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삭
어른이라 칭하는 나이를 먹어가지만 아직 미성숙하고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더더욱 느낀다. 미성숙함을 알지만 겉으론 어른인 척해야 하는 나이이기에 각자의 힘듦을 감추고 살아간다.
나의 여린 모습들을 다 드러내면 어떤 식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낯선 사람들과의 새로운 관계는 점점 어렵다. 약간의 가면을 쓰고 사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조금은 피곤한 관계들을 이어간다. 그러다 나의 여리고 어린 나를 꺼내 놓아도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편안한 사람을 만나면 긴장되었던 나의 몸과 마음도 녹아내리고 움직이지 않았던 나의 위장도 말랑말랑해진다. 함께 좋은 것을 먹고, 예쁜 것들을 입에 담으며 편안한 말들로 실컷 웃을 수 있다.
내가 아끼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3월에 생일자가 있었다. 생일 선물을 건네는 것보다 자주 보지 못하니 약속을 잡고 얼굴을 맞보며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잘 지냈는지 누구에게나 있는 힘듦에 너무 지치지는 않았는지 서로의 한풀이를 들어준다.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그 반복되는 한풀이가 어떤 마음인지도 이해할 수 있다.
애써 그 마음에 대한 위로나 참견을 하지 않는다. 각자 살아가며 해결되지 못한 채로 안고 가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생기 없고 힘들어 보이던 지인은 맛있는 것을 먹고 조금 살아났다. 식사를 끝내고 후식을 먹기 위해 이동한 곳에 대기가 있었다.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서있다 보니 다시 생기를 잃어가는 듯했으나, 커피숍에 들어가 예쁘고 맛있는 것들을 입에 넣으니 다시 살아났다.
겉옷을 벗게 하는 햇살이 커피숍 안을 따뜻하게 채웠고, 그 공간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옆자리의 사람이 여러 번 바뀌었다. 처음에는 공간의 아름다움과 분위기가 잘 느껴졌으나,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앞사람에게만 집중이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커피숍 안의 사람들은 줄었고, 밖은 깜깜해졌다. 4시간을 앉아서 이야기를 했다. 오랜만에 시간이 순삭 되는 경험을 한 듯하다. 4시간의 1/3은 듣고 1/3은 말하고 1/3은 웃었다.
온전히 내 편일 수 있는 편안한 사람을 내 곁에 둘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 사람과 함께 있어서 어느 공간에 있던지 시간이 바람처럼 흘러가는 순간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공감의 힘보다는 내가 마주 앉아 있는 상대방이 누구인가가 중요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