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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사장님이 일깨워준 현실

ep 17. 결코 만만치 않은 출간의 여정

by 달보


뜻밖의 경로를 통해 출간제안이 들어와도, 원고를 투고한 출판사로부터 출간계약 의사가 있다는 회신을 받아도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출간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수록, 책을 내 본 경험이 없을수록, 출판사와 출판사에서 제시한 계약내용은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었습니다(전 그러지 못했지만요).


제게 처음으로 긍정적 회신을 보내온 출판사에서 제시한 예약판매라는 조건은, 알고 보니 기획 출판을 빙자한 자비출판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습니다. 전 애초부터 자비출판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에 예약판매를 빌미로 내 건 출판사의 제안은 고민할 것도 없이 거절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에 해당 출판사에서 출간한 작가님들을 찾아 출간 후기글도 읽어보고 인스타 DM도 보내봤습니다. 하지만 아직 계약을 하지 않았다면 다른 출판사를 좀 더 알아보는 게 나을 거라는 뉘앙스가 담긴 답변이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그 정도면 계약은 물 건너간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만, 코앞으로 다가온 출간기회를 제 발로 걷어차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안 그래도 메일함엔 '출간 향이 맞지 않아~'라는 문구가 들어간 메일만 쌓이고 있었기에 더 망설여졌습니다.


그러다 문득, 자주 방문하던 독립서점의 사장님에게 연락을 취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왠지 그분이라면 제게 출간제안을 했던 출판사의 평을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습니다. 서점에서 종종 열리는 강연을 갈 때면 먼발치에서 사장님 얼굴을 본 게 전부였지만, 용기를 내서 자초지종과 함께 연락처까지 적어서 메일을 보내봤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안녕하세요. 아까 오전에 메일을 주셨던데 읽어 보니까 통화로 답을 드리는 게 맞을 거 같아서 전화를 드렸어요."


"아, 안녕하세요 사장님!"


서점 사장님에게서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제 메일을 읽어 보시고선 말이 길어질 것 같아서 전화를 주신 것 같았습니다. 혹시 몰라 번호를 남기긴 했지만 전화가 걸려올 거라곤 예상치 못했습니다. 기대 이상으로 도움 될 만한 얘기들을 많이 해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이미 계약하지 않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는 있었지만, 서점 사장님과의 통화가 끝난 후로는 찜찜한 미련을 털어버릴 수 있었습니다. 그때 사장님에게 들은 것들 중 일부를 언급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약판매는 이미 유명한 작가여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아무도 모르는 무명작가가 신간을 예약판매 한다고 해서 사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정상적인 출간제안 메일은 말이 길지 않다. 만약 책이 1,500권쯤 팔리면 그중 1300여 종의 책이 나간다. 그만큼 책이 다양하게 팔린다는 소리다. 가뜩이나 책 사는 사람도 별로 없거니와 베스트셀러조차 하루에 판매되는 수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니 신인 작가가 단 이주 만에 몇 백 권의 책을 파는 건 현실적으로 힘든 얘기다. 예약판매는 미끼일 수도 있다. 덜 팔린 만큼 출판사로부터 책을 사야 하는 거라면 내 돈으로 출간하는 거나 다르지 않다.


그리고 사장님은 한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혹시 예약판매하는 책, 사본 적 있어요?"


그 질문을 받았을 때 한 방 먹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미 거기에 모든 답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동안 전 예약판매로 책을 사 보기는커녕 예약판매라는 단어를 아예 들어본 적도 없었습니다. 혹 어떤 유명한 작가가 신간을 예약판매 한다 하더라도 사전예약까지 하며 책을 사진 않을 터였습니다(전 신간도 웬만하면 도서관에서 빌려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같은 신인작가가(유명 인플루언서도 아닌) 첫 책을 출간하여 예약판매로만 300~500권을 파는 건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간 직시하지 못했던 현실을 마주하니 기분이 착잡하긴 했으나, 서점 사장님 덕분에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이미 아내에게 드디어 출간 계약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을 다 해버렸으니, 김칫국을 사발째로 들이 마신 꼴이 된 게 애석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리고 출간하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여지가 좀 남아 있긴 했습니다. 서점 사장님과 통화를 했을 땐 투고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던 때였습니다. 투고 후에 출판사로부터 답변이 오기까지 평균 2주에서 한 달 정도 걸리는 걸 감안하면 기회가 아예 없는 건 또 아니었습니다. 아닌 게 확실한 것치곤 고민을 꽤나 길게 했던 첫 번째 출간 계약의 건은, 해당 출판사에 정중하게 거절 의사를 밝힘으로써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그야말로 아쉽고도 아찔했으나 배우고 반성할 만한 요소가 많았던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정황상 풀이 죽을 법도 했습니다만, 느닷없이 오기가 생겼던 저는 더 많은 출판사에 투고를 했습니다. 대형 출판사든 독립 출판사든 에세이 도서를 출간하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원고와 기획서를 첨부한 메일을 보냈습니다. 두 번째 투고를 시작할 때만 해도 첫 번째보다는 좀 적게 투고할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론 훨씬 더 많은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게 된 셈이었습니다. 그만큼 간절하기도 했고 출판사 찾는 일이 전보다 수월해져서 그런 부분도 없잖아 있었습니다. 하다 보니까 출판사를 검색하는 것도 도가 튼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오기를 부린 보람은 있었습니다. 제 원고를 긍정적으로 본 몇 군데의 출판사에서 긍정적인 회신이 도착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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