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반만 하자

나를 지키고 볼 거라고. 발전하는 건 그다음이라고.

by 최서연




계획대로라면 아르바이트를 몇 달해서 필라테스 자격과정에 등록할 돈을 마련해야 했는데, 동생의 도움으로 아르바이트를 한지 한 달이 되었을 때 과정을 등록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아르바이트를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었고, 동생이 더 늦어지면 안 될 것 같다고, 본인의 월급을 털어서 내 자격증 과정 비용을 부담해주었다. 동생이 힘들게 벌어서 준 돈이었다. 매일매일을 상사에게 받지 않아도 될 눈치와 구박과 불합리한 피드백들에 깨져가는 마음을 애써 다독이면서, 내가 도와줄 수도 없는, 들어주는 걸로는 더 이상 도움도 안 되는, 거지 같은 직장 생활을 버티며 받아온 돈이었다. 나는 동생에게 짐이 될 뿐이고, 옆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내가 도와줄 수도 없는 일에 대한 동생의 푸념을 들어주는 것밖에 없었다.


사는 게, 산다는 게, 원래 이렇게 거지 같은 것일까.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할까. 당최 기쁜 일은 생기지가 않고, 열심히 하는 만큼 돌아오지도 않고, 아니 열심히는 둘째치고 잘하는 것만큼도 돌아오지 않고, 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온통 고통일까. 절대 이런 상황에서 나갈 수는 없는 걸까. 아주 잠깐씩 인생에서 나를 구원해준 것 같았던 기쁜 순간들을 너무나 짧았고, 그 짧은 환희 이후에는 더 큰 고통이 찾아왔다. 차라리 처음부터 없었던 게 나았을 만큼.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도 못할 것 같고, 계속 이렇게 비슷하게 생활을 일궈내야 할 텐데, 그러려면 계속 거지 같은 일을 버텨야 할 거고, 그 대가로 오는 거라곤 그냥 내가 목숨을 부지하고 살아간다는 것뿐인데, 살아간다는 그것이 그렇게 가치 있는 일인가? 내가 이렇게 고통을 감내하면서 살아내야 할 만큼?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나 하나 죽는다고 무슨 큰일이 일어난다고. 나는 고통스러우니 그만해도 되는 거 아닐까. 이제는 행복해질 일이 남아있다고 생각하지도, 혹여라도 어쩌다 행복해져도 그 전과 같이 또 찰나의 순간일 뿐일 거고, 그 후엔 또다시 시궁창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나를 보면서, 아주 한참 전에 포기했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겠지.


어쨌든 동생의 고통과 바꾼 그 무거운 돈을 들고 나는 필라테스 강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집에서 2시간 거리의 교육 센터로 매일매일 나갔다. 새벽 6시면 일어나서 준비하고 나가야 했기 때문에, 동생은 돈 벌러 나가는데 식충이처럼 집에 남아있지 않아도 되어서 좋았다. 물론 아침에 일어나서 현관문 문고리를 돌릴 때마다 여전히 ‘제발 오늘 아침에는 문 앞에 강도가 있기를, 제발.’이라고 생각했지만.


갈아타지 않고 쭉 2시간을 가는 곳이라서 전철에 앉아서는 그냥 잠이 들었다. 아무리 자고 일어나도 도착하지 않았을 때가 많아서 마음이 놓였다. 잠깐씩 깨서 어디쯤 왔는지 확인하면서 영원히 도착하지 않기를 바랐다.


‘영원히 영원히 도착하지 않기를. 이렇게 잠들어서 내가 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고 그냥 사라져 버리기를.’


당연히 그렇게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주안역에 도착해서 찬바람을 맞으며 걸어가서 매일 아침 9시부터 5시까지 쉬지 않고 강의를 듣고, 동작을 연습하고, 운동하고, 티칭 하고, 쉬는 시간도 없이, 식사 시간도 없이 쭉 이어지는 강의와 수련 과정이었다.


솔직히 뭘 배우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원래 배우는 것이면 뭐든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성격인데, 이런 상태로는 내가 평소에 하던 만큼 못할 거니까. 그만큼 못하는 내가 싫고, 그전처럼 의욕이 타오르지 않는 내가 싫었다. 나는 항상 엔진 청소가 잘 되어있어서 최고의 효율로 달릴 수 있는 자동차처럼 내가 맡은 일을, 내가 하기로 한 일을 해냈었는데. 그렇지 못한 상태로 해내는 것이 내 성에 찰리가 없었다.


그 와중에도 그 사람은 기분이 어떤지 궁금했다. 나처럼 매 순간마다 이렇게 무거운지, 매 순간마다 이렇게 놓아버리고 싶은 기분이 드는지, 보통은 어떤 기분인 건지, 보통 다른 사람들도 다 이런 기분인 건지. 너무너무 슬픈데 슬프다고 얘기할 사람이 없어서 더 슬펐다. 너무 슬픈데 얼마나 슬픈지 알아줄 사람이 없어서 더 슬펐다. 이 넓은 세상에, 이 수많은 사람 중에, 내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 그렇게 원망스럽고 야속할 수가 없었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그냥 어찌어찌 흘러가기로 했다. 어쩔 수 없으니까 그냥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어차피 그전처럼 열심히, 완벽히 못 하니까 그냥 반만 하자.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의 반만 한다고 생각하고, 100% 열심히 못해도 나를 탓하고 원망하지 말자. 50%만큼만 노력했으니까 그냥 좀 지적받고, 조금 못해 보여도 그걸 억울하게 생각하지 말자. 나는 대학교를 다니면서 A 학점을 맞을 자신이 없는 시험을 보는 것을 정말 싫어했다. 내가 원하는 만큼 공부를 다 하고 나서야 만족스럽게 시험지를 앞에 두고 앉았다. 그래도 틀리는 것이 있다면야 어쩔 수 없었지만, 그렇게 공부를 했을 때 8과목 중에 여섯 과목은 A+를, 두 과목은 A를 맞아 장학금을 받았다. 왔다 갔다 4시간 거리의 통학을 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으니 다른데 시간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도서관과 기숙사에서 내가 목표한 만큼 공부했을 때의 성적이다. 그 이후부터 나는 가장 효율적이고 최대의 능력치를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과, 나의 의욕과 능력을 최대화시켜서 가동하는 것에 집착했다. 회사 생활을 할 때도 그랬고, 무엇을 하더라도 웬만하면 그렇게 했다. 그래서 이렇게 방전된 걸까. 완벽주의가 사람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준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걸 안다고 고쳐지진 않는다.



나는 필라테스를 시작하면서 애써 ‘반만 하자.’라는 생각을 했다. 반만 했다가 잘 안되면 어쩌지, 혼나면 어쩌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면 어쩌지, 실력 있는 강사가 되지 못하면 어쩌지, 진짜 도움이 되는 강사가 되지 못하면 어쩌지, 수많은 걱정이 또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공격하려고 할 때 나는 그냥 모르겠다고 하고 끊어내 버렸다.


‘일단 나는 지금 반만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반만 하고, 그다음 문제는 그다음에 생각해볼게. 지금 나를 다그치지 마. 어차피 못하니까.’


내 평소 자존심으로는 허락하지 않는 지적을 받았을 때도, 나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냥 어쩔 수 없지, 나는 반만 했으니까. 자존심 상해하지 말자.’


애쓴 만큼 인정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서 항상 억울했다. 나는 애를 애를 썼는데, 저 사람은 한 번만 체크하고 지나가버리는 동안 나는 두세 번을 꼼꼼히 체크하면서도, 똑같은 시간에 끝내느라 개고생을 했는데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근데 생각해 보니 나는 뭘 하면서 지적을 받는 일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부정적인 피드백에 익숙하지 않았고, 어쩌다가 지적 한 번 받으면 그게 그렇게 자존심이 상하고 하루 종일, 아니 며칠을, 아니 몇 년을 잊지 못했다. 내가 애쓰고 고생한 게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아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근데 내가 지금은 그게 감당이 안 되니까, 그만큼 할 에너지도 없으니까, 포기한다고 생각하고 ‘반만 하자.’라고 의식적으로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부터는 조금 여유로워졌다. 반 이상 할 수 있을 것 같을 때에도 반까지만 했다. 그냥 나머지는 쉬고, 에너지를 아끼고, 발버둥 치고 애쓰지 말자고 생각했다. 내 에너지가 바닥나면 또 나는 아무것도 못할 거니까. 그전처럼 빨래를 쥐어짜듯이, 쥐어짜고 쥐어짜서 완벽하게 무언가를 완성시켜봤자, 그건 지나가고 남는 건 지쳐버린 나니까.


‘반만 하자.’ 시험공부를 할 때도 그렇게 했으니 틀리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반만 하자.’ 모의 티칭을 할 때도 그렇게 준비했으니 준비과정이 너무 힘들지는 않았고, 지적받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전처럼 나를 쥐어짜지 않았으니까.


‘반만 하자.’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나를 별로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내가 못 가르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내가 말을 잘 못한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내가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또 나를 공격하는 생각들이 나를 향해 화살을 쏠 때 그냥 끊어버렸다. 어쩔 수 없다고, 하나밖에 없는 나를 쥐어짜지 말라고. 일단 나를 지키고 볼 거라고. 발전하는 건 그다음이라고.


‘반만 하자.’ 티칭 동영상을 찍을 때도 너무 잘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잘할 자신도 없었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하는 것에 의의를 두자. 다른 사람들이 내가 못한다고 생각해도 신경 쓰지 말아 버리자.


‘반만 하자.’ 내가 노력한 만큼 잘하지 못할까 봐 조바심 내고 걱정되고 긴장되던 마음이 조금은 줄어들었다. 그 전보다는 편한 마음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반만 하자.’ 과정 중간중간 테스트를 하고, 시험을 봤을 때 나는 내가 바닥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반만 하자.’ 반만 해도 그렇게 바닥은 아니구나. 중간만 가도 다행이지 뭐. 나는 항상 위에만 봤지만 그 아래도 있는 거잖아.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들은 사실 다들 반만 하고 있었던 걸까? 나만 매번 내 에너지를 쥐어짰던 걸까?


‘반만 하자.’ 자격증 시험을 볼 때는 사실 좀 무서웠다. 이거 떨어지면 동생한테 면목이 없어서 어떡하지.


‘그래도 반만 하자.’ 어쩔 수 없다. 그리고 동생은 너그럽게도 이번에 합격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해줬다.


‘어쩔 수 없으니까 반만 하자.’ 자격증 실기 시험이 당일로 닥쳤을 때는 진짜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죽어도 별 상관없는 거였는데 보너스로 산 거니까, 반만 해도 많이 한 거라고 생각하자. 원래대로 죽었으면 그냥 0이었을 텐데, 그래도 살아 있으니 50이라도 했구나. 100을 채우지 못한 나머지 50을 탓하는 게 아니라, 0에서 해낸 50을 보너스라고 생각했다. 원래는 없는 거였는데, 내가 살아있으니까 그나마 50이라도 한 거라고. 살아있으니까, 죽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거 대신에, 중간중간 실수를 하더라도 수업을 했다. 죽었으면 뭐 아무것도 없는 거였는데, 살아서 시험이라도 봤다. 죽었으면 자격증이고 뭐고 없을 텐데, 살아있으니까 따면 보너스고, 못 따면 그냥 똑같은 거라고.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살아 있으니까 이거라도 한 거라고, 이거밖에 안되더라도, 죽어버려서 아무것도 안 한 거보다는 보너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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