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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경아 Feb 11. 2024

08. 축구공과 탱탱볼

@ Black & White Desert

우리 차 드라이버는 베두인 아쌈이다. 앞으로 1박 2일 우리의 운명을 맡길 사람인데, 사막 햇볕에 그을려서인지 주름 많은 검은 피부에 과묵해 보이는 인상이다. 

차 앞 보조석에는 나이젤이, 그 뒷자리에는 나와 Yul, 끝에는 힐다와 댄이 앉았다. 

동양계 다섯 명과 과묵해 보이는 베두인 한 명이 탄 차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그런데 차만 타면 1분마다 ‘언제 도착해’를 물어보는 Yul이 이집트라고 달라질 리는 없었다.

“엄마, 언제 도착해?”

이 질문을 시작으로 나는 Yul 전용 통역기가 된다.

“아쌈, 다음 행선지까지는 얼마나 걸려?”

“지금부터 30분 정도 가면 흑사막에 도착해”

질문을 하고 나니, 아랍어로 ‘고맙다’는 정도의 인사는 하고 싶어진다.

“그런데 아랍어로 ‘헬로우’는 뭐야?”

“살람 알리쿰”

노트에 받아 적고, 또 물어본다.

“그럼 ‘바이바이’는?”

“마쌀람”

“땡큐는?”

“슈크란”

Yul이 진지하게 내가 적은 것들을 본다.

“Yul, 아저씨한테 고맙다고 해봐. 여러 가지 가르쳐 주셨잖아.”

“마쌀람”

아이고, 혼자 어디 가려고 ‘바이바이’를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한다.

“그게 아니라, ‘슈크란’!”

“슈크란….”

차 안에 웃음소리가 번진다.


“흑사막 지역은 1,200만 년 전에 화산지대였어. 그래서 토질이 검은색이야.”

“와~!”

어른들의 감탄사가 나오는데, Yul은 불안한 듯 질문한다.

“그럼, 지금도 화산 폭발해요?”

“지금은 노 볼케이노.”

아쌈의 대답을 듣고 안심한 Yul이 ‘1,200만 년 전!!!! 밀리언, 빌리언, 질리언!!!’하며 뒤늦게 감탄한다.

“그럼, 그때 공룡 있었어요?”

아이의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에 모두 머뭇거리며 대답을 못 한다. 인터넷 신호가 약한 사막이라 정보를 찾을 방법도 없다.

“아마도?”

힐다가 끝을 흐리며 말한다. 나중에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공룡은 2억 4천 만 년 전부터 6,500만 년 전까지 살았다고 한다. 

거기 있던 다섯 명의 어른은 아무도 공룡이 살았던 기간을 알고 있지 않았고. 누구도 ‘모른다’라고 당당하게 답하지 않았다. 

골문 만 찾아가는 어른들의 시선이 축구공 같다면, 여기저기로 퉁퉁 튀는 아이의 호기심은 탱탱볼 같았다. 

탱탱볼에 세게 얻어맞은 나는 ‘공룡이 그때 있었을까? 혹시 그 화산폭발로 공룡이 사라진 걸까? 그 정도 옛날이었으면 있었겠지’라는 추측으로 검은 땅을 밟았다. 

무지에 당당하지 않으면 더 바보가 될 수밖에 없다.


고프로를 들고 차창 밖을 촬영하던 나이젤은 역시 가장 먼저 가파른 검은 언덕으로 뛰어 올라갔다. 높은 곳에서 파노라마로 펼쳐진 블랙 사막을 촬영할 심산인 듯하다. 그 뒤를 따라 댄과 힐다가 오른다. 그들의 앞뒤가 막힌 샌들이 부러워지는 순간이다. 

플립플롭을 신고 간 나는 가파른 곳을 오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Yul은 아직은 조심스러운 듯 언덕 중간쯤에 걸터앉아 검은 돌을 들었다 놨다 한다. 1,200만 년이라는 세월의 흔적이 여덟 살 아이의 손위에 있는 것을 보니 나이가 부여한 권위가 우스워진다. 1,200만 년 된 돌도 네 손아귀에서 뒹구는데, 나는 왜 Yul을 내 기준에 맞춰 빚어가려고 했을까? Yul은 커서도 탱탱볼이 되어 유연한 시선으로 세상을 탐험했으면 좋겠다.


다시 차를 타고 15분 정도 걸려 도착한 곳은 사막의 오아시스 온천이다. 그런데 찾는 사람이 없는지 온천은 물비린내가 진동하는 황색 고인 물이었다. 그곳에서 페퍼민트 차 한 잔씩 먹고 다시 차로 40분을 달려 크리스털 마운틴에 도착했다.

“여기 이것들이 다 크리스털 원석이야. 화산 열로 모래들이 석영으로 변한 거야.”

아쌈의 말에 Yul은 신이 났다.
 “엄마, 엄마. 이거 다 보석이야? 챙겨. 오오..여기 큰 것도 있다. 이것도. 이거 팔아서 부자 돼야지!”

역시나 어른들은 꼭대기를 목표지점으로 잡고 언덕을 열심히 오르는데, Yul은 석영 채집에 정신이 없다. 

마인크래프트 세상으로 들어온 기분이라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더니, 굴을 발견했다.

“아아! 아아악, 악, 악!!”

Yul이 소리를 지르며 굴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신기해하길래, 거기서 말하면 더 잘 기억할까 싶어 일부러 물어봤다.

“Yul, 엄마 까먹었다. 아랍어로 ‘헬로우’가 뭐라고 했지?”

“어쩔티비, 비, 비, 비…!”

아이고, 탱탱볼이 제발 안 갔으면 하는 그 방향으로 왜 그렇게 잘 퉁겨지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 탱탱볼 덕에 어른들이 목표로 하는 포토 스팟에서 보는 세상이 아닌, 다른 시각으로 여행지를 마주하게 된다.


아쌈은 다음 행선지가 ‘아크바트’라고 했다. 이동하는 동안 그 이름이 잘 외워지지 않아 다섯 번은 물어본 것 같다. 그러자 힐다가 도와준다.

“아크로바트에서 ‘로’를 뺀다고 생각해 봐.”

“어머! 그거 효과 있다. 이제는 안 잊을 것 같아.”

아크바트는 모래사막 양옆으로 단층이 새겨진 언덕이 있다. 협곡 같은 지형이다. 

역시나 그곳에 모인 여행객들은 협곡 끝에 걸터앉아 인증샷을 남기려 열심히 언덕을 오른다. 

나와 Yul도 올라가서 사진 한 장 남기고 내려왔다. 경치를 조용히 감상하기에 언덕 위는 좁고 사람이 북적여, 우리는 빨리 빠져 주기로 했다. 

어린아이와 슬리퍼 신고 내려오는 엄마가 위태로워 보였는지,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중국 관광객이 가파른 구간에서 손을 내밀어 Yul을 잡아준다. 어린아이와 여행하다 보면 이렇게 ‘세상이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을 종종 느끼게 하는 순간이 있어 좋다.


Yul은 아크바트에서 남은 십여 분을 아무도 발길을 주지 않는 모래사막에 앉아 땅을 파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이렇게 모래만 있으면 상상력을 동원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는데, 더 이상 한국에서 모래 놀이터를 찾아보기 힘든 게 아쉽다. 계속 땅 파고 놀겠다는 Yul을 겨우 끌고 차에 탔다.

이제 이날 우리의 숙소가 돼 줄 백사막으로 출발한다. Yul이 사막에서 자는 게 불안했는지 아쌈에게 질문을 시작한다.

“거기 전갈 있어요?”

“전갈 없어.”

“그럼 뱀 있어요?”

“허허, 뱀 없어.”

“휴…우”

아쌈의 대답에 나도 내심 안도한다.  

“사막여우는 자주 볼 수 있어?”

나이젤이 아쌈에게 물었다.

“사막여우, 운 좋으면 볼 수 있는데, 매번 나오지는 않아. 아마 사막에서 먹이 찾다가 야영지로 오는 것 같아. 서너 번에 한 번 정도 봤나?”

“그럼 매번 같은 여우가 오는 거야?”

“하하, 그건 몰라. 다 똑같이 생겨서.”

불안감과 호기심 어린 질문들이 오가니 백사막에 도착했다. 

아쌈 말로는 6,500만 년 전까지 바다였던 곳이라고. 그렇다고 흰색이 소금 성분은 아니고, 석회암이라고 한다. 노을이 지는 백사막에 있으니,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 서 있는 것 같다. 

이곳은 사방이 포토 스팟이라 한 곳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지는 않았다. Yul과 나는 한참을 걸어 희고 큰 돌멩이가 있는 곳에 자리 잡았다. Yul은 그 돌멩이를 조각한다며 다시 진지해진다. 석회질이라 잘 부서지는지 Yul은 돌끼리 갈고, 부딪히기를 반복하다가 갑자기 오줌이 마렵다고 일어선다.

“뭐? 어휴…저기 저 하얀 바위 뒤에서 누자.”

“뒤에 사람 있으면?”

“아니야, 사람들 저기까지는 안 왔어.”

나는 바위 아래 작은 구덩이를 파고 망을 보기 시작했다.

“Yul, 너 오늘 세상에서 제일 비싸고 넓은 화장실에서 쉬 하는 거다.”

“흐흐흐”

어른들끼리 여행이었다면 경험하지 못했을 다양한 일을 선사하는 탱탱볼 Yul이다. 


차로 돌아와서는 Yul이 아쌈과 사진 한 장 찍겠다고 한다. Yul은 질문 공세에 친절히 대답해 준 아쌈이 좋았던 것 같다. 차량이 십여 대쯤 있었는데 사막 투어 드라이버와 사진을 찍겠다는 어른은 보이지 않았다. 모두 경치나 자신의 인생샷을 건지기에 바쁘다. 그 와중에 아쌈에게 사진을 찍자는 Yul이 아쌈도 좋았던 듯하다. 사진 속 아쌈은 Yul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환한 미소를 짓고 있다.


어른들이 먼 곳 경치를 담기 위해 노력할 때, 땅과 돌에 집중하던 Yul은 야영지에서 한 건 해냈다. 돌산에 박혀 있는 조개를 발견한 것이다.

“엄마, 엄마! 여기 조개.”

“어머머, 진짜네. 조개야! 바다 맞았네, 맞았어.”

“아쌈 아저씨한테 말해야지. 엄마는 나이젤 형한테 말해줘. 꼭 내가 발견했다고 말해.”

힐다와 댄은 Yul이‘6,500년 전 조개’를 발견했다며, 엄지를 치켜세우고, 아쌈은 앞으로 오는 그룹에게 보여주겠다고 한다. 마지막에 언덕에서 내려온 나이젤도 조개 화석을 사진에 담는다. 

영웅이 된 것처럼 의기양양한 Yul 얼굴에 생기가 돈다. 

탱탱볼이 이리저리 튀다가 축구공이 보지 못하는 구역에서 잭팟을 터트렸다. 

점점 Yul과의 여행 속도에 적응이 되고 어떤 새로운 시각으로 나를 놀라게 할지 기대가 된다.


좌) 백사막에서 조각하는 Yul, 중간) 세상에서 제일 비싼 화장실, 우) Yul이 찾은 조개 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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