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서른한 살에 울면서 출근을 했다
정말 다행히도 나는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고, 인턴 자리를 구해 강사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원체 발표 울렁증이 정말 심한 사람이다. 면접도 정말 못 보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하는 발표는 더더욱 못한다. 그런 내가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가르치는 강사가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나는 출근할 당일이 되자 미친 듯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사람들 앞에서 한 시간 동안 강의를 하지?’
‘난 아직 준비가 안됐어. 준비가 안된 엉망인 상태로 무언가를 망치긴 정말 싫어. 잘하고 싶어. 망신당하기 싫어.’
다시금 내 완벽주의가 슬슬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때는 동생이 냉정하게 끊어내 주었다. 진짜 수업을 한 번이라도 해보는 거랑 안 해보는 건 천지차이라고, 오늘 못하면 언니는 한 달은 못 할 거라고, 준비가 다 되면 해볼 수 있는 기회는 없다고, 하면서 배우는 거라고.
나는 나이 서른 한 살에 울면서 출근을 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마냥, 동생 보기 창피해서 소리 내서 울지는 못하고, 넘치는 눈물을 두 뺨으로 흘려보내면서. 저녁 강의는 점점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고, 이제는 정말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간 학원을 다니면서 봐온 선생님들처럼, 적어도 50분간은 말을 멈추지 않고, 흐름을 멈추지 않고, 내가 짠 동작들의 순서를 헷갈리지도, 잊어버리지도 않아야 한다. 내 수업을 듣는 모든 회원들의 자세를 잡아주면서 수업을 끌고 나가야 했다.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했던 시간은 도착해버렸고, 나는 수업을 시작했다. 낮 시간 내내 내 나름대로는 열심히 준비하고, 연습했지만 그때도 의식적으로 반만 하자고 생각했다. 너무 잘하고 싶어서 긴장하고, 망쳐버리는 것보다는 반이라도 하는 게 나으니까.
‘수업 도중에 도망가지만 말자.’
필라테스 수업은 보통 스트레칭과 호흡으로 시작한다. 그건 어렵지 않았다. 매일 하던 거니까. 내가 수강생일 때는 스트레칭이 시작되면 최면이 걸린다고 생각하고 그냥 시작된 흐름에 몸을 맡기자고 생각했었다. 이제는 내가 최면을 걸어야 했다. 나에게도 같이, 내 수업을 듣는 회원들에게도. 중간중간 동작 순서가 생각나지 않던 순간에도, 순서를 엉켜버린 순간에도 , 내가 생각한 것보다 너무 빨리 진행되어서 순간 내가 계획한 동작은 다 끝나버린 순간에도, 나는 말을 멈추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반만 하자고 생각해서 그런지 망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100 점 짜리 수업이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지 뭐.’
무사히 50 분을 채우고 수업이 끝났을 때, 같이 수업한 선생님들께서 내가 엄청 침착해 보였다고, 수강생들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흐름을 이끌어 가는 게 대단하다고, 처음 하는 건데 진짜 잘했다고 격려의 말을 건네주셨다. 다행이었다. 나를 그렇게 괴롭히고 쪼지 않아도 되는구나. 반만 한다고 생각하니 너무 완벽하게 잘하고 싶어 긴장했던 것이 덜해졌다. 때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밀어붙이더라도, 반만 하고 있는 나도 분명 성장해 나갈 거니까. 그게 반 밖에 안되어서 남들보다 조금 부족하고, 느릴지는 몰라도, 나를 지켜야 그다음에 뭐라도 할 수 있으니까. 내가 나의 조금 느린 속도를 답답해하지만 않는다면 세상 어디엔가는 그 속도로, 그 나름대로, 성장해나가는 사람이 분명 있을 테니까. 그 정도면 되지 뭐. 반만 하자는 생각은 내가 이전에 실수할까 봐 완벽히 준비하고, 준비하고, 또 연습하고, 연습하는 것보다 발표 울렁증에 효과적이었다.
그래도 내 수업을 들으러 오는 분들을 위해서 준비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부지런히 프로그램을 짜면서 시간을 보냈지만, 그전처럼, 그러니까 100 점만큼 잘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수업이 시작될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망해도 어쩔 수 없지 뭐.’
지점을 옮겨야 해서 새로운 센터에 가서 처음 수업을 했을 때도, 다른 선생님들이 나한테 진짜 초보 같지 않다고 얘기해주셨다. 조금씩 용기를 얻으면서, 그 전 센터보다 수업이 훨씬 많아졌고,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많은 사람들을 대하면서, 나의 실력도 조금씩 조금씩 늘어가고, 수업도 조금씩 조금씩 능숙하게 해낼 수 있었다. 운동 자체에서 오는 에너지인지,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회원님들과 동료 선생님들 덕분인지, 나도 조금씩 조금씩 기운을 차려가고 있었다. 수업이 너무 많으면 지칠 때도 있었고, 수업하는 기계가 되었다고 생각하자고 마음먹는 날도 있었다. 아직도 사는 재미는 모르겠지만, 이런 거 다 내팽개쳐버리고 죽어도 상관없지만, 적어도 동생한테 빚진 건 갚고 죽어야지.
‘시체처럼 누워있기밖에 못했는데 무슨 일이라도 하고, 돈을 벌 수 있다는 게 어디야. 감사하다 생각하고, 이제는 정말 포기하지 말고 버텨내 보자.’
그렇게 애써 마음먹으면서도, 순간순간 공허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사랑이 이 세상에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했고, 그건 누가 뭐래도 너였는데. 너는 여전히 없고, 앞으로도 없어. 그럼 내가 여기서 살아가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아침에 일어나 세면대의 수도꼭지를 틀면서 ‘사라져도 그만인 이 무의미한 짓거리를 내가 왜 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멈추려고 얼굴에 찬물을 끼얹었다. 아무리 찬 물을 끼얹어도 그 생각에서 벗어나기는 힘들었다. 그게 뭐든 스트레스받는 생각, 내가 나를 공격하는 생각은 정말 웬만하면 많이 끊어내고, 멈추고, 포기하고, 내려놓고. 갖은 방법을 다 써서 안 해 버릇했지만, 그 사람이 한 말에서는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성격도 나쁘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모아둔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옷 입는 것도 맘에 안 들고, 애처럼 코맹맹이 소리가 나서 싫고, 나이 먹고 제대로 자리 잡은 것도 아니고,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걸 다 뛰어넘을 정도로 예쁜 것도 아니잖아.”
내가 어떻게 해도 너한테는 무가치한 사람이고, 그게 나를 정말 의미 없게 만들었다. 어떤 생각이 나를 괴롭히면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쓸 수 있는 방법은 다 썼다. 어디서 무엇을 갖다 붙여서든 반박하고, 공격하고, 비난하고, 필요하면 차라리 남을 욕하고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어떻게 해도 벗어나 지지가 않았다. 족쇄처럼 나를 묶고 계속 옥죄어오는 것처럼. 아무리 미워하고, 비난하고, 원망하고, 차라리 이해해보려고 해도. 어떠한 방법도 통하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