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타흐리르 광장부터 가멜라야 호텔 가는 길
인생에 시련이 있으면 즐거움이 있고, 즐거움을 예상하며 시련을 이겨낼 힘을 얻는다.
여행에도 데꼬보꼬가 있어야 다시 힘을 내어 다음 일정을 준비할 텐데, 즐거움이 예견된 시점에 시련의 강도가 강-강강-최강으로 치달으면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어 진다. 내 옆에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나만 바라보는 어린아이가 없었다면, 나는 길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을 거다.
이렇게 책임은 무겁지만, 시련 속에서도 나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오프로드 차량 두 대에 나눠 탔던 아홉 명의 여행객은 호텔에서 짐을 찾아 다시 승합차에 모였다.
이집트 여행이 막바지라는 사람도 있고, 나처럼 이제 시작인 이들도 있다.
이제 곧 집으로 돌아간다는 스페인 부부는 룩소르에서는 자전거 여행을 계획한다는 내 말에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 그리고 룩소르 열기구 투어를 저렴한 가격으로 할 수 있다며 가이드 연락처도 넘겨줬다. 한 명에 70불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 가격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승합차 기사가 점심으로 샌드위치와 감자칩, 생수가 든 봉투를 관광객들에게 하나씩 나눠 준다. 샌드위치는 이집트 전통 빵인 아이시에 각종 다진 채소와 병아리콩을 갈아서 튀긴 이집트 음식 팔라펠이 들어있었다. 고수도 잔뜩 들어간 그 샌드위치를 Yul이 먹을까 기대했는데 역시나 입도 대지 않고 남겼다. 그러더니 ‘이 귀한 거!!!’라며 감자칩을 먹는다. 나는 Yul이 배고플지 걱정돼 내 감자칩도 Yul에게 줬다.
“엄마, 할머니가 과자 그런 거 좋아하잖아. 커피랑 먹으라고 이건 할머니 가져다 드릴래. 귀한 거니까.”
“뭐? 너 배고플 텐데 그냥 먹어.”
“귀한 거야. 할머니 좋아하니까 갖다 줄 거야.”
평소 맛있는 음식은 남기더라도 나눠주지 않는 욕심 많은 Yul이가 집 떠나더니 철이 들은 걸까? 할머니를 챙긴다.
“나중에 한국 가기 전에 살게, 그건 그냥 너 먹어.”
Yul은 겨우 감자칩 두 봉지 먹고, 전날 샀던 콜라 맛 하리보로 허기진 배를 채우며 네 시간가량 차를 탔다.
오후 다섯 시쯤 되니 카이로 시내에 도착했는데 차도가 주차장 같다. 신호등이 없는 차도에는 차들이 엉켜있고, 경적이 난무한다. 대부분 카이로 박물관이 있는 타흐리르 광장 근처에 호텔이 모여있어 호텔 근처에 도착한 사람들이 하나둘 내리기 시작했다.
“너희 호텔은 어디야? 기사한테 말해 줘야 할 것 같은데?”
댄이 걱정스럽게 묻는다.
“내 호텔이 마지막인 것 같아, 타기 전에 얘기했는데, 그래도 다시 한번 확인해야겠다.”
“그래, 꼭 얘기해야 할 것 같아."
영어를 못 알아듣는 기사에게 휴대폰 지도로 내 호텔 위치를 보여줬다. 그랬더니 기사는 난감한 표정을 하고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한참을 통화하다가 나를 바꿔준다. 여행사 직원이었다.
그의 말로는 내가 예약한 호텔은 큰 차가 들어갈 수 없는 도로에 있고 지금 도로가 너무 막혀 도저히 갈 수 없으니, 적당한 곳에 내려서 우버로 택시를 불러 가라는 것이다. 우버에 찍힌 금액을 기사한테 보여주면 그만큼은 환불해주겠다고 한다.
댄은 그렇게 길가에 나가게 된 엄마와 아이가 걱정이었는지, 역 앞에서 우버를 부르라며 지하철역 앞에 차를 세워주라고 기사와 손짓발짓으로 소통한다.
나는 그렇게 굶주린 Yul과 16킬로 케리어를 끌고 배낭까지 멘 채로 복잡한 도로 한복판에 떨어지게 됐다.
그나마 댄의 배려로 우버를 부를 위치를 정확히 찍을 수 있는 곳이라는 게 다행이었다.
진정한 여행의 서막이 열리는 것 같았다.
우버는 잡혔는데 아랍어로 번호를 표기한 차량 중 내가 부른 차를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와 Yul은 신호등이 없는 도로를 이리저리 살피며 건너기를 반복하다, 우버 지도 속 내가 부른 차와 가까워지는 방향을 겨우 찾아냈다. 그 방향으로 걷다가 도저히 기동성이 나지 않아, 나는 인도 끝에 케리어를 두고 Yul에게는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리라고 했다.
차를 찾아오겠다고 말하는 내게, Yul은 불안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50m 정도 앞으로 가니 내가 부른 그 번호판과 같은 꼬부랑글씨가 적힌 차가 있다.
기사는 창문을 내리고 손을 흔든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나는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손짓으로 말하고 Yul에게 갔다.
“엄마, 차 찾았어!! 따라와.”
“응, 엄마 근데 저기…. 저기…”
Yul의 눈을 따라가니 노숙자가 있다. 거리에서 낡은 이불을 덮고 쪼그려 모로 누워있는 여자다.
처음 보는 장면에 Yul이 놀란 것 같았다. 나는 기다리는 내내 불안해하며 그 노숙자와 내가 사라진 길을 번갈아 쳐다봤을 Yul을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하다.
“우선 차 타자.”
모래를 뒤집어쓴 나는 빨리 호텔에 가서 씻고 싶었다. 카이로가 원래 이렇게 길이 막히는지 물으니, 기사는 월요일이라 그렇다고 한다.
거리 양옆의 건물에는 이집트 국기를 들고 흔드는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이집트 대통령 선거 최종 집계 결과가 발표된 날이기도 했다. 궁금해 기사를 찾아보니 89.6%의 득표로 엘시시 대통령이 세 번째로 연임을 하게 됐다고 한다. ‘이게 가능한 득표율인가? 신기한 일이네..’ 속으로 중얼거리는데, 기사가 말을 건다.
“너희 호텔은 차가 들어갈 수 없는 도로에 있어. 거기 길이 다 막혀 있어. 그러니까 여기서 걸어가야 해. 5분이면 가.”
“뭔 소리야. 지도 보니까 1.5킬로, 20분이라고 나오는데!”
짐이 한가득이고 지칠 대로 지친 나는 제발 아니기를 빌었다.
“저기 봐, 길 막혔잖아. 여기서 내려야 해.”
울고 싶은 심정으로 다시 한 손에는 케리어를 한 손에는 Yul 손을 잡고 길가에 나섰다. 말이 1.5 킬로지, 칸엘칼릴리(Khan el-Khalil) 시장을 관통하는 거리는 관광객과 현지인, 상점의 호객꾼들로 붐볐고, 바닥은 매끈한 포장도로가 아닌 울퉁불퉁한 돌길이었다. 예약한 호텔을 취소하고 변경한 내 손을 분지르고 싶은 심정이다.
처음에는 타흐리르 광장 바로 앞에 있는 가성비 좋다는 ‘타흐리르 플라자 스윗’을 예약했었다. 1박에 50불 정도로 저렴하고 위치도 좋은 곳이다. 그런데 여행 전까지 시간 여유가 많았던 게 독이 됐다.
카이로 시민들이 찾는 공원에 가서 산책하며 도시락을 먹고, 자전거도 타고 싶었다. 그래서 ‘호모서치우스’답게 검색을 시작했고, 공원과 멀지 않은 듯 한 곳에 부티크 호텔을 발견했다. 리뷰도 하나같이 칭찬 일색이다. 특히 위치에 대한 극찬이 줄이었다.
‘이집트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환상적인 위치였습니다.’
‘카이로의 이슬람 구역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동네가 재미있고 둘러볼 곳이 많아요.’
‘카이로 구시가지에서 이 작은 보석을 발견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리뷰를 읽고 나니, 현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고 교류하고 싶다는 내 바람은 이 호텔이 아니면 이루지 못할 것만 같았다. 게다가 호텔 홈페이지에는 나를 유혹하는 글귀가 박혀있었다.
‘카이로 구시가지 중심부에 있는 문화 허브가 이집트의 전통 예술의 부활을 약속합니다.
가말레야 지역의 중세 카이로의 문화 예술 유산은 자본주의와 대량생산으로 인한 시장의 힘으로 사라질 위기에 있습니다. 많은 수공예와 기술들은 이미 사라졌습니다.’
이 사라저 가는 이슬람 수공예 예술을 부활시키기 위한 작업장이 함께 있는 호텔이라니!
1박에 100불 정도 하는 숙박비가 아깝지 않아 보였다.
결국 호텔을 변경했고, 나는 신비의 단어로 보았던 그 ‘구시가지’를 짐을 끌고 구겨진 얼굴로 힘겹게 걷기 시작했다.
빨리 씻고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방에 들어가면 저녁 식사는 건너뛰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은 떨칠 수가 없다. 이날 저녁마저 대충 넘기면 Yul이 영양실조에 걸릴까 걱정된다.
나와 Yul은 가는 길에 호객꾼이 열심히 불러주는 곳으로 자석처럼 끌려 들어갔다. 다행히 Yul이 좋아하는 피자와 파스타가 있는 식당이다.
마르게리타 피자와 망고주스를 시키고 한숨 돌리는데, 이 식당의 마스코트인 듯한 댄서가 우리 앞으로 온다.
조명들을 잔뜩 설치한 거대한 치마를 입은 남자인데, 빙빙 돌면서 춤출 때 조명효과로 화려함이 극대화된다.
망고주스로 에너지를 끌어올린 Yul을 그 남자가 끌어내더니 목에 자기 치마를 벗어서 감아준다.
Yul은 얼굴만 내민 채로 빙빙 도는데 Yul을 감싼 천에서 화려한 불빛이 일렁인다.
지친 여정 중에 뜻하지 않은 이벤트로 Yul과 나는 다시 웃을 힘을 내본다.
짧은 휴식을 뒤로하고 우리는 남은 피자 세 조각을 챙겨 다시 길가로 나섰다.
짐을 철저하게 챙긴다고 해도 항상 뭔가를 빼먹는 내가 이번 여행이라고 다를 리가 없다. 휴대폰 충전 선만 가져오고 어댑터를 챙기지 않은 것이다. 피라미드 호텔에서는 리셉션에서 어댑터를 빌렸고, 사막에서는 댄에게 휴대용 충전기를 빌려 썼다.
그래서 사진도 최소한으로 찍으며 타의로 디지털 디톡스를 한 나는 오늘 꼭 어댑터를 사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호텔 가는 길을 찾는데 휴대폰 배터리는 8%다. 거의 3년을 사용한 아이폰 12프로는 배터리가 5% 정도 남으면 예고 없이 꺼지기도 한다.
휴대폰 구글 지도 없이는 이 복잡한 거리에서 호텔을 찾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불안한 나는 휴대폰 샵을 찾으려 두리번거렸다. 마음 급한 여행객으로 보일 게 뻔했기에 흥정할 생각 없이 바가지도 감내할 생각으로 가장 먼저 보이는 샵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삼성의 USB 어댑터 하나를 600파운드, 한국 돈 2만 5,000원에 팔려고 한다. 이건 아니다 싶어, 사지 않고 흥정을 시도하며 버텼다.
“200파운드!”
“안돼, 200파운드로는 이것만 살 수 있어.”
어댑터와 선이 일체형인 구형 충전기를 내민다.
“아니, 그건 필요하지 않아. 그럼 300파운드!”
“600 아니면 안 돼.”
“알았어, 그럼 안 살게.”
뒤 돌아 나서면 ‘그럼 400만 줘!’라고 하며 잡아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기념품이 아닌, 현대의 필수품을 파는 이곳은 사뭇 달랐다.
내가 나가는 것을 냉소적인 시선으로 보고만 있는 것이다.
‘휴… 그래. 난 이 구역 호구다!’ 출입문을 나서고 두 발짝도 못 가고 돌아서서 들어갔고, 600 파운드를 내고 어댑터를 샀다. 그런데 돈 값을 하는지, 삼성의 제품력인지 사용하는 내내 고속 충전이 너무 잘 되는 훌륭한 품질에 감동했다.
나와 Yul은 타흐리르 광장부터 열 시간 같은 두 시간을 거리에서 보낸 끝에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그리고, 너무 허름한 입구에 호텔이 맞나 두 눈을 의심했다. 평범한 곳을 거부하고 잘난척하며 고른 호텔이 여기라니!
호텔 매니저는 쉬고 싶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호텔의 구석구석을 소개해 준다.
리뷰에서 ‘직원이 너무 친절해요’가 자주 보이더니, 이런 친절이었구나 싶다.
그는 공방이 늘어선 복도를 지나 중정같이 천정이 개방형인 작은 홀로 우리를 데리고 가서 전시된 사진을 소개한다.
“원래 이 호텔은 비누 공장이었어요. 비누 공장을 개조하는 과정이 여기 담겨 있고… 지역 예술가… 공방… 블라.. 블라.. 블라…”
너무 듣고 싶은 내용이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끼어들었다.
“저, 사막 투어하고 와서 지금 너무 피곤해요. 쉬고 싶은데 내일 아침에 다시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피곤해서 설명에 집중할 수가 없어요.”
“아! 그럼요. 1번 방은 여기예요.”
중정 바로 옆으로 돌아 들어가 1층에 있는 방이었다. 그
렇게 드디어 방으로 들어가 짐을 풀었다.
방은 어두컴컴하고 TV나 헤어드라이어도 없었다. 공장을 개조한 곳이라 층고는 매우 높고 벽돌이 노출된 실내는 뭔가 으스스한 느낌마저 든다.
설립 및 운영 의도는 좋으나 지친 여행객이 원할법한 호텔의 따뜻하고 안락한 분위기는 찾을 수 없다.
밤에 찾은 이 호텔은 찾아가는 길부터 내부 시설까지 그 단점만 더 부각됐다.
다음에 개발 도상국을 여행한다면 시내 호텔은 글로벌 체인으로 예약해야겠다는 깨달음을 얻고 침대에 누웠다. 이때까지는 이 호텔이 아니었다면 누리지 못했을 카이로의 다양한 모습을 만나기 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