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나한테도 따뜻한 것이 있기는 하구나

그래도 포기는 안 할게. 조금만 기다려 주라.

by 최서연



추석 때 포항에 가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 사는 것도 보고, 그러면 좀 나을 거라고 아주머니가 말씀해주셨다. 아주머니는 참 따뜻한 분이다. 아무리 친구에게라도, 가까운 사람에게라도 말할 수 없는 우리 집의 상황과 사정이 있는데,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함께했기 때문에 이해해주시는 분이었다. 설명하는 것조차도 힘들고 지칠 때가 있으니까. 아주머니는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같이 울어주실 때도 있었고, 내가 기운 없이 방구석에만 처박혀 있을 때 유일하게 집에서 사람 소리를 내시며 내 끼니를 챙겨주시거나 오는 길에 간식을 챙겨 오시고는 했다. 예전에는 매일 함께 있었지만 이제는 일주일에 두어 번 정도만 들르시기 때문에 크게 돈벌이가 되지 않을 텐데도, 아주머니는 그냥 우리 보러 온다고 하면서 가끔은 반찬이나 맛있는 음식을 사주시기도 했다.



아주머니의 말씀을 듣고 추석 때 집을 떠나서 그냥 새로운 곳에 있으면 기분이 조금 전환되지 않을까 싶어서 가려고 마음을 먹었다가, 이런 꼴로 가면 누가 좋아할까, 밥벌이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다 큰 어른을. 괜히 가서 잔소리 듣고, 무시당하고 더 기분만 안 좋아져서 돌아올지도 몰라. 하고 움추러들었다. 가려고 짐을 다 꾸렸다가 데리러 온다는 오빠한테 안 가겠다고 했다. 그냥 안 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괜히 욕만 먹을 것 같다고. 그렇게 말하면서도 데려가 주기를 바랐다. 혼자 집에서, 방 안에서, 방구석에서 쭈그려 앉아 하루 종일 있는 거, 그거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서 그러고 있었지만 너무너무 힘들었으니까. 누군가 나를 구해주길 바랬으니까. 근데 그럴 일 없는 거 아니까 차라리 다 모르는 척했으면 좋겠다고 문을 꼭 닫고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게 뭔지 나도 모르면서 남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심보라니. 다행히 오빠는 억지로 가자고 하기보다는 내가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되지만 가면 좋을 것 같다면서 내 마음을 안다는 듯이 잘 달래주었다. 오빠는 내 마음을 아는 걸까? 나는 아주아주 우울한 사람만이 나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더 외로웠다. 내가 아무리 설명하고 상대방이 아무리 이해한 척해도 사실은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을 것이고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가끔이지만 오빠는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물어보지 않았다. 나는 오빠가 나처럼 우울하기를 정말, 정말로 바라지 않으니까. 절대 평생 이런 거 알 일 전혀 없이 모르고 살았으면 좋겠으니까. 그러면서도 어떨 때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툭툭 내뱉어서 상처를 줄 때도 있지만.


어쨌든 나는 오빠 말에 조금 약하다. 나는 맏이였고, 동생들은 모르는 나만의 응어리가 무거웠었는데, 오빠가 우리 집에 같이 사는 동안은 내가 맏이가 아닌 것 같았다. 처음으로 나 대신 막아줄 사람이 생긴 것 같아서, 가끔은 엄마 아빠한테서 동생들을 지켜야 할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도 내가 아니라 오빠가 막아줄 수 있었으니까. 같이 얘기하고, 나보다 더 잘 내가 겪은 것을 이해해주고, 같이 놀 수 있는 오빠가 생긴 것 같아서 굉장히 기뻐했다. 오빠는 내가 남자 친구 때문에 힘들어할 때도 데려오라고 혼내주겠다고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얘기를 하면서 나를 달래주었고, 내가 가족들 때문에 힘들어할 때에도 내가 착하고 좋은 애라고 얘기해 주 었다. 내가 로펌을 그만두고 오는 길에 울면서 전화를 했을 때도 그런데 그만둬도 괜찮다고, 이직하면 자기한테 또 취직 선물을 받으면 되지 않냐고 했다.


나는 솔직히 힘들 때마다 오빠한테 징징대고 싶었다. 그렇지만 오빠도 오빠의 인생이 있고, 친구들에게도 매번 우울하다고 징징대다 보면 나를 싫어하는 것처럼 오빠가 나를 영원히 싫어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오빠가 부담스럽도록 내가 의지하려고 했을 때도 있었지 않았을까 싶은데 오빠는 꽤 현명하게 대처를 했던 것 같다. 누군가가 타인의 인생을 다 들어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소중한 사람들이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내가 깨달을 수 있도록.


아무튼 오빠의 말에 나는, 나의 우울하고 볼품없는 모습이 부끄러웠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조금 용기를 내서 차에 탔다. 오빠는 평소처럼 자신의 일상을 재미있게 풀어놓아서 나는 정말 오랜만에 소리 내서 웃을 수 있었다.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단순한 성격이라서 그런 기분이 자주 들지는 않지만 한 번씩 찾아오면 나도 힘든데, 나 같은 성격도 힘든데, 너는 원래가 멘탈이 쿠크다스라서 (이거보다 웃긴 단어였던 것 같은데? 그래서 오랜만에 소리를 내서 웃었다.) 그런 기분에 한번 빠져서 나오지 못하고 계속 그런 상태일 거라고 생각하면, 아마 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오빠의 조심스러운 말에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너무 창피했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은데, 나도 우울하고 싶지 않은데, 오빠가 그런 얘길 한다고 질질 눈물이나 흘리는 쿠크다스 같은 인간이고 싶지 않은데. 목이 메고 눈물이 계속 나서 말을 하기는 힘들었지만 겨우, 나도 우울하고 싶지 않은데 벗어날 수가 없다는 얘기를 힘겹게 했고, 오빠는 자기가 살아가는 방식을 얘기해주었다.


오빠도 그런 모습의 나를 보고 참 답이 없었을 텐데. 솔직히 나 같은 사람, 나도 보고 있기만 해도 힘든데, 나 같으면 그냥 안 보고 말지 않았을까 싶은데. 그래도 어떻게든 오빠의 말이 나한테 닿아서 내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랐겠지. 죽어도 그만인 그냥 수많은 인간들 중에 한 명일뿐인 나에게, 사촌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같이 무거워 해준 오빠가 정말 고맙다.


나는 내가 우울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을 무렵, 처음으로 책을 냈고, 오빠가 그 책을 10 권이나 사준 것을 알고 있다. 나한테는 얼마나 거지같이 썼는지 보겠다고 해놓고, 10 권이나 샀다고 생색도 내지 않고, 한 번에 10 권이나 주문해 줄 사람은 오빠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게 오빠 맞느냐고 확인하지도, 고맙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왜 말하지 않았을까. 세상에 그런 사람은 오빠 밖에 없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갚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오빠는 얼마나 큰 사람이길래 그냥 사촌 동생일 뿐인 나를 이렇게 응원해주고, 마음을 베풀어 주는 것일까. 나는 그 정도로 큰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오빠만큼 좋은 사람이 되어서, 오빠만큼 주변을 따뜻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주변은 둘째 치고라도 오빠한테 받은 만큼이라도 갚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이제 와서는 누가 나를 미워하든, 싫어하든, 안 좋게 보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데 오빠한테 만큼은 절대 미움받고 싶지 않다. 오빠가 나를 안 좋게 보는 것은 나한테 너무 슬픈 일일 것 같다. 이제는 아무에게도, 그게 누구든지 내가 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무리를 해서라도 보답을 하고 싶은 마음도, 기대를 채워주고 싶은 마음도 없다. 하지만 오빠한테 만큼은 훌륭한 사촌동생이 되고 싶다.


“오빠, 내 책 10 권이나 주문해준 거 오빠지? 고마워.”라는 하찮은 말로 오빠의 마음을 갚기에는 너무 부족하다. 더 훌륭하고 대단한 방법으로 돌려주고 싶은데, 나는 항상 그만큼은 안 되는 것 같아 보이고, 그나마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오빠가 결혼하기 전에 성공해서 축의금을 엄청 많이 줘서 자랑할 만한 사촌동생이 되고 싶은데, 그런 동생이 될 수 있을까? 오빠만큼은 안될 거 같긴 한데, 그래도 포기는 안 할게. 조금만 기다려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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