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ite Desert 야영
이상을 추구하는 인생은 소설에서나 본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시급한 과제는 눈 앞의 목표나 먹고 사는 문제다. 북극성을 찾아 사막까지 들어온 이들은 현실의 고민을 잠시 잊으려 왔을건데, 결국 먹고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다섯 시 반쯤부터 어둑해진 사막의 밤은 이내 칠흑같이 변했다. 발열 내의를 입고 경량 패딩도 걸쳤는데 은근한 한기가 몸을 감싼다. 하늘에 빼곡한 별 중 가장 환하게 반짝이는 것을 가리키며 힐다가 말한다.
“오! 저게 북극성인 것 같아.”
‘북극성…그 마케팅 포지셔닝 문서에서만 보던 신기루 같은 별이 실존하다니!’
4년 전 회사 CMO가 만든 포지셔닝 문서에 ’North Star’가 등장했다. 왜 ‘Goal’이 아닌 ’North Star’라고 하는지 궁금해 미국 동료에게 물었었다.
“North Star는 닿을 수 없는 목표 같은 거야. 우리한테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데 결코 닿을 수 없는 그런 원대한 목표,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이상으로 생각하면 돼.”
그 닿을 수 없는 방향지시등이 낮게 떠서 밝게 빛나고 있다. 내 인생 ‘북극성’도 불안과 의심이 끼어들 여지없이 저렇게 밝게 빛나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도심 하늘에서 더 이상 보기 어려워진 북극성처럼, ‘북극성’이 가이드하는 인생을 사는 사람을 찾기 힘든 요즘이다. 아마도 그런 이들은 ‘현실감 없는 사람’이나 ‘몽상가’로 불리며 자의 반 타의 반 북극성을 감추거나 버렸을지 모른다. 돈, 명예, 학벌 같은 잡을 수 있는 Goal이 아니라, ‘북극성’을 따라 한 걸음씩 내딛는 동방박사들이 주변에 많아졌으면 좋겠다.
힐다 덕분에 ‘북극성’을 마주한 나는 내친김에 별자리도 찾아보기로 했다. 나와 Yul은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50미터쯤 걸어 나가 불빛 한 점 없는 사막에 섰다.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는데 찰나의 시간에 작은 꼬리를 그리는 별이 보인다. Yul과 나는 ‘별똥별’을 봤다며 호들갑을 떤다. 조금 더 긴 꼬리, 아주 짧은 꼬리… 그렇게 별똥별은 생각보다 자주 나타났다. 그리고 아주 또렷하게 국자 모양으로 박혀있는 일곱 개의 별을 발견했다. 북두칠성이다! 별자리 지식이 미미한 나도 알아볼 정도로 북두칠성은 선명하게 국자 모양을 드러낸다. 휴대폰 노출을 최대한 높여도 밤하늘의 무수한 별은 다 담기지 않는다. 그래도 유난히 반짝이는 북극성과 선명한 북두칠성은 사진으로 박제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한참을, 하늘을 올려다본 Yul과 나는 아픈 고개를 토닥이며 야영지로 돌아간다.
“별똥별 보면서 소원 빌었어?”
“응”
“뭐라고?”
“엄마 피부 빨리 낫고, 아프지 않게 해 달라고.”
“어머! 내 새끼.”
“엄마는?”
“별 탈 없이 Yul이 건강하게 여행하게 해 달라고.”
Yul은 내 고질인 피부 양진을 무척 걱정한다. 별똥별을 보는 멋진 순간에도 내 건강을 위해 소원을 빌었다니 Yul에게 미안해진다.
아쌈의 베이스캠프인 야영지에는 희고 큰 사각 텐트가 있다. 몽골의 게르와 비슷한 유목민인 베두인의 전통 가옥인 듯하다. 아쌈은 그곳에 들어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우리는 야외에 카펫을 깔고, 그 위의 테이블 주변으로 둘러앉았다. 바나나와 오렌지, 크래커를 먹으며 바비큐 파티를 기다리는데, Yul의 눈꺼풀이 스르륵 내려온다. 나는 여러 번 Yul을 흔들어 깨우기를 시도했는데, 쏟아지는 아이의 잠을 쫓을 방법은 없다. 결국 아쌈에게 담요를 부탁해 Yul에게 덮어주고 비박하기로 했던 결정도 철회했다.
“자다가 눈뜨면 머리 위에 별이 쏟아지는 걸 보게 될 거야!”
“와!!! 나 그럼 밖에서 잘래.”
이렇게 들떠서 한 결정인데, 추위에 장사 없었다. 괜히 감기 걸리면 남은 여정에 큰 고생이 따르게 될까 두렵기도 했다. 깊이 잠든 Yul을 텐트 안에 눕히고 저녁 식사에 합류했다.
치킨 바비큐를 기다리는 동안 주거비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 이 몽환적인 장소와 시간에 우리는 결국 현실에 대한 고민을 풀어놓는다.
“우린 방 하나 있는 집인데, 집세가 한 달에 2,000불 조금 넘어. 캘리포니아에서는 렌트비 인상 상한선이 있어서 한 번에 많이 못 올리거든. 그래서 우리 집 월세는 그렇게 높지 않은 편이야. 싱가포르도 월세 높기로 유명하던데...”
“싱가포르는 방 하나면 3,000불 정도 했는데 최근 더 오르긴 했어.”
“우린 이 집에서 오래 살 생각이야. 법 때문에 우리가 나가겠다고 하지 않으면 임대인이 우릴 내보낼 수는 없거든. 고양이들도 이 동네에 익숙하고.”
“몇 년이나 살았어?”
“지금 3, 4년 됐나? 그런데 다시 새로운 집 구할 엄두가 안 나. 집 보러 다니고, 서류 준비하고 리스트에 넣고, 임대인이 골라주기를 바라고, 그 과정도 만만치 않아.”
힐다는 말끝에 ‘한국은 어때?’라는 듯이 나를 본다.
“한국은 조금 독특한 제도가 있어. 전세(JeonSe)라는 건데, 보증금만 내고 월세는 내지 않고 사는 거야.”
“월세 안 내고 그냥 산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공짜로 살아? 국가가 제공하는 공공주택 같은 거야?”
“아니, 그런데 보증금이 집 가격의 50에서 80퍼센트 정도야.”
“뭐라고? 그럼 집을 사지 왜 남의 집에 살아?"
“전세가 보통은 집 사기 전 단계이긴 해. 그렇게 살다가 돈 모으고, 대출도 받고, 보증금까지 더해서 집을 사서 나가거든.”
“그럼 도대체 집주인은 왜 그런 봉사를 해? 혜택이 많아?”
“은행에 보증금 예치해 이자 수익도 받고, 그동안 올라가는 집값만큼 투자 수익도 내려고 하는 거지. 집 살 돈이 충분하지 않은데, 부동산에 투자하고 싶은 사람들이 전세 보증금을 레버리지로 해서 집을 사기도 하고.”
“뭐? 이해가 안 되지만... 월세 안 낼 수 있다는 거는 정말 환상적이다. 공짜로 집에 살 수 있다니.”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전세 제도를 얘기하면 항상 세입자도 임대인도 이해할 수 없는 구조라는 반응이 따라온다. 결국 힐다와 댄, 나이젤은 이 제도를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때마침 아쌈이 치킨을 들고 나와 모닥불 앞에 앉아 굽기 시작한다. 댄과 힐다는 너무 춥다며 모닥불 앞으로 갔다. 나이젤은 한국 교육에 대해서도 들은 게 많은 듯 보였다.
“내 친구가 한국에서 영어 선생님 했었는데, 한국은 공부 엄청나게 시킨다고 들었어.”
나도 나름 상하이 거주하던 시절 싱가포르 교육열에 대해 들은 풍월이 있었다. 그곳에서 아이 학교 보내는 한국 엄마들은 주로 미국, 싱가포르, 영국 학교를 두고 고민한다. 싱가포르 학교는 성적순으로 줄 세우기가 심해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지만, 학비가 미국이나 영국 국제학교 대비 저렴한 이점이 있다고 들은 얘기를 깊은 기억 속에서 꺼냈다.
“내가 듣기로는 싱가포르 학교도 공부 어마어마하게 시킨다던데?”
“아니야, 한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한국은 저녁 11시까지 공부한다며!”
'저녁 11시면 양호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 보니, 한국 아이들이 더 고된 학창 시절을 보내는 것 같다.
“아…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한데, 그렇지.”
“그럼, Yul도 그렇게 공부해?”
“아니, 아직 어리고 클 때라서 그렇게 시키지는 않아.”
그 고된 교육의 결과가 ‘나'로 대표되어 기억될 텐데, 그건 피하고 싶었다. 교육 이야기는 더 박식하고 영어를 고급스럽게 잘 구사하는 한국 사람을 통해 들었으면 한다. 그래서 화제를 교육에서 회사로 급하게 돌렸다. 다행히 내가 다니는 회사 CEO가 싱가포르 사람이고, 나이젤은 그 CEO가 미국 국회 청문회에 나왔던 것도 봤던 터라 자연스럽게 한국 교육은 대화 주제에서 밀려났다. 2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나이젤은 폭넓은 관심사와 다양한 경험으로 모든 사람과 대화를 오래 이어가는 재주가 있다. 그렇게 부동산으로 시작해 교육, 회사 CEO 청문회, 홍콩과 싱가포르의 경제, 오로라 여행으로 이어지던 대화가 치킨 바비큐가 오고서야 마무리됐다. 나는 아쌈에게 Yul의 치킨과 밥은 잘 싸 뒀다가 다음 날 아침 Yul에게 줄 수 있는지 물었고, 아쌈은 아침 여섯 시에 다시 데워서 주겠다고 했다. 이번 여행은 확실히 식도락과는 거리가 멀었다. 우선 배를 채우기 위해 먹었고, 치킨 바비큐는 평범한 치킨 맛이었지만 여행에 필요한 열량을 채워줄 식사로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우리 중 야외 취침을 택한 건 나이젤뿐이다. 여섯 시부터 잠들기 시작한 Yul이 새벽 네 시쯤 부스럭댄다. 더 자라며 토닥이는데, 나이젤이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여기 사막여우가 있어. 사막여우가 왔어.”
나와 Yul은 졸음이 다 달아나지 않은 상태에서도 이 기회를 놓치지 싫어 꾸역꾸역 텐트 밖으로 나갔다. 나이젤이 랜턴을 비춘 언덕 중턱에는 얼음이 된 여우가 우리를 경계하듯이 쳐다본다. Yul은 사막여우가 먹이를 찾아온다는 얘기를 기억했는지, 테이블 위에 남은 바나나를 갖고 와서 여우에게 내민다. 사람이 다가서니 여우는 이내 줄행랑이다. 반바지 입고도 비박을 선택한 나이젤 덕에 사막여우를 만났는데, 금세 쫓아낸 것이 너무 미안했다. 그런데 다행히 사막여우는 얼마 안 있어 우리 야영지에 다시 나타났다. 나는 Yul에게 ‘쉿’이라며 주의를 줬고, 우리는 숨을 죽이고 허리를 숙여 사막여우 근처로 갔다. 고개를 까닥이며 우리를 보는 여우가 너무 앙증맞다. 휴대폰 카메라로는 아무리 찍어도 검은 바탕에 흐리멍덩한 형체만 겨우 보인다. 나는 사진 찍기를 포기하고 눈과 마음에 가득 담기로 했다. 사막여우는 그렇게 우리 쪽에 오고 가기를 서너 번 반복하고는 사라졌다. 그사이 우리는 잠이 완전히 깼고, 해가 뜨려고 동쪽 끝부터 보랏빛 하늘이 열리기 시작했다. 나이젤은 고프로 하나를 들고 언덕 꼭대기로 올라갔다. 힐다와 댄도 금세 뒤 따른다. 나는 Yul과 언덕 중간에 걸터앉아 일출을 보려고 하는데, Yul이 꼭대기에 가겠다고 한다. 꽤 가파르고 험한 길이라 말리려고 해도 Yul은 고집을 부리며 올라간다. 친절한 나이젤이 중간까지 내려와 Yul의 손을 잡고 도와준다. 내친김에 나도 발가락에 힘을 주고 오므린 뒤 플릿플롭에 의지해 언덕을 올라갔다. 사방이 탁 트인 그곳에서 보는 일출이 장관이다. 겁이 많은 Yul이었는데, 하루 만에 많이 큰 것 같다. 세수도 양치질도 하지 못 한 우리 다섯은 밝게 웃으며 함께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친정엄마가 그 사진을 보고는 ‘이집트 난민 다섯이네!’라고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그 난민컷은 멀끔하게 꾸미고 건진 인생샷보다 더 오래 소중하게 기억될 것 같다.
Yul은 어제 못 먹은 치킨과 밥을 아침으로 먹었다. 딱딱하게 굳은 치킨과 날림미로 만든 밥을 허겁지겁 비우더니 그래도 배가 고프다며 아쌈이 아침으로 내온 크루아상이랑, 치즈, 바나나도 먹는다. ‘내 새끼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는 말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아쌈, 어젯밤 파티는 잘했어?”
“응. 열한 시쯤에 돌아왔어.”
나는 여덟 시쯤 자러 들어가서 몰랐는데, 아쌈은 주변 야영지의 베두인 드라이버들과 모여 파티하고 온 모양이다. 네 명에서 다섯 명의 관광객은 서로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멀면서도 걸어서 15분 정도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흩어져 야영한다. 각 야영지를 책임지는 베두인들이 한데 모여 파티를 한 것이다. 아쌈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니 다행이다.
짐을 꾸리고 야영지를 떠나야 할 시간이 됐다. 이날은 나와 Yul이 힐다와 댄에게 앞자리를 양보하고 끝에 앉았다. 그런데, 차에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아쌈은 몇 번을 시도하더니, 다른 야영지의 동료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차 한 대가 오고 우리 차에 밧줄을 연결하더니 우리에게 차를 밀어달라고 한다. 모두가 차 뒤를 있는 힘껏 밀어 결국 차는 시동이 걸렸고 아쌈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차를 운전해 가더니 오 분쯤 뒤에 돌아왔다. 그 오 분 사이 '이러다가 이 사막에 하루 정도는 더 머물게 돼도 좋을 텐데’라는 생각도 해본다. 긴장이 풀리고 지쳤는지 차에서 내린 아쌈은 바위 위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운다. 안 그래도 쓸쓸한 인상인데, 아쌈의 뒷모습이 더 처량해 보인다. 차에서 힐다가 내 휴대폰 케이스를 가리키며 어떤 의미인지 묻는다. 미국 TV 시리즈 ‘더 오피스’의 캐릭터와 장면들을 꼴라주한 디자인의 케이스티파이 케이스다. 힐다는 본인 케이스와 비슷해 물어봤다고 한다. 그녀는 투명한 휴대폰 케이스 뒷면에 여러 국가의 우표를 전시해 놓았다. 이집트 오기 전 한 달간 아프리카 여행을 했는데, 거기서 모은 우표라고. 인생이 담긴 케이스라니! 멋진 힐다의 케이스를 사진으로 담고 나도 힐다처럼 내 히스토리로 꾸민 케이스를 만들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요즘은 우표 구하는 게 쉽지 않다. 남은 일정 중 시간이 될 때마다 우체국을 찾았는데 우표를 파는 곳은 없었다. 결국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카이로 공항 서점에서 기념우표를 겨우 살 수 있었다.
“힐다, 아프리카 여행에서 제일 좋았던 곳은 어디야?”
“음… 자연경관은 우간다가 제일 좋았어. 정말 환상적인 풍경이었어. 그리고 여행하기에는 르완다가 좋았어.”
“르완다? 정말?”
상상하지 못했던 답에 의아해서 반문했다.
“응. 르완다 거리가 정말 깨끗해. 치안도 잘 돼 있고. 국가적으로 재건 사업을 한다고 들었어. 그래서 거리에 쓰레기가 하나도 없고, 매우 안전해.”
탄자니아, 케냐, 남아프리카 공화국 등 알려진 관광지도 많은데 우간다와 르완다를 꼽았다는 게 신기했다. 믿기지 않아 검색엔진에 들어가 ‘르완다’를 찾아보니 정말 여자 혼자 여행하기 가장 안전한 나라 Best 3중 하나로 소개돼 있다. '아프리카의 싱가포르'라는 별명까지 있을 정도라고. 그래서 첫 여행이 끝나기도 전에 마음속으로 다음 여행지를 정했다. Yul은 그리스에 가고 싶다고 했는데, 과연 누가 이기게 될까?
아쌈이 차를 멈춘 곳은 모래 낭떠러지다. 샌드보딩하는 곳이라는데, 생각보다 가파르다. Yul은 타지 않겠다고 했고, 힐다와 댄이 먼저 보드를 타고 내려갔다. 힐다와 댄의 안정적인 착지를 보며 쉽게 생각했는데, 내가 모두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게 될 줄은 몰랐다. 중간쯤부터 가속이 붙으며 엄청난 속도감이 느껴지는데 ‘엄마 아아아~ ‘ 라는 비명과 함께 보드와 분리된 나는 한 바퀴 굴러 모래 속에 파묻혔다.
“하하하, 나이스!”
마지막 힐다의 목소리와 함께 그녀의 휴대폰에 내 흑역사가 기록됐다. 서로 찍은 사진과 영상을 호텔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에어드롭으로 교환했다. 그리고 내 샌드보딩 영상은 한국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보게 됐다. ‘이집트 잘 다녀왔니?’라는 물음에, Yul은 피라미드와 신전에서 건진 인생샷들은 제쳐두고 깔깔 웃으며 이 영상을 보여준다. 다행히 나이젤의 성능 좋은 고프로 덕에 우리는 선명한 사막여우 사진도 한 장 갖게 돼, Yul이 플레이한 샌드보딩 영상 바로 뒤에 나는 사막여우 사진을 들이민다.
칠흙같은 지난 밤에 어울릴 것 같은 북극성과 이상 같은 철학적인 주제보다는, 집값과 교육, 여행팁 등 지극히 세속적인 문제로 사막 여행자 넷은 서로에게 마음을 열었다. 그 덕에 댄과 힐다에게 새로운 여행지를 탐색하고, 자유여행객의 멋을 배울 수 있었다. 또, 나이젤이 있어 Yul이 용기를 내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나는 내가 본 사막여우를 사진으로 간직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아쌈은 사막에서의 모든 여정에 조용히 우리의 아빠이자 엄마 역할을 해줬다. 사막에서 북극성을 보고 느낀 모든 것도 소중하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를 꼽으라면 현실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멋진 인연을 만나 다양한 세상을 보고 배우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