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 답안이 준비되어 있다고 내가 그렇게 풀어나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친구들에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었다. 연락하고 싶었는데 일단 생각하기가 싫었고, 뭐라고 말해야 할지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내가 진짜 괜찮은지도 모르겠고, 좀 더 괜찮아지면, 진짜 괜찮아지면, 그때 연락하자는 생각으로 미루고 미뤄왔다. 희윤이는 그냥 눈 딱 감고 연락하라고 했다. 그냥 딱 연락해버리면 끝이라고. 아니면 자기처럼 몇 년 동안 연락 못 하고 길어질 거라고. 그 말에 용기가 나서 그날은 정말 내일이 되면 연락해봐야지, 친구들 잘 지내고 있을까, 나를 원망하고 싫어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설레는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 깼을 때, 갑자기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냥 기분이 좋지 않았다. 이유도 없었다. 이유도 없이 기분이 좋지 않으면 생각은 어두운 쪽으로만
돌아간다.
‘괜찮지도 않은데 연락해서 뭐 어쩌게?’
‘그랬다가 또 잠수 타면 무슨 민폐야?’
내가 좋아하고 연락하고 싶은 사람들의 인생에 내가 유일한 먹구름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사람들 인생은 행복하게 잘 흘러가고 있는데, 나라는
걱정거리가 다시 엮이려고 하는 기분. 그 맑은 하늘에 나라는 유일한 어두운 먹구름이 끼여서 그 사람들의 인생에 걱정거리만 얹는 기분.
다음날 희윤이가 다른 친구들한테 연락해봤냐고 물어왔다. 나는 그 카톡을 보며 친구들에게 연락하고 싶은데 사실 내가 완전히 괜찮은지 모르겠고, 또 잠수 타면 민폐만 끼칠 것 같다고, 그래서 걱정되고 망설여진다고, 용기가 좀 필요하니 네가 용기를 달라고 썼다.
하지만 사실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아무 답장도 하지 않았다. 이제는 솔직히 털어놓는 것으로는, 그래서 고맙게도 돌아오는 친구의 따뜻한 위로
로는, 사실은 아무것도 해결이 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벼랑 끝까지 갔을 때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결국은 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후였기 때문이다. 털어놓는 것도, 그래서 받을 수 있는 따뜻한 위로도, 내가 절대 풀 수 없는 문제의 모범 답안처럼 느껴졌다. 난 절대 그런 방법으로 문제를 풀 수 없고, 봐도 모르겠고, 안 봐도 모르겠고, 결국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은 난데, 모범 답안이 준비되어 있다고 해서 내가 그렇게 풀어나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그게 됐으면 진작에 했겠지. 이렇게 됐겠냐고.’
흉내는 낼 수 있겠지, 그렇게 풀어가는 것처럼. 그래서 순간적으로는 내가 정말 이 문제를 푼 것처럼 위로받는 순간도 있었지만, 그건 아주 잠깐이
고 나는 결국 나 혼자서 그 문제를 풀어내야만 했다.
희윤이의 연락도 받지 않고, 나는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가 겨울잠을 자기로 했다. 어제의 희망은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아니 차라리 없었으면 나을 뻔하게 더 추워졌다. 그전만큼, 꼭 그만큼 똑같이 추운 걸진 몰라도 내가 느끼기엔 더 추웠다. 겨우겨우 이 추위에 익숙해졌을 즈음이었는데, 어떤 따뜻한 것도 내 인생에 들어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겨우 익숙해졌더니, 나도 모르게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서 내가 봄으로 갈 수 있을 것만 같이 착각을 해버렸다. 그래서인지 겨우 익숙해진 추위가 괜히, 더 춥게 느껴져서 내 마음을 에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