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습니다. 합격만 해놓고 한동안 방치했던 브런치가 떠올랐습니다.




[에세이 출간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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