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감사하지가 않았다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와 같은 사람에게 동질감과 애정을 느끼는 것 같다. 나도 연락한지도 오래된 희윤이에게 나도 모르는 동질감을 느꼈던 것처럼, 아마 희윤이도 나한테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내가 연락을 받지 않는데도 계속 연락을 해왔다. 문을 꼭 닫아버리고 있고 싶은데, 그러면서도 누군가 노크를 해줬으면 하는 게 사람 마음이다, 참 이상하게도. 제발 그냥 노크도 하지 말고 여기 있는 것 자체를 잊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도, 그래도 누군가는 노크를 해주길 바란다. 막상 누군가 노크를 해주면 반갑다가도, 내가 그에 상응하는 변화를 보이지 못하면 또 저 사람도 실망하고 지치겠지 싶어 노크 좀 제발 그만해주길 바라기도 한다.
‘어차피 나 못 변할 거니까 와서 노력하다 지쳐서 떠나가 버리지 말고, 그냥 노크를 하지 마. 근데 또 변하고도 싶은데, 계속 이러고 싶지는 않은데... 하지만 또 기대했다가 실망하면 전처럼 더 추워지겠지. 더 추워지긴 싫어. 역시나 그냥 이 방안에 문을 꼭 닫고 사람들이 잊어버릴 때까지 가만히 있는 게 최선이야.’
마음속으로 다짐을 하면서도 희윤이는 그래도 알아주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답장을 했다.
“사실은 괜찮지 않아. 괜찮지 않은데 사람들이랑 연락하면 나도 모르게 자꾸 괜찮은 척을 하게 돼서 그러기가 힘들어. 그렇다고 계속 나 우울한 거 다 얘기하는 건 듣는 사람까지 우울해질 거 같은 느낌이라 얘기할 수도 없고, 내 마음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고, 내 마음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토할 거 같은 기분이야. 일하는 것도, 돈 버는 것도, 사는 것도, 다 무슨 의미고 무슨 소용이 있는지 모르겠어.”
“지금 잠들면 절대 깨지 않았으면 좋겠고, 어디로든 가려고 전철을 탔을 때 영원히 도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먹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 그냥 잠들고 싶어.”
라고 얘기하고 싶었지만 또 다 털어놓지는 못했다. 희윤이까지 도망가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인지. 솔직히 괜찮은지 모르겠고, 지금도 안 괜찮은 것 같고, 또 잠수 타면 민폐인데 그래서 그냥 안 하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간단하게 답장했다. 희윤이는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너무 솔직하게 얘기하지 도 말고, 너무 다 얘기하지도 말고, 그냥 다시 바빠질 수도 있다고 얘기하라고.
그때는 그 말이 조금 서운하게도 느껴졌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희윤이는 나에게 거리에 대해서 얘기하려고 한 것 같다. 그저 좋으면 한없이 가까워지려고만 하는 나에게 다치지 않을 정도의 거리에 대해서. 문을 굳게 닫고 혼자 추워하면서 있기보다는 알맞은 거리에서 온기를 느끼면서, 너도 나도 다치지는 않는 거리.
나는 희윤이의 조언 덕분에 용기를 내서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게 되었고, 몇몇은 너무나 반갑고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몇몇은 무덤덤히 달가워하지 않는 눈치이기도 했다. 하루 동안 그간 연락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연락을 하고, 따뜻한 마음을 받고 나니, 마음이 정말 따뜻해진 것 같았다.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그냥 달갑지 않은가 보구나. 그럴 수도 있지. 내가 잘못한 거니까. 그만큼 나를 반가워해준 사람들에게는 더 고맙고 소중해졌고, 그렇게 알맞은 거리를 조금씩 찾아나갔다.
희윤이는 새로 취직을 하게 되어 경상남도 사천에서 일을 한다고 했고, 가서 한번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다. 솔직하게는 주말에 할 것도, 만날 사람도 없어서 무턱대고 가겠다고 했다. 마침 시간이 맞아서 같은 동아리 선배인 상권이 오빠도 같이 가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사물놀이 동아리를 했었는데, 내가 가장 친한 언니도, 유일하게 지금까지 연락하는 고등학교 사람들도 모두 이 동아리 사람들이다.(물론 희윤이도)
오랜만에 멀리 떠나는 거기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는 거라서 설레었다. 다녀오면 정말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라서 이 주 내내 그날을 기다렸다. 근데 막상 그 전날이 되자,
‘어차피 만나고 온다고 대단히 내 인생이 나아질 것도 아니고, 내 일상은 똑같을 거고 바뀌는 것도 없을 텐데 뭐. 괜히 만났다가 실망하면 어떡하지. 그냥 이 정도로 거리에서 연락만 하니까 서로 좋고 반가운 모습만 본 거 아닐까.’
괜히 만났다가 기분만 안 좋아질 거 같다. 생각해 보니 내일이 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다. 상권 오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사천까지 내려가기로 해서 내가 오빠 차에 올라탔을 때 오빠는 나에게 살아는 있었냐고 웃으면서 묻고는, 나를 아무렇지 않게 대해줬다. 며칠 전에도 봤던 사람처럼, 내가 그간 연락을 안 해서 걱정 끼친 사람이라는 것은 모르는 듯이. 내려가는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지. 어느 누구한테는 털어놓고 싶기도 하면서, 아무에게도 털어놓고 싶지 않았던 얘기들을 하면서 사천으로 내려갔다.
생각보다 불편하거나, 미안하거나, 어색하거나, 어떤 의미로든 실망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상권이 오빠는 내가 우울할 때 만나도 무해한 사람이다. 대단히 나를 신경 쓰고 배려해줘서 오히려 미안하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생색내지 않으면서도 따뜻함이 느껴지는 사람. 내가 보기엔 별거 아닌 것도 별거 아니게 만들지 않는다. 찾아오는 모든 것에 충실하게 반응한다고 해야 할까. 별거여도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는, 아무것도 의미가 없는 거 같고, 뭘 봐도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하지만 오빠는 사소한 것도 ‘오오.’ 하면서 신기하다거나, 재밌어한다거나, 대단하다는 티를 내줘서 같이 있으면 조금 안심이 된다.
‘나는 모든 걸 무의미하게 느끼지만 같이 있는 오빠라도 의미 있어하니까,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무의미한 건 아니겠지.’
라고 생각하면서 그 시간은 조금은 안심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우울할 때 만나도 불편하지 않다. 적어도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거나, 역시나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서너 시간 즈음 운전을 해서 사천에 도착했다. 정말 오랜만에 희윤이를 만날 생각을 하다 보니 조금 신이 났다. 정말 오랜만에 나의 생활 반경에서 먼 곳으로 놀러를 오기도 했고.
오랜만에 만난 희윤이는 정말 좋아 보였다. 희윤이는 사실 내가 고등학교 3년 내내 좋아했던 친구이다. 그때는 정말 정말 좋아해서 지나가다가 마주치기만 해도 설렜었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잊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마음이 정말 많이 아프기도 했고. 10년이 지나서 이렇게 만나게 되니 반갑기도 하고, 나랑 비슷하게 우울한 건가 싶어서 걱정이 되기도 하고, 자주 연락은 못 했지만 동질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어쨌거나 희윤이도 나도 완전히 괜찮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어두운 터널을 지나서 그래도 지금은 웃으면서 얼굴을 마주 보고 얘기할 수 있는 정도는 되는구나 싶어 다행이었다. 생각보다 잘 살고 있는 모습에, 건강하고 밝아 보이는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오랜만에 봐서 너무 반갑기도 하고, 고등학생이던 우리가 별의 별일을 다 겪고 10년이 지나서 30대가 되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나는 사람들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밝은 척을 하는 습관이 있는데, 내가 느끼기에는 희윤이도 그런 것 같았다. 희윤이가 우리가 왔다고 애써 밝은 척을 해야 하는 거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왜냐하면 나는 그게 느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그렇지 않았다. 희윤이 나름대로의 힘든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밝은 척을 하려고 애쓰는 게 아니라 정말 예전에 보았던 모습보다는 훨씬 좋아 보였다. 오랜만에 만나 집 구경도 하고, 차를 타고 나가 바다도 보고, 수산시장에 가서 회도 사고, 넉살 좋게 흥정하는 희윤이의 모습을 보면서 많이 웃었다. 예전에 봤던 밝은 모습 그대로 인 것 같았다.
근데 희윤이가 미리 준비해 둔 굴이 탈이 난 건지 나는 새벽부터 계속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통 술을 안 먹다가 오랜만에 술을 먹어서 그런 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속에 있는 걸 다 토한 것 같은데도 계속 구역질이 나오기를 한 시간, 전에 굴을 잘 못 먹었다가 응급실 갔던 것이 생각나서 응급실을 가야 할 것 같다고 얘기했다.
너무 괴로웠다. 더 이상 토할 것도 없는데 너무 심한 구역질이 계속 나와서 속이 뒤집어질 것 같았다.
‘제발 멈췄으면 좋겠는데, 제발 제발 멈췄으면 좋겠는데.’
너무 토를 해서 갈증이 나 죽겠는데, 구역질은 쉴 새 없이 나와서 물 한 모금 먹을 수가 없었다. 몸이 아픈 것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아프고 나서야 알게 되고, 고통스럽고 나서야 후회한다.
‘제발 멈춰라, 제발.’
컴컴한 방에서 자다 일어나서 하릴없이 정수기 물을 또르르 따라 마시던 그 순간들이 생각났다. 그 순간은 마치 내가 우주에 혼자 동떨어져 있는 것처럼, 지금 이 순간 여기에 내가 있든 말든 아무 상관없고, 알 사람도 없고, 아무 의미도 없는 것이 무섭게도 와 닿았던 시간들. 그래서 차라리 정말 사라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그럼 고통스럽지라도 않을 텐데, 존재해서 얻는 건 고통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시간들이 얼마나 평화롭고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그냥 알아지게 되었다. 그 어두운 방 안에서 마셨던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던 물 한 모금이 지금은 너무 간절했다. 아무리 알려고 노력해도 알아지지 않던 것들.
‘그래도 건강한 몸을 가지고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이야.’
‘사지 멀쩡히 걸어 다니는 것만 해도 얼마나 다행이야.’
감사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감사하지가 않았다. 몸은 멀쩡해도 정신이 멀쩡치 않으면 병신이나 다름없고, 그럼 도리어 이 육신이 짐짝처럼 느껴진다면서 아무도 들리지 않게 마음속 깊이 절규하고 저주했던 순간들. 내가 항상 가지고 있어서 몰랐던 건강함, 그저 불편하지 않은 상태가 얼마나 감사한 것이었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아마도 그때는 내가 조금 기운을 찾아서, 감사한 줄 알라고 스스로를 구박하고 강요하지 않아도, 그냥 감사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혹시 이 글을 읽으면서, ‘나는 하나도 감사하지 않은데?’ ‘아무리 아파도 모르겠는데?’ ‘난 몸도 아픈데 어쩌라는 거지?’ ‘살아있는 것 자체가 감사하지가 않은데?’라고 느껴진다면, 지금은 감사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감사하지 않은데 억지로 감사하려고 하는 것조차도 내가 소모되는 일이니까. 자연스럽게 감사할 수 있는 여유를 찾았을 때, 가지고 있는 것들을 알아채는 순간들이, 나를 일깨우는 순간들이 꼭 찾아올 거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저의 책 중에서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걸렸습니다. 저는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상처 받지 않게 할 말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긍정적인 말이든, 부정적인 말이든 상관없이. 누구 한 명쯤은, 이 지구 상에 누구 한 명쯤은, 그 말에 상처를 받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파봐야 정신을 차린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게 아닌데 아무래도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저의 경우에서 제가 가지고 있었는데 몰랐던 것들에 대해서 감사함을 느낀 경험이었습니다. 누구나 다 공기처럼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감사하기조차 힘들다면, 지친 나에게 조금 시간을 주세요. 이 글 외에도 당신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당신을 상처 입히거나 아프게 하는 글이 있다면 그건 저의 부족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니 꼭 무시해주세요. 자신에게 따뜻함을 주고,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고, 필요한 글들만 기억해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