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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경아 Feb 18. 2024

11. 기분 좋은 주문, '살람 알리쿰'

한국을 관광온 외국인이 어설픈 발음으로 '안녕하세요'와 '고맙습니다'만 한국어로 말해도 우리의 호의는 한층 올라간다. 간단한 표현을 상대방 언어로 미리 준비했다는 건, 당신 나라를 존중한다는 것을 가장 쉽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다.(영어권이 아닐 경우!) 나와 Yul은 이날 아랍어 인사를 연습하며 기분 좋게 이슬람 세계로 뛰어 들었다.


이집트는 인구의 90%가 이슬람교인 아랍 문화권 국가다. 새벽 네 시경부터 울려 퍼지는 기도 소리는 ‘이슬람 구역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라는 호텔 평을 생생히 증명한다. 나일강 서쪽 ‘죽은 자들의 땅’에서 고대 이집트 유산을 보고 오니, 나일강 동쪽 ‘산 사람들’이 나도 여기 있다며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Yul과 나는 반쯤 깨 눈만 끔뻑이며 기도 소리를 흘려듣고 있다. 그 ‘선동’하는 것 같은 톤의 소리는 못 알아듣는 사람의 에너지도 쭉쭉 흡수하는 것 같다.

“엄마, 배고파.”

“아직 식당 문 안 열었을 텐데. 우선 어제 포장해 온 피자 먹어”

Yul은 새벽 다섯 시, 피자 세 조각을 흡입한다. 언제쯤 규칙적인 세끼 식사를 정상적인 시간에 할 수 있을까? 걱정도 잠시, 방 안에서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나가기도 애매해서 나는 Yul과 음식 이름 빙고 게임을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내 아이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게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이다. 햄버거나 피자, 분식 종류에서 그칠 줄 알았는데, ‘수시(스시), 민트, 세우(새우), 체리, 공국(곰국) 등' Yul이 부르는 음식 종류는 다양했다. 그리고, Yul은 컴퓨터 게임이 아닌 이런 재래식 게임에도 흥미를 보였다. 바쁜 생활 속에서는 아이가 디지털 기기를 과하게 하면 나무라기만 했지, 다른 활동을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에게 놀아달라고 하지 않기만을 바랐었다. 내게도 여유가 생기니 어린 시절 기억을 끄집어내, 특별한 도구 없이도 아이와 할 수 있는 다양한 놀이를 떠올려 본다. 빙고와 ‘파란 나라’ 노래에 맞춰 쎄쎄쎄를 하다 보니 여섯 시 반이다. 어제 못다 한 호텔 구경을 하고 식당으로 올라갔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이국적인 아랍식 건축물 구석구석에 전시된 아름다운 수공예품이 눈에 들어온다. 식당은 가정집처럼 주방과 붙어있어, 조식을 우리가 보는 데서 차려준다. 식당 직원은 달걀 프라이와 요거트, 이집트식 치즈, 바나나, 오이, 토마토 등을 한 접시에 내어 줬다. 사막 드라이버였던 아쌈에게 배운 아랍어로 인사를 했다.

“쌀림 알라쿰!”

“어?”

직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엄마, 살람 알리쿰.”

“아!! 살람 알리쿰.”

푸근한 인상의 식당 직원은 미소를 머금고 대답해 준다.

“살람 알리쿰.”

이름이나 단어를 잘 기억하지 못하는 나는 Yul의 도움을 받아 소통에 성공했다. 음식을 다 먹고는 ‘슈크란(Thank you)”, 식당을 나서며 ‘마쌀람(bye bye)’까지, 이날 하루 종일 반복하게 될 말을 연습해 본다.


저녁의 화려하고 북적대던 그곳이 맞나 싶게, 아침 거리는 전쟁이 휩쓸고 간 폐허 같다. 지저분한 거리 곳곳에는 커다란 강아지가 음식 쓰레기를 찾아 어슬렁거린다. 등교하는 아이들, 길가에 의자를 놓고 물담배를 피우는 노인도 종종 보인다. 그 와중에 Yul은 고양이 뒤를 쫓느라 바쁘다. 인도네시아로 자주 출장을 가는 회사 동료가 다녀오면 항상 길고양이 사진과 영상을 보여줬다.

“이슬람권 국가들은 고양이를 깨끗하고 신성한 동물이라고 여겨 함부로 못 하는데, 그래서인지 길고양이도 사람을 경계하지 않고 잘 따르더라고요.”

호텔 근처는 ‘이슬람 구역 중심부’ 답게 골목 곳곳에도 고양이가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고 있다. 그렇게 목적지 없이 왼쪽은 노란색, 오른쪽은 파란색 눈을 가진 짝눈 고양이에서 앉아있는 모습이 식빵처럼 생긴 고양이로 옮겨가며 고양이 로드를 따라 이십 분 정도 걸었을까, 이슬람풍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가 나온다. 초입에 있는 건물 앞 표지판에는 ‘UNESCO 지정 이슬람 문화유산’이라고 쓰여있다. 알 무이즈 거리(Al-Mu’izz Street)라고 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이슬람 유물 야외 박물관으로 불리는 곳이다. 아직 티켓 판매소가 문을 열지 않아 그 앞 작은 광장에서 기다리는데, Yul보다 두 살 정도 어린 남자아이와 다섯 살쯤 돼 보이는 여자아이를 동반한 가족 관광객도 있었다. 남자아이는 스파이더맨 장난감을 들고 부산스럽게 돌아다니고, 여자아이는 엄마 손을 꼭 잡고 주변을 살핀다. Yul은 광장의 한쪽 구석, 돌로 된 조명 위에 있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나름의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파키스탄에서 왔다는 그 가족은 이슬람 역사 유물을 보기 위해 온 듯하다. 그들과 함께 한국에서 챙겨 온 빈츠와 캐러멜을 나눠 먹으며 오픈 시간을 기다리는데, 머리카락 한 톨 흐트러지지 않게 올백 머리를 한 밝은 표정의 남자가 오픈 시간을 수시로 체크해 준다. 파키스탄 가족의 개인 가이드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티켓을 구매하는 것까지 세심하게 도와준다. 밝고 유쾌한 이곳 직원이구나 싶었다. 피라미드에서 만났던 그 친절한 직원으로 분한 성질 급한 가이드에게 당하고도, 나는 또다시 걸려들었다. 이쯤 되니 이마에 ‘이 구역 호구’라고 붙이고 다녀야 할 것 같다.


알 무이즈 거리에는 800년 전 지어진 이슬람 사원, 학교, 병원 등이 모여있다. 그리고 건물마다 담당하는 가이드가 있는 듯하다. 나와 Yul은 그 올백 머리 남자의 안내로 가장 큰 건물에 들어갔다. 오스만 제국이 지배하던 AD 1285년, 이집트의 맘루크 왕조 때 지어졌는데, 학교, 기숙사, 4,000명의 환자를 수용하던 병원 등이 있는 복합 건물이다. 병원은 신분에 상관없이 몸이 아픈 사람을 치료했고, 정신병원 역할까지 했다고. 이 내용은 들어가는 길 안내판에서 봤다. 그 올백 머리 남자는 나와 Yul이 묻지 않으면 자세한 설명은 해주지 않았다. 반면, 파키스탄 가족을 안내하는 가이드는 각 공간에서 꽤 오랜 시간 설명을 해준다. 옆에 서서 듣고 싶어도 아랍어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아마도 이슬람 유물을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동양인이 드물었고, 대부분 인증샷 남기고 나가는 관광객이었나 보다. 그 올백 머리 남자는 몸소 체득한 통계적 사실에 기반해 나와 Yul을 담당했던 것 같다. 자세한 내용을 알아도 영어로 설명하는데 한계가 있었는지, 혹은 지식 자체가 짧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사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찍는다.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포토 스팟에 세우고는 다리가 길게 나오고 배경이 실제보다 아름다워 보이는 구도로 사진을 찍어준다. 피사체가 되는 걸 즐기는 편이 아니라, 결혼식 때 스튜디오 촬영도 하지 않았던 나인데, 이날 내 인생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내 사진을 많이 찍었다. 올백 머리 남자는 나와 Yul에게 창살 밖을 보라고 하더니, 밖으로 나가 맞은편에서 창살을 흐릿하게 날리고 인물이 또렷이 나오게도 촬영한다. 피라미드 가이드와는 대비되게, 전문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실력에, 열정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우리를 어둡고 좁고 허름한 계단실을 통해 건물 꼭대기로 데리고 간다. Yul 앞이라 아무렇지 않게 계단을 올랐지만, 이러다 납치돼도 아무도 모르겠다는 공포감이 마음을 졸여왔다. 다행히 계단 끝은 탁 트인 옥상이다. 옥상 끝 쪽으로 작은 방이 여러 개 붙어 있었는데, 800년 전 학생들 기숙사로 쓰였다고 한다. 한 평도 안 되어 보이는 공간은 세월의 풍파로 낡을 대로 낡았다.

“엄마, 여기는 공부 못하는 얘들이 살던 데야? 아니면, 가난한 얘들?”

“글쎄, 여기는 공부도 잘하고 돈도 많아야 들어왔을 것 같은데… 맞지?”

올백 머리는 물을 때만 답해준다.

“응, 여기는 공부 엄청나게 잘하는 아이들이 다닌 학교야. 코란 ‘알라쿰 쏼라쿰…’ 그거 배우는 데야.”

답변은 유쾌하고 간단하게 마치고, 이번에는 옥상 한쪽 계단 위에 우리를 세우고는 파란 하늘과 둥근 지붕, 뾰족한 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준다. 한바탕 사진 촬영을 마친 우리는 다시 1층으로 내려갔다. 이번에는 기도실과 교실이었다는 공간으로 갔다.

“엄마, 그럼 선생님들도 여기 살았어?”

“나 선생님 살던 데도 보고 싶어.”

“왜 교실인데 책상이 없어? 바닥에서 공부했어?”

“선생님은 어디 앉아?”

Yul은 궁금한 게 많은데 올백 머리는 들어도 못 들은 척하는 건지 못 알아듣는지, 동문서답이다.  

“여기 서서 말해봐. 말이 울릴 거야. 여기가 기도하는 데야. ‘알라쿰 쌀라쿰 블라..블라..”

천장이 돔으로 된 벽에서 움푹 들어간 공간을 안내한다. 아이의 관심사를 돌리기에는 좋은 방법이다.

“와~~!!”

Yul은 소리가 울리는 것을 신기해하며, 무엇을 궁금해했는지도 잊은 것 같다. 올백 머리에게 더 이상 정보를 기대하기 어려워 200파운드와 '슈크란'이라고 인사를 건네니, 팁을 받은 그는 <나 홀로 집에 2>에서 팀 커리가 연기한 호텔 지배인을 연상케 하는 미소로 회답했다. 상대에게 만족감을 주는 것은 ‘콘텐츠’보다 마음가짐이 드러나는 ‘태도’와 ‘표정’이다. 유적지 가이드의 기본인 역사 지식이 부족했던 올백 머리 남자였지만, 그와 함께했던 시간은 기분 좋게 기억될 것 같다. 여행자 또한 가장 쉽게 상대 국가를 존중하는 마음가짐을 보여줄 수 있는 게 '상대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나와 Yul은 기회만 되면 '살람 알리쿰(Hello)', '슈크란(Thank you)', '마쌀람(bye bye)'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상대의 호의를 이끌어 내는 주문같았다.


올백 머리와 기분좋게 헤어진 후 이슬람 구역을 벗어나려고 하는데, 그 구역 모든 유적지를 볼 수 있는 프리패스 티켓이 아까워 한 군데 더 들어가 보기로 했다. 눈앞에 보이는 입구로 들어가는 데, 그 앞에서 관광객을 기다리던 가이드가 따라온다. 그곳 역시 오스만 제국 시대에 학교였다고 한다. 가파른 야외 계단을 오르면 ‘쿠탑(Kuttab)’이라는 학교 교실이 나온다. 예전에는 돌계단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녹슨 철제 계단이라 올라가는 길이 불안하다. 이번 가이드는 사진보다는 유적 설명에 더 충실했다.

“책상에 앉아서 공부했어? 아니면, 바닥에 카펫 깔고 했어?”
 “학생들은 여기 바닥에 앉아서 공부도 하고 기도도 했고, 저기 보이는 턱에 선생님이 앉아서 코란을 가르쳤어.”

Yul은 환한 얼굴로 바닥에 앉아 책 읽는 시늉을 한다. 텅 비어 차가운 실내에 아이들의 온기가 도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 건물 1층에는 예전에 물을 제공했다는 ‘사빌(Sabil)’이라는 공간이 있다. 사막에 있는 더운 나라인 이집트는 식수가 귀했던 것 같다.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물을 제공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식수대에 큰 의미를 둔다는 게 신기하다. 방 안에는 빨래판과 같이 생긴 큰 돌 판이 사선으로 세워져 있는데 그게 정수기 역할을 했다고. 그 앞에 야외로 창문이 나 있는 곳 바닥에 대리석으로 네모난 물 저장고가 있었다.

“여기는 말이나 나귀가 지나가다가 물 마시는 데야?”

“아니야, 그게 ‘사빌(Sabil)’이야. 지나가는 목마른 사람들을 위해 물을 제공하던 곳이야. 거기는 사람들이 물을 마시는 데야.”이슬람교는 그렇게 서민들을 위한 교육과 의료시설에 투자했고, 사람들이 가장 불편해하는 부분을 해결해 주며 이 나라의 문화 깊숙이 파고든 것 같다. 이슬람교가 지배층에서 시작했다는 것에서는 다르지만, 생활 곳곳에 확산한 방식은 우리나라에 개신교가 퍼져나갔던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사빌의 가이드에게도 200파운드 팁을 주고 이슬람 구역을 빠져나왔다.


이슬람 거리 고양이의 매력에 빠진 Yul
좌) 우물가(Sabil)의 정수기 역할을 한 돌판, 우) 우물가(Sabil)의 식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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