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8. 전자책이 없는 건 아쉬운데
투고한 모든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았던 첫 번째 투고에 비하면, 두 번째 투고는 그래도 성공적인 셈이었습니다. 이전에는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긍정적 회신을 다섯 번씩이나 받았으니까요. 그렇다고 무조건 좋아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출간 계약 의사를 밝힌 다섯 군데의 출판사 모두가 정상적인(?) 제안을 한 건 아니었거든요.
우선 은근히 기획 출판 같으면서도 알고 보면 자비 출판과도 다름없는 예약판매 조건을 내 건 출판사가 있었습니다. 1쇄 1,000권 중 일부(200~500권)를 2주 간 예약판매하고 그중 덜 팔린 책은 작가가 직접 출판사를 통해 사야 하는 구조였습니다. 처음엔 투고한 지 하루 만에 도착한 답변 메일에 원고에 대한 피드백이 정성껏 적혀 있길래 마음이 혹했었습니다. 그래도 혹시 몰라 해당 출판사를 좀 더 조사했더니 원고의 퀄리티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홍보는 거의 하지도 않을뿐더러, 애초에 예약판매라는 게 신인 작가를 상대로 돈벌이하려는 미끼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책을 내고픈 욕망에 잠시 눈이 멀었었는데 운이 좋게도 현실을 직시하게 도와주신 몇몇 분과의 접촉 덕분에 정신 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쉬운 마음은 없잖아 있었으나 무리해서 좋을 건 없었기에 거절메일을 보내고 마음에서 지웠습니다.
그다음으로 다른 출판사에서 도착한 두 번째 제안은 반기획 출판이었습니다. 약 40만 원 정도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메일 본문에 적혀 있었습니다. 그 부분이 달갑진 않았지만 이전처럼 교묘한 상술 같은 느낌은 없어서 그나마 나았습니다. 그런데 해당 출판사가 낸 책들을 훑어보는 순간 경악을 금치 못했습니다. 표지 디자인이 죄다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폰트마저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나의 표지 템플릿에 제목만 다르게 해서 출판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용을 떠나서 너무 성의 없이 책을 만드는 곳 같았습니다. 제 원고가 그중 일부에 녹아드는 건 원치 않았습니다. 고로 일말의 고민도 없이 거절했습니다.
사실 어느 정도의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출간할 의사가 있긴 했습니다. 무조건 기획 출간만 고집하겠단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전에 출간했던 책들이 나쁘지 않아 보이는 출판사였다면, 40만 원이든 100만 원이든 어떤 조건에라도 계약을 했을 터였습니다. 그런데 멀쩡한 출간 제안이 아닌 제안을 하는 출판사에서 만든 책들은 하나 같이 뭔가가 엉성했습니다. 더군다나 그런 곳일수록 블로그나 SNS도 활성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형식적으로 운영하는 티가 났기에 홍보는 기대도 하면 안 될 듯했습니다.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성에 차지 않는 출판사라면 애초에 투고를 하지 않았으면 될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어떤 곳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무지성으로 투고한 건 아니었습니다만, 신기하게도 계약을 코앞에 두고 출판사를 다시 조사해 보면 이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곤 했습니다.
그 후 며칠 후에 도착한 세 번째 제안은 비로소 그동안 받은 것들 중 가장 무탈했습니다. 일전에 평소 즐겨 방문하는 서점 사장님에게서 들은 바로는 정상적인 제안이라면 말이 그리 길지 않을 거라고 하셨는데, 확실히 메일에 적힌 내용은 간단명료했습니다. 인세와 출간시기 그리고 참고자료로 계약서가 첨부된 게 다였습니다.
실은 세 번째로 제안을 해 온 출판사의 문을 두드리게 된 계기는 당시에 '천재작가'라는 필명으로 활동하시던 브런치 작가님 덕분이었습니다(이후 '류귀복'으로 작가명을 변경하셨습니다). 그분의 저서 <나는 행복을 촬영하는 방사선사입니다>의 생생한 출간 후기가 실린 브런치 글을 우연찮게 읽던 와중에 해당 출판사를 처음 접하게 된 거였습니다. 비록 에세이를 전문적으로 출간하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만든 책들을 보면 자연과학 분야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근데 그런 출판사에서 류귀복 작가님의 에세이를 출간했길래 좀 더 알아보니까,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따뜻한 사람 이야기가 담긴 수필에도 관심이 있는 출판사였습니다. 그래서 투고를 하게 된 것입니다. 만약 별도의 검색으로 찾게 된 곳이었다면 분야가 맞지 않다고 판단하여 원고를 보내진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여담이지만 류귀복 작가님의 '무명작가 에세이 출간기'를 읽고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친근하고 술술 읽히는 작가님의 필력이 부러우면서도 동시에 딱딱하고 진지하기만 한 제 필체를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글을 발견한 덕분에 지쳐가는 와중에 다시 힘을 내서 한 발짝 더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고로 출간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류귀복 작가님의 브런치 글을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그 출판사는 전자책 출간을 지양한다는 점이었습니다. 물론 저도 굳이 꼽자면 종이책을 더 선호하긴 합니다만, 몇 년 전부터 제가 하는 독서의 90% 이상은 전자책을 활용하고 있었습니다. 여건이 충족된다면 모르겠으나 직장 생활하며 바쁜 와중에 틈틈이 종이책을 읽는 건 현실적으로 애로사항이 많았거든요. 내용에 비해 점차 오르기만 하는 책값도 감당하기 버거웠고요. 반면에 전자책은 신간 도서 6권 정도의 값만 지불하면 1년 동안 맘 놓고 책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한 손에 책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고, 밑 줄 치거나 메모할 필기도구를 갖고 다닐 필요도 없으며, 공간을 차지할 일도 쌓인 먼지를 털어야 될 일도 없었습니다.
물론 전자책 서비스를 구독한다고 해서 모든 책을 다 읽어볼 수 있는 건 아닙니다. 해당 플랫폼을 다루는 업체와 계약한 도서만 접할 수 있는 구조니까요. 그럼에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크게 개의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한 책에 실린 내용은 비슷한 분야의 다른 책에서도 충분히 엿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성향과 관념을 지닌 만큼 표현방식이 각자 다른 것일 뿐, 인간인 이상 주장하는 바에 대한 본질은 어느 정도 다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아무리 뜨거운 감자일지언정 특정 책 한 권에 매몰되는 건 경계하려 합니다. 하물며 꼭 읽고 싶은 책이 전자책으로 유통되지 않았다면 도서관에 가서 빌려보면 될 일이었습니다. 종이책도 매력 있지만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면에선 전자책이 제 기준에선 장점이 많았기 때문에 점점 그쪽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저였기에 제 원고를 전자책으로 만나볼 수 없는 건 그냥 넘길 수 없을 만큼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종이책만 내자니 5년의 계약기간 동안 전자책을 만들어 볼 기회조차 가질 수 없었기에 선뜻 결정을 내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투고 메일에 대한 답변이 올 만한 곳들은 이미 다 왔다고 여기기에도 모자람이 없던 때였습니다. 어쩌면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었습니다. 하물며 저 같은 작가지망생이 투고 후 세 곳의 출판사로부터 출간 제안을 받은 것만으로도 올해 운은 다 쓴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아, 정말 쉽지 않다'라는 생각이 온종일 머릿속을 어지럽히던 찰나에 낯선 곳에서 새로운 메일 한 통이 도착했습니다.
[에세이 출간 안내]
'서로 잘 지내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결혼의 본질이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