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을 좀 들어줘도 돼, 나라도.
동생의 도움으로 동생이 일하는 필라테스 센터에서 수업을 듣기로 했다. 어떤 일도 할 수 없었고, 어떤 일에서도 버틸 수 없었고, 내가 그런 나 자신을 참아주지 못해서 괴로웠다. 하루 종일 할 것도 없고, 운동이라도 하면 좀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에 아무 생각 없이 다녔다. 하루에 한 시간 필라테스 수업. 그것 말고는 나의 23시간은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매일 밤 잠에 들 때면 ‘제발, 제발, 내일은 눈뜨지 않게 해 주세요. 제발 이대로 끝나게 해 주세요.’ 하면서 잠이 들고, 다음날 여느 때처럼 눈이 뜨면 그 하루가 재앙 같았다.
‘아직도 살아있구나. 오늘도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구나. 내 역할을 제 대로 해내지 못하면 사람들에게 짐만 될 텐데, 일 인분의 몫이라도 해내야 할 텐데, 그마저도 못해내면 차라리 짐이 되느니 없는 게 낫지 않을까.’
내 존재 자체를 참아주기가 힘들어졌다. 동생의 퇴근길에 집에 같이 오기 위해서 저녁에 수업을 들었다. 저녁 수업이 시작하기 전까지 하루 종일을 뭐 하면서 보내야 할지 몰라 그저 걷기만 했던 시간들이 가장 많이 생각난다.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를 몰라서 정처 없이 걷다가 다시 그 길을 걸어서 되돌아오기만 했던 시간들. 그러다 가끔은 생각 없이 계속 걷다가 너무 멀리까지 가버려서 수업에 깜빡 늦어버리기도 했던 그 시간들. 걷지라도 않으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던 시간들. 그냥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면 시간이 가니까 한참을 걸어가다가 그 똑같은 길을 되돌아오면서 ‘이만큼 걸어왔으니 다시 돌아가는데 이만큼은 걸리겠지. 그럼 이만큼 동안은 뭘 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했다. 그저 걸어간 만큼 걸어 돌아오기만 하면 되니까. 그래서 그저 걸었다. 조금 멀다시피까지 걷고,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학원으로 돌아와서 수업이 시작되면 50 분 동안은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지 않아도 돼서 좋았다. 그저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따라 하기만 하면 되니까.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최면에 걸렸다 생각하고 따라 하기만 하면 되니까. 그래서 수업이 시작되고 스트레칭을 시작하는 그 순간이 내 하루 종일 중에 유일하게 반가운 시간이었다.
‘다행이다. 앞으로 50 분은 그냥 선생님만 보고 있어도 되겠구나.’
걷고 걷고 또 걸었던 그 길을 생각하면,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아직도 먹먹한 기분이 든다. 내가 그 시간을 다시 이겨낼 수 있을까? 내가 잘못되면 잘못되는 대로 가족들한테 피해를 끼치는 거니까, 그냥 뿅 하고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빌고, 빌고, 또 빌었다. 그때 즈음부터 핸드폰으로 오는 연락은 아무것도 받지 않았다. 친구들과도 연락을 끊었고, 카톡도 보지 않았고, 연락이 안 된다고 걱정하는 메시지도, 전화도 받지 않았다. 혹시라도 나쁜 소식이 전해지면 그 들한테도 민폐일 테니까. 어차피 이렇게 연락 끊어버리고 각자 살길 살다 보면 다들 나를 잊어버릴 거고 그때쯤 되면 내가 뿅 없어져도 아무 문제없지 않을까 했다. 나 하나 없다고 무슨 일이 생기는 건 아니니까.
근데 가족들한테는 연락을 끊을 방법이 없었다. 어디론가 행방불명되어버릴까 계획도 했지만, 가족들이 나를 찾느라고 낭비할 시간과 에너지, 고통들을 마주하기가 싫었다. 생각보다 가족들이 나한테 무관심하고, 친하지도 않고, 애정도 없고, 잘못돼도 별 상관 안 했다면 홀가분하게 떠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때에는 그 고마운 감정마저도 짐처럼 느껴졌다. 족쇄처럼 나를 묶고 있어서 내가 이 고통스러운 삶을 마감할 수 없게 만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생각을 하니 죄책감이 들어 힘들었다.
‘어쩌면 생각보다 나를 많이 생각하는 건 아닐지도 몰라. 죽으면 그때는 슬퍼하겠지만 산사람은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다들 생각보다 잘 잊고 살아갈지도 몰라. 이렇게 일 인분의 역할도 못하고 병신처럼 구는 첫째 딸을 힘들게 지고 가느니, 죽어 없어지는 게 낫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한 때는 무조건 살자고 생각했을 때가 있었다. 이유를 따지지 말자고. 왜냐하면 내가 사랑하는 동생에게 누나가 자살했다는 그런 얼룩진 기억을 주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도움은 못될망정 그런 슬픈 기억을 주는 누나가 되고 싶지 않아서 굳게 다짐했을 때가 있었다. ‘동생 생각해서 그냥 무조건 살자.’ 그게 그때는 다행히 먹혀들었다. 그 생각으로 버티고, 이겨내고 지나올 수 있었다. 근데 이번에는 그게 안되었다.
‘쟤도 쟤 인생 있고, 내가 이 모양으로 짐이 되느니 없는 게 나을 거야, 아마.’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가족들이 나한테 주는 마음에 대한 소중함은 무뎌지고 그냥 모든 게 짐처럼 느껴졌다.
‘내 존재가 나한테도 짐인데, 남한테는 얼마나 더 큰 짐일까.’
어쨌든 할 일이 없었으니 학원은 매일 갔다. 수업이 끝나면 동생이 퇴근하길 기다렸다가 같이 오고, 동생이 회사에서 밥 먹을 시간에 맞춰서 가서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 그나마 동생의 길동무라도 되어줄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세상 어느 구석에서도 도움이 안 되는 먼지 같은 존재지만 내 동생한테 만큼은 길동무로서의 가치라도 있는 거니까.
그즈음 동생의 힘으로 우리는 독립을 했다. 나는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였지만 동생이 내가 집에서 있는 것 자체를 힘들어하니까 나도 데리고 가주었다. 언니가 돼서 동생을 책임지지는 못할망정 동생한테 책임을 지우고 있는 꼴이라니 한심했지만, 나는 집에서는 내 방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수가 없었다. 집에 누구라도 있으면 밥은 물론, 화장실이 가고 싶어도 나가지 않았고, 가족들 어느 누구도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하루 종일 방구석에만 처박혀있었다.
동생은 많은 것을 책임졌다. 보증금, 월세, 관리비, 독립하면서 필요한 생활용품들, 우리가 끼니를 채울 수 있는 식품, 돈이 드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는데 동생의 힘으로 다 마련했다. 집을 나와서 조금이나마 숨통이 트이고 나니 동생의 돈으로만 생활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우리 둘이 힘을 합쳐야 하니까. 버티지 못하겠더라도 어떻게든 참고 다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아르바이트를 구할 수 있었고, 내 몫까지 고생을 하고 있는 동생에게 보태줄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도 무조건 참고 버티자고 마음먹었다.
매일 문밖을 나설 때마다 현관문 앞에 강도가 있어서 나를 해쳤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빌면서 현관문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잘 때면 동생이 혼자가 아니라 언니랑 같이 나와서 다행이고 좋다고 말해주었다. 사실 혼자 지고 있는 짐이 힘들고 무거웠을 텐데. 그래도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웠다. 조금이나마 내 존재 이유가 있는 것 같아서. 차라리 죽어서 보험금을 남기는 게 너한테 더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을 때도 동생은 끝나고 집에 와서 언니랑 몇 마디라도 나누고 웃는 게 좋은 거지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냐고 얘기해주었다.
나는 내가 그 당시에 정말로 내가 보험금보다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보험금으로 바뀌면 동생이 하고 싶은 공부라도 마음껏 할 수 있을 테니까, 내가 존재해서 짐덩이가 되느니 진짜 그게 훨씬 값질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생의 따뜻한 말들이 내가 존재해도 괜찮다는 말로 들려서 고맙고, 감사했다. 고맙고, 감사한 줄 알아서 힘이 났으면 좋겠지만 그건 또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아침에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하얀색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넓은 지구라는 세계에서 내가 누워있는 침대 하나쯤을 표시하려면 정말, 정말, 작고, 작은, 점도 안될 텐데... 이 정도는 그냥 블랙홀에 빠져 없어져 버려도 아무 일도 없지 않을까.’
일어나서 씻고 출근 준비를 하는 것이 너무 힘들게 느껴졌다. 눈을 떠도 침대에 계속 시체처럼 누워있기만 했다. 너무 무기력하고 우울했다. 정리하고 싶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약 때문인지 뭔지도 모르겠고, 계속 누워있기만 하고, 잠만 자도 힘들고 지쳤다. 식욕도 뭐도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돈을 벌면 좀 나아질까? 그렇지도 않을 것 같은데. 눈을 뜨고 있는 모든 순간이 너무 힘들었다. 나의 잘못된 행동과 선택 때문에 좋아하던 일도, 친구도, 사랑도 다 잃어버린 느낌이었다. 동생은 돈을 벌기 위해 아침 일찍 나가고 나는 침대에 누워있다. 내가 정말 짐짝처럼 느껴지기 딱 좋은 환경이었다. 그렇다고 동생이랑 둘이 사는데 거기서 죽을 수는 없었다. 그러면 동생이 받을 충격은 더 클 테니까.
침대에서 일어나 몇 걸음 안 되는 화장실에 가서 씻는 것조차 어려워서 계속, 계속, 그렇게 누워서 시간을 죽이다가 죽어도 일어나지 않으면 안 될 시간이 돼서야 겨우 몸을 일으키고,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대충 묶고, 현관문 고리를 돌리며 제발 바깥에 강도가 있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한 번도 문밖에 강도가 서있던 적은 없었고, 엘리베이터가 추락해버리는 일도 없었고, 내가 타고 가는 버스가 한강 다리 밑으로 떨어져 버리는 일도, 스크린 도어가 없는 전철역에서 나도 모르게 철로로 뛰어내려져 버리는 일도 생기지 않았다.
하루하루 버티면서 일을 하는 시간이 힘들었지만, 나를 위해주고, 나를 위해서 노력하고, 고생하는 동생이 눈앞에서 아른거렸기 때문에 그걸 생각해서라도 참자고 생각하고 일하는 시간을 버텼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 하고는 말을 섞지 않았고, 제발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냥 입 다물고 일만 할 테니까 제발 나한테 아무것도 묻지 않기를.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슨 이유로 알바를 하고 있는지, 일은 힘들지 않은지, 아무것도 묻지 않아 주길 바랐다. 그렇게 말없이 기계처럼 일만 했다.
‘이 시간들이 또 월급으로 치환되면 동생에게 조금이라도, 도움까지는 아니더라도 부담은 조금 덜어줄 수 있겠지. 정말 조금이겠지만.’
동생에게는 고맙고 미안했지만, 나는 그때도 그 사람이 없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모든 일상이 기분이 좋지 않고, 무의미하고, 힘들었고, 지겨웠다. 아무 생각 없이 퇴근하고 잘 준비를 하면서 오늘도 똑같이 잠들어야 하는 그 자리를 보았을 때 너무 지겨워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해가 나면 일어나서 먹을 것을 찾고, 목이 마르면 목을 축이다가, 걸어 다니고, 해가 지면 잘 자리를 찾아 잠을 청하고, 매일이 똑같은, 변할 것 없는, 네가 돌아 올리도 없는 이 일상이 몸서리쳐질 정도로 싫고, 지겨웠다. 너무 지겨워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소리를 지를 수는 없었고, 평소와 똑같이 똑같은 일을 해내는 수 밖에는 아무 방법이 없었다. 나는 꾸역꾸역 매일 강도가 서있기를 바라는 현관문을 열고, 어떤 사고라도 일어나길 바라던 전철을 타고, 출근해서 일을 하고, 그 일이 의미가 있는 일이든, 없는 일이든, 삽질을 하는 일이든, 상관없이 그냥 이 시간이 월급으로 치환되기를 바라며 입을 꾹 다물고 일을 하면서 시간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그러면서 조금씩 나를 덜 원망하기로 했다. 나는 왜 이렇게 무기력할까. 나는 왜 이렇게 병신 같을까. 나는 왜 이렇게 기운이 없을까. 나는 왜 아침에 일어나서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지도 못할까. 나는 왜 아침에 눈을 떠서 시체처럼 시간을 낭비하기만 할까. 나는 왜 아침에 눈을 떠서 씻는 것조차 할 수가 없을까. 그런 생각들을 그냥 그만하기로 했다. 물론 처음부터 마음대로 되지는 않았다. 그냥 내가 힘든 것들은 다 내려놓자고 생각했다. 그게 무책임하든, 철이 없는 생각이든 뭐든 간에, 어쨌든 살아서 제정신은 찾아야 살아나가든 말든 할 거니까.
‘나를 자꾸 원망하지 말자. 나는 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은 없었다. 나아지지도 않을 것 같았고, 그래서 이 시간을 대체 왜 버텨야 하는지 당최 모르겠지만 일단 가족들에게 피해가 될 것 같아서 죽지는 못하겠으니 최소한 일 인분의 몫은 해내야 했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해주는 사람은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하고 약을 받아오던 선생님밖에 없었다. 그것도 아주 단호하고, 확실하게 괜찮아질 거라고 말해주셨다.
‘선생님이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이건 정말 나아질 정도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안 되는 사람인 것 같은데..’
그럼에도 그 말이 조금은 맞기를 바랐다. 어쨌든 뾰족하게 죽을 방법이 없어서 살아 버티긴 해야 하니 나를 괴롭히는 건 좀 그만두기로 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씻기가 힘들고 일어나기가 힘들면 최대한 누워 있었다. 며칠간 씻지 않아서 몸이 찝찝한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은 정말 씻어야지. 내일은 일어나서 샤워하고 머리를 감아야지.’
똑같은 생각만 5일 내내 하다가, 5일이 지나서야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샤워를 하고 머리를 감고 말리면서 ‘아, 그래. 오늘의 할 일은 다 했다. 잘했다.’ 큰 숙제를 끝낸 것처럼 나 자신을 칭찬했다.
내가 조금 나아지고 나서는 주변에 우울한 친구들이 종종 물어본다. 기분이 좀 나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고. 답이 있을 리가 없다. 그랬다면 나 또한 진작에 괜찮아졌을 테니까.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를 위한 요리를 해 먹고, 나를 위해 꽃을 선물하라는 말이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순간에는, 그럴 기운조차 없고, 그럴 의미도 필요도 느낄 수 없는 순간에는, 그저 쉬게 내버려 두는 게 나은 것 같다. 하지만 쉬게 내버려 두는 게 정말 쉽지 않다. 몸은 가만히 있어도 내 생각들은 계속 계속 움직이고 끝없이 나를 공격하는 질문을 해대니까. 근데 그 생각들을 죽을 만큼 많이 해봤자 나아지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멈추기로 했다. 그냥 멈췄다. 그래야 쉬는 것일 테니까.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그냥 멍 때리자. 내가 나를 끊임없이 공격하느니 그냥 정말 아무것도 없이 멍 때리는 게 낫겠다. 아무것도 못할 거면 차라리 제대로 쉬기라도 하자. 생각도 습관이고, 회로가 있어서 내가 갔던 방향으로 자꾸 가게 되고, 내가 갔던 길로 자꾸 가게 된다. 그래서 훈련을 하기로 했다. 내가 나를 괴롭혀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도 않고 계속 나빠지기만 할 뿐이니까.
의식적으로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의식적으로 나를 공격하는 생각들을 무시하기로. 어떤 상황에서든 나를 탓하지 않기로. 일단은 나라도 내 편을 들어주기로 했다. 세상을 살면서 내가 정말 열심히 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나를 폄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를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얘기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없는 소리도 지어내서 심심풀이 땅콩으로 나를 씹어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나까지 나를 괴롭히나.
나는 병적으로 자기 합리화를 싫어해서 나 자신에게 엄격하게 굴어왔다. 이게 자기 합리화가 아닌지, 자기 위안이 아닌지, 의심하고, 추궁하고, 내 탓을 해댔다. 그냥 그러지 않기로 했다. 벼랑 끝까지 가니까 그냥 그러자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그러지 말자고 해도 그게 마음처럼 안되고 그래도, 내가 혹시 나 자신을 지나치게 합리화해서 내가 평소에 정말 싫어하던 사람의 모습처럼 되면 어쩌나 그런 걱정도 안 하기로 했다. 걱정을 한다고 걱정이 해결되었으면 벌써 내 걱정이 다 없어졌겠지. 내가 지금까지 걱정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생각을 한다고 그 생각들이 다 해결되었으면 나는 벌써 마음의 평화를 찾았겠지. 근데 해결되기는커녕 더 엉켜버리고 물까지 먹어서 무거워진 그 생각들이 나를 숨도 못 쉬게 짓누르기만 하는 걸.
생각이 끊이지 않으면 그냥 쓸데없이 핸드폰을 뒤적였다. 괜한 뉴스들을 보고, 게시판에 재밌는 글 모음을 보고,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보고, 쓰잘 떼기 없는 시간들을 계속 보냈다. 내가 가장 싫어하던 짓이었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쓸데없는 기삿거리를 뒤적거리고, 쉴 새 없이 티브이 프로를 틀어서 보며, 생각할 시간도 없이 쓸데없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다니는 것. 그렇지만 그냥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렇게라도 해야 생각을 멈출 수 있으니까. 쓰잘 떼기 없는 시간을 계속 보내자. 그냥 그렇게라도 버티자. 낭비하는 것 같고 한심한 것 같더라도 나를 탓하지 말자. 내가 아니어도 세상에는 나를 괴롭히는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
어떤 사람은 내가 성격도 나쁘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모아둔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옷 입는 것도 맘에 안 들고, 애처럼 코맹맹이 소리가 나서 싫다고 했다. 나이 먹고 제대로 자리 잡은 것도 아니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걸 다 뛰어넘을 정도로 예쁜 것도 아니라서 내가 싫다고 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무슨 일이 있더라도, 무슨 일을 하더라도, 이해해주고 함께 할 자신이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나를 가장 아프게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고 뾰족한 말들로 그 힘을 정확히 사용해서 나를 찔렀다. 뒤에서 뭐라고 욕해댈지 뻔한 예전 직장 동료들, 내 나이 즈음이면 해뒀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수많은 것들, 왜 살아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는데 힘들어 죽겠는데도 죽지 못하고 일단 버텨야 하는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가도 문득 찾아와 버리는 씁쓸함, 세상엔 결국 나 혼자라는 고립감,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 제시간에 타지 못한 지하철, 어딜 가나 있는 이유도 없이 나를 썩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 지나가다 마주치는 사람들의 무심한 눈빛, 가게에 들어갔다가 괜히 들어버린 불친절한 말 한마디, 세상이 살기 얼마나 거지 같은지 매일 같이 다른 소식으로 보여주는 뉴스.
다 쓰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것들이 나를 괴롭히고, 어떨 때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들로도 괴로워지는데, 나까지 나를 괴롭히지 말자고 생각했다.
‘이 가시밭길 같은 세상에 뭐 하나쯤은 나를 절대 괴롭히지 않는 것이 있어야 균형이 맞는 거 아니야?’
그렇게 되뇌면서 조금씩 내 생각의 회로를 바꿔갔다. 조금씩 생각을 비워가다 보니 정말 비워지는 것 같기도 했다. 잠을 푹 자지 못해서 자다가 종종 깨곤 했는데, 어두운 방 안에서 터벅터벅 정수기 앞으로 걸어가 정수기 버튼을 누르고 또르르 떨어지는 물소리가 끝나면 컵을 입으로 가져가서 목을 축였다. 그 순간의 공허함이 나를 짓눌렀다.
‘이러고 왜 사는 걸까.’
‘이 어두운 방구석이 통째로 나와 함께 이 지구에서 뿅 사라진다고 해서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것 같은데. 왜 살아있는 걸까. 이렇게 자다가 그대로 사라져 버려도, 영원히 잠에서 깨지 않아도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은데.’
사실 자다가 눈을 떴을 때 목이 마르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안 하면 너무 공허해서 뭐라도 기계적으로 하고 싶었다. 아무 생각 없이 정수기 앞으로 걸어가서 물을 마시고, 그 다음번에 또 자다가 깨면 가고 화장실엘 괜히 갔다. 살면서 꼭 해야 하지만 의미 없는 일인 것 같은 일련의 행동들이 그나마 나의 공허함을 채워주었다. 일어나서 씻고, 화장하고, 옷을 갈아입고, 빨래를 하고, 빨래를 널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해놓아 봤자 또 똑같은 상태로 돌아가고, 그래서 또 해야만 하는. 무의미한 짓 같지만 그래도 해 놓으면 생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들.
동생한테 얹혀사는 주제에 집안일이라도 해놓지 않으면 정말 식충이가 되어버릴 것만 같아서.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살면서 꼭 하긴 해야 하지만 귀찮은 일들을 찾아서 하기 시작했다. 빨래를 돌리고,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다시 빨래를 널고, 걷어서 개어놓고, 분리수거를 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그런 일을 할 때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아서 좋았다. 그냥 그 일만 했다. 아예 쓸모없는 일은 아니니까, 어차피 살려면 해야 되는 일이니 까, 아무 생각하지 말고 그냥 기계처럼 하자. 의미 없는 것 같지만 해두면 내 생활에 그래도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 아예 시간을 버리는 삽질은 아니니까. 아무 생각 없이 이것만 해내도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걱정도 하지 말자. 한다고 해결될 것도 아니고, 그냥 지금 할 일을 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데, 나만 힘들어진다. 내가 힘들어서 모든 것을 놔 버리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텐데, 그럼 또 죽은 거나 다름없는 상태가 될 텐데, 그렇게 되기 전에 내가 나를 지켜주자. 그건 이유를 따지지 말자. 나니까 나는 나를 아껴줘도 돼. 내 편을 좀 들어줘도 돼, 나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