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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들멘 Mar 20. 2023

할머니의 리어카

삶의 온도는 따뜻한가요?

   지난해 봄 어느 날 일자산에 갔다가 오는 길이었다. 거기서 10km 정도 걷기 운동을 했으니 다소 지쳐 있었다. 길거리를 천천히 걸으며 집까지 반쯤 왔을까. 바로 앞에서 리어카가 움직이려 하지만 가지 못하고 서 있었다. 유심히 보니 그 위에 실린 종이 상자가 길가에 세워둔 자전거 핸들에 걸려서 움직이지 못했다. 리어카를 끄는 분은 할머니였는데, 무엇에 걸려 있으리라 곤 생각도 하지 못했는지 계속 앞으로 끌려고 애만 쓰셨다.


   다가가 자전거에서 걸린 짐을 분리하니 리어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할머니가 끄는 힘이 조금 모자라는지 리어카는 잘 나가지 않았다. 살짝 밀었더니 쉽게 이동했다. 내가 뒤에서 밀고 앞에서 할머니가 끌면서 약 20m쯤 갔을까? 그때 할머니는 갑자기 리어카를 세웠다. 그리고는 의아해하는 나를 보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이는 84세, 자식은 아들 하나 딸 하나로 남매가 있다고 하셨다. 나로서는 길을 가다 만난 돌발 상황이라 난감했으나 ‘이 할머니가 누군가에 하소연하고 싶은 게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그녀는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쏟아놓았다. 

“남편은 요양원에서 10년 이상 계시다가 돌아가셨어요. 그곳에 계시는 동안 내가 병수발을 다 했고……. 요양보호사 자격증도 취득해서 경비지원도 받았어요”

“그런데 자식으로부터는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지요. 아들이 대학 다닐 때 장학금을 받아 일부를 갖다 주었는데, 그게 아들로부터 받은 유일한 돈이었지요”라고 이야기하면 한숨을 쉬었다.

이후에는 아들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더구나 할아버지가 편찮으실 때 며느리에게 더 지독한 말을 들었다.

“아버님이 돈을 벌 수 없으니 어머니가 식당에 가서 허드렛일이라도 하세요.”

그때 며느리가 했던 말을 생각하면 하도 기가 막혀 지금도 부들부들 치가 떨린다고 했다.

물론 딸로부터도 도움을 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딸은 결혼했다가 지금은 이혼해 혼자 살고 있어요”

“그러면 딸과 같이 사시지요”

중간에 말을 끊지 않으면 가지 않고 이야기를 끝없이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만 가셔야죠”

 "도와줘서 고마워요”

대화를 끝내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했다.     


   할머니와 헤어져 집으로 오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이러한 문제는 그 할머니 한 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이 든 많은 사람이 겪거나 앞으로 겪어야 할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문화일보에 보도된 조사 결과와도 비슷한 맥락이기도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19년 한국복지패널 기초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다. 동 보고서에 의하면 '나이 든 부모를 자녀가 모셔야 한다'라는 의견에 반대하는 국민이 41%나 되었다. 반면, 찬성한다는 사람은 23%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모른다거나 응답을 하지 않았다.


   어느 시대나 부모는 자식을 위해 헌신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그리고 스스로는 경제적으로 곤경에 처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육체적으로도 노쇠해지는 것이고.

과거에는 나이가 들면 자식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요즘 세태는 크게 변했다. 많은 사람이 '나이 든 부모를 자녀가 모셔야 한다'라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맞다 틀리다'의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젊은 사람들 뿐 아니라 나이 든 사람도 상당수는 자식에 의지해 사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여겨진다. 많은 나이에도 혼자 사시면서 힘들게 일할 수밖에 없는 할머니를 우연히 만나 짧은 시간이지만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경제적인 준비를 해놓지 못하면 가족 관계도 온전히 지켜지지 못한다는 걸 느꼈다. 따라서 나이가 들기 전부터 자식보다도 자신의 노후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로 일상생활이 더 어려워진 요즘은 날씨도 매서워졌다. 길거리에서는 여전히 종이 상자가 잔뜩 실려있는 리어카를 자주 보게 된다. 그때마다 그 할머니의 모습이 떠올라 여전히 답답하다. 이제 자식은 더 이상 부모 노후의 안전판이 아니다. 스스로 지킬 수 있는 경제 파이프라인을 미리 만들어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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