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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Jul 01. 2024

내비게이션이 틀렸으면 좋겠다

경로 이상의 것을 알려주는 내비게이션


20살, 입대하기 전에 운전면허를 땄다. 자동차에 관심이 있어서는 아니고 운전병이 되고 싶었던 건 더더욱 아니다. 제대 후에 바쁠 것 같기도 하고 막연하게 그냥 따야 할 것 같아서 딴 것이다. 그 후 약 5년 동안 면허증은 장롱에 박혀 있었다. 대학 졸업 후 두 번째 회사에 취직했을 때 비로소 면허증은 유의미한 물건이 되었다.


그 당시 회사에는 1.5톤 트럭이 있었는데, 운전할 사람이 없어서 장롱에 처박혀 있는 면허증처럼 사무실 앞에 맨날 주차만 돼있었다. 어느 날, 대표님은 대뜸 내게 다음과 같은 말을 건넸다.


"니 혹시 운전할 줄 아나?"


"예, 잘합니다."


'운전할 줄 압니다'도 아니고 잘한다고? 난 면허를 따고 나서 대표님이 내게 그 말을 건네기까지 운전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대체 왜 그때 난 새빨간 거짓말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내심 기회를 놓치기 싫었던 걸지도 모른다. 여하튼 나의 운전 경력은 그리 얼토당토않게 시작되었다.


처음엔 난리도 아니었다. 일단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가 없었고 어떡해서든 차를 끌고 나가서 볼 일을 봐야 했다. 1종 보통 운전면허를 남이 따준 건 아니었기에 클러치를 어떻게 밟고 기어를 넣어야 차가 굴러 가는지 정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숙달이 되지 않아 도로 위에서 이리 튕기고 저리 튕기고 시동을 꺼먹기 일쑤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진짜'는 주차였다. 여느 초보운전이 다 그렇듯 나 또한 주차가 미숙했다. 미숙한 수준을 떠나 아예 할 줄을 몰랐다. 아무도 없는 공터에 직진으로 때려 박아도 관계없는 주차가 아니고서야 평행주차? 후방주차? 자신 없었다. 애초에 후진 기어를 넣고 액셀을 밟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그땐.


아직도 처음 주차할 때가 생각난다. 시동도 꺼트려먹고 기어 바꿀 때마다 이리저리 통통이마냥 튕기면서 난리굿을 피우며 겨우 도착했는데, 주차 공간이 양쪽차가 다 틀어막고 딱 한 군데 비어 있었다. 가뜩이나 경험도 없어서 불안한데, 1톤 트럭이다 보니 짐칸은 길쭉하게 뻗어 있고 후방 카메라마저도 없었다. 괜히 시도했다가는 뭐라도 긁을 것 같았다. 그런데 옆에서 일하고 있는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이 보였다. 그래서 용기를 냈다.


"저기, 혹시 주차 좀 해주실 수 있나요?"


대뜸 다가와 주차해 달란 내 말을 들은 아저씨는 몹시 당황한 듯했다. 그리곤 '귀찮음'과 '이해함'이 섞인 오묘한 표정을 짓더니 키를 건네받고 시원하게 주차를 도와주셨다. 그분이 날 살린 셈이었다.


그 후론 서울 현장에 발령이 나서 1톤 트럭을 끌고 서울로 올라가 몇 달 동안 살았다. 운전실력이 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젠 언제 회사에 도착하는지도 어떻게 집에 온 지도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몸이 알아서 운전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수석에 가끔 앉으시면 이런저런 운전팁을 알려주시는 아버지도 이젠 운전에 대해선 별말씀을 하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는 여전히 훈수를 두시는데 그건 바로 '경로'다.


난 길치다.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다. 그에 비해 아버지는 네비가 없어도 여기저기 잘 찾아다닌다. 길가에 표지판을 보는 건지 진짜 길이 구석구석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어서 그런 건지는 알 길이 없다. 내가 티맵 하나에 의지한 채 운전을 하고 있으면 아버지는 희한하게도 항상 티맵과는 다른 길로 나를 인도하곤 했다.


"야가 왜 일로 가라 하노. 그냥 직진하자."

"고속도로 올리지 말고 절로 빠지면 더 빠르다. 저기서 우회전 하자."


사실 그게 참 불편했다. 아버지는 티맵처럼 상세하지도 친절하게도 설명해 주진 않기 때문이다. 여태껏 운전하면서 아버지를 포함해 본인이 알려줄 테니 그대로만 가라는 사람 중에서 길을 제대로 알려준 사람은 단연코 한 명도 없었다. 그들은 도통 미리 알려주는 법이 없었다. 때문에 차선을 언제 어디로 옮겨야 하는지가 가장 골칫거리였다.


어쨌거나 아버지가 이리로 가라 하면 이리로 갔고 저리로 가라 하면 저리로 갔다. 좀 불편하긴 했어도 내비게이션에 찍혀 있는 도착시간과 큰 차이는 없었기 때문이다(별 것도 아닌 일로 아버지와 나 사이에 트러블을 만들기도 싫었고).


그런데 이젠 상황이 변했다. 이젠 아버지가 가라는 대로 방향을 틀면 대개의 경우 도착시간이 10분에서 20분 정도 늘어나곤 했다. 겨우 2,3분 빨리 도착하겠답시고 도시 고속도로에 진입해서 1,200원 정도의 요금을 물 때도 있었다. 세월이 흐른 만큼 새로운 길이 많이 생겨서 그런 탓도 있을 것이다.


또한 네비를 쓰지 않던 아버지가 네비에 의지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길을 외고 다니며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길을 도통 믿질 않던 아버지였다. 하지만 이젠 네비가 없으면 찾아가지 못하는 곳이 많이 늘어난 모양이었다. 심지어 네비가 먹통이라며 전화가 올 때도 있었다. 아버지는 별생각 없이 내게 전화해서 원인을 물어본 거였겠지만, 난 네비가 안 된다며 전화한 아버지가 어색했다.


우리 아버지는 60대 중반의 나이에 배에 왕자가 있을 정도로 운동을 열심히 하시는 분이라 세월의 흔적이 잘 드러나질 않는 편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는 길이 내비게이션보다 현저하게 비효율적인 경로인 게 밝혀지고, 혼자서도 잘만 다니시던 분이 네비를 능숙하게 다룰 정도로 내비게이션에 의지하는 모습을 볼 때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런 현실이 참.


내비게이션이 나와 둘이 있을 땐 일말의 오차도 없었으면 좋겠는데,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땐 최대한 많은 실수를 했으면 좋겠다.




에세이 출간 소식

저의 첫 에세이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의 펀딩을 시작했습니다. 결혼의 본질인 '서로 잘 지내는 것'에 초점을 맞춘 저희 부부만의 독특한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결혼을 망설이는 분, 예비부부, 신혼부부, 행복한 결혼생활을 지향하는 분들에게 추천드리며 또 그런 분들에게 선물하기에도 좋은 책입니다.


많은 후원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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