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ahariya Oasis
전날 저녁에는 야속하기만 하던 ‘시차 적응’ 문제가 이날 아침은 반갑다. Yul은 네 시 반부터 꿈틀대더니 다섯 시에는 이미 눈을 말똥말똥 뜨고 노래를 흥얼거린다.
“피라미드 레이저쇼는?”
“그거 너 어제 잠들어서 엄마 혼자 라면 먹으면서 봤어.”
“에? 말도 안 돼! 지금 몇 신데”
“새벽 네 시 반. 그러니까 오늘은 저녁 바비큐 먹으려면 차에서 많이 자둬.”
1박 2일 예약한 사막 캠핑 투어 출발 날이다.
여섯 시 반에는 체크아웃하고 투어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데, 사막에서는 세수도 어렵다고 하니 샤워하고 짐을 챙기기로 한다. Yul과 차례로 여유롭게 샤워하고, 사막에서 사용할 짐을 Yul이 가져온 포켓몬 배낭에 넣었다.
아침, 저녁은 쌀쌀하다고 해 내복과 외투를 챙겼더니 이미 가방은 빵빵하다.
엄마와 함께 여행의 무게를 나눠야 한다며, Yul 어깨에 무거운 가방을 지게 했다.
한국에서는 ‘엄마 것 보다 내게 더 커!’라며 투덜거렸을 것 같은 Yul이 아무 말 없이 따라나선다.
체크아웃하며 호텔 로비 직원에게 조식 먹을 시간이 없으니 아침 도시락을 싸 줄 수 있는지 문의했다. 십 분 후에 바나나와 음료수, 생수, 샌드위치, 디저트가 담긴 비닐백을 받았다.
“이유~(ewww) 썩은 바나나, 이거 어떻게 먹어!”
Yul의 불평에 태연하게 넘겼는데, 검게 변한 바나나를 보며 나도 적잖게 놀랐다.
차를 놓치게 될까, 호텔 정문 주변을 서성이는데 10인승 승합차 한 대가 호텔 앞에 선다.
나와 Yul이 마지막 합류 인원이다.
이렇게 이집트 여행의 백미라고 여겼던 피라미드와는 영영 작별이구나 생각하니 아쉬움이 밀려온다.
뭔가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듯한 찝찝한 기분도 든다. 차창 밖으로 피라미드를 보며 Yul과 나는 작별 인사를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두 번째 기회는 없을 거로 생각했다.
“피라미드 안녕!”
“스핑크스도 안녕.”
차는 서너 시간을 달려 사막 오아시스 마을인 시와(Siwa)에 있는 호텔까지 갈 예정이다. 그곳에서 네다섯 명이 한 그룹이 돼, 오프로드 차량을 타게 된다.
사람들은 저마다 호텔에서 받아온 아침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입맛이 까다로운 Yul이 거친 잡곡빵에 햄과 치즈만 넣은 샌드위치를 먹을까 걱정했다. 전날 저녁을 못 먹고 잠든 것이 원인이었을까? Yul은 샌드위치를 허겁지겁 먹고, ‘썩은 바나나’라고 불평하던 게 무색하게 바나나까지 순식간에 해치운다. 다행히 바나나 속은 전혀 무르지 않고 적당히 숙성돼 달고 맛있다.
Yul이 내 어깨에 기대 잠이 든다. 이때, 사막여행의 하이라이트인 저녁 바비큐 시간에 Yul이 깨어있을 것이라는 허황된 희망을 품었다.
차는 두 시간 정도를 달려 주유소에 도착했다. 차가 출발하기 전 여행사 직원 아미르(Amir)가 한 말이 생각난다.
“투어 동안 딱 세 번 화장실 갈 기회가 있어요.
첫 번째는 가는 길에 주유소, 두 번째는 점심 먹는 호텔, 마지막은 사막 들어가는 길에 있는 휴게소인데, 거기는 화장실 컨디션이 아주 안 좋으니 처음 두 군데에서 다 해결하고 가는 게 좋을 거예요. 그 뒤에는 다음날 베이스캠프인 호텔로 돌아올 때까지 화장실 없어요. 처음 두 번 기회를 놓치면, 세상에서 가장 넓고 비싼 사막 위 화장실을 써야 할 거예요.”
이 말을 들을 때 차 안 사람들처럼 Yul과 나도 키득댔는데, 첫 기회가 오니 마음이 급해진다.
“Yul! 이번이 첫 기회야. 안 마려워도 무조건 오줌 싸!”
Yul은 결의를 다진 듯 한 표정을 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가, 금세 긴장한 얼굴로 나온다.
“왜? 안 눴어?”
“안 마려워.”
“아니, 그래도 눠야지. 왜? 싫어?”
“안 마려워.”
“아주 더럽니?”
“응”
Yul 말을 듣고 나도 화장실 가기를 포기했다. 아이에게도 더 이상 강요하기 어려워, 두 번째 화장실은 꼭 가기로 하고 매점에서 간식거리를 고른다.
배를 채울만한 에너지바나 크래커, 쿠키 종류로 사기를 바랐건만, Yul은 콜라 맛 하리보 한 봉지를 집어 든다. ‘아이고, 복장 터지네!’ 속으로 중얼대며 65파운드를 계산대에 내고, 다시 차에 올랐다.
고속도로를 한 시간쯤 더 달린 승합차는 좁은 시골길을 지나 호텔 마당으로 들어간다. 짐을 내리고 시간이 남아 호텔 이곳저곳을 구경하는데, Yul이 실망한 얼굴로 묻는다.
“이게 호텔이야?”
“응, 저 옆쪽으로 객실이 있는 것 같다.”
호텔은 식당이 있는 단층의 메인 건물과 별채의 객실들로 구성돼 있다. 각 건물은 모래색 벽의 둥근 천장 모양으로, 네모 건물에 익숙한 나에게는 매우 이국적이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집트 작가, 나지브 마흐푸즈의 소설 <우리 동네 아이들> 삽화에서 본 것과 비슷하다. 소설 속 사막 한가운데 외롭게 형성된 마을이 실존한다면 여기였을 것 같다. 호텔 곳곳에 걸려있는 그림도 ‘고독’한 느낌이 강하다. 여건이 된다면 사막 투어 앞뒤로 이 호텔에 머물며 혼자만의 시간 속으로 침잠해 보고 싶다.
“엄마! 저기, 저기, 엄청난 거 발견했어! 늑대야!”
마당 한편 쌓아놓은 모래를 딛고 올라가 담 밖을 보던 Yul이 감상에 젖어있는 나를 깨운다. 놀라서 쳐다보니, 씩 웃고는 리듬을 타며 말한다.
“사실 뻥이야, 정말 미안해!”
어휴…‘고요한 사색’의 사치는 모래가 바람에 흩날리듯 이내 사라지고 만다.
바로 현실적인 문제로 눈을 돌린 나는 두 번째 기회는 절대 놓치면 안 된다는 결의로 식당에 들어갔다.
점심 메뉴는 아랍계 유목민인 베두인 가정식이다. 고기와 채소를 넣은 스튜와 커리, 밥, 이집트 전통 빵인 에이쉬 등이 나왔다. Yul과 내가 이집트에 도착해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하게 됐다.
낯선 어른들과 있을 때 편식하지 않고 잘 먹는 Yul이라, 여덟 명의 각기 다른 나라 이모, 삼촌들과 한 식탁에 앉아 먹으니, 아이에게 ‘한 숟가락만 더 먹자’며 밥상머리 씨름할 일이 없다. 게다가, Yul은 ‘밥돌이’다. 치킨을 먹을 때도 꼭 밥을 찾는 한국인. 마침 학교에서 가끔 나오는 커리와 비슷하다며, Yul이 초록색 커리에 밥을 쓱쓱 비벼 한 그릇을 다 비운다.
아이와 여행에서 가장 걱정되는 게 식사와 화장실 문제다. 한 가지를 생각보다 쉽게 해결하니 긴장이 조금은 풀린다. 그리고,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오줌 눠야 한다며 Yul을 화장실로 보냈다. 휴게소 때와는 다르게 편안한 얼굴로 나오는 Yul을 보며 나도 용기를 얻었다. 화장실을 다녀오니, 이집트 여행에 가장 무서운 게 장염이라는데, 아직 우리 둘 다 무사한 게 그렇게 감사할 수 없다.
화장실을 갈 수 있는 두 번의 기회 중 한 번은 성공했다!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오프로드 차량을 타고 본격적으로 사막에 들어갈 시간이다.
여행사 직원은 아홉 명의 사람을 겉모습을 보고 두 그룹으로 나눴다. 아시아계 다섯 명과, 코케시언 네 명.
그동안의 노하우인지, 그냥 그들 입장에서 나누기 편해서인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나와 Yul은 싱가포르 청년 나이젤과, 캘리포니아에서 온 홍콩계 미국인 커플 댄과 힐다와 한 차를 탄다.
무거운 여행 가방은 호텔 짐 보관하는 곳에 두고, 화장실에서 속도 비우고, 사막에 갈 채비만 한 채 가벼운 마음으로 흰색 도요타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