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은 우울해하는 나를 보며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그즈음 나를 위해서 아주 많은 애를 써주었다. 자기 주변에 나처럼 우울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되냐고, 혹은 자기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어두운 터널 속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데, 사실 뾰 족한 수가 없다. 이걸로 해결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내가 들었던 내 주변 사람들의 따뜻한 말들을 나누어 주고 싶다. 그런 말을 해줄 주변 사람이 없다고 느껴지면, 내가 나한테 해주면 된다. 주변에 누가 있든 이 넓은 우주 속에, 이 많은 사람들 중에, 나는 오로지 나 혼자인 것만 같이 느껴질 때가 있고, 그럴 때는 내가 나한테, 내가 원하는 가장 따뜻한 주변 사람이 되어주자고 생각했다. 내가 꿈꾸는 ‘나에게 이런 부모가, 혹은 이런 친구가, 혹은 이런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남이 해줄 수 없다면 내가 나한테 그렇게 해주었다. 어느 순간에든 나의 편이 되어주고, 내가 실수하고 부족하더라도 이해해주고, 애정 어린 눈으로 계속 바라봐 주는 것.
어쨌든 동생은 그 당시에 나의 정말 좋은 보호자가 되어 주었는데, 나를 위해 애써주었던 것 중에 하나는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한 ‘장점 게임’이었다. 이 게임의 원칙은 무조건 하나의 장점은 내가 내 입으로 직접 나의 장점을 말하고, 동생도 나의 장점을 하나 말해주고, 나는 그것을 반박하지 않고,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내가 말한 장점이 대단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오늘도 죽지 않고 살아버틴 것, 오늘 출근할 때 세수를 하고 나간 것 등등. 남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있는 것들도 나에게는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되면 장점으로 이야기했고 , 내 동생은 내가 말하는 작은 장점도 대단히 크게 인정해주면서, 나의 잃어버렸던 장점들을 한 가지씩 꺼내서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리고 쓸데없는 생각이 끊기지 않을 때 도움이 된 말들도 있다. 그냥 지금 걷고 있는 한걸음 한걸음에 집중하라고.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내가 내딛는 발걸음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내 발에서 느껴지는 까칠함이랄지, 둔탁함이랄지, 폭신함이랄지. 어디에 내딛고 있는지, 일직선인지 양반걸음인지, 뒤꿈치부터 앞꿈치까지 닿는 느낌에 온전히 집중하라는 것이다.
오늘 할 일 중에 하나라도 해냈으면, (그것이 하루 종일 23.9 시간을 낭비하고, 0.1 시간 동안 세수를 하는 게 다였더라도) 충분히 잘했다고 인정해주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나는 어쨌든 그 힘든 시간을 살아 버텨 남은 것만으로도 할 일을 다했는데, 세수까지 했으니까.
또, 문득 얘기하고 싶은 사람이 생각나서 그 사람과 얘기를 하고 싶으면, 그 사람이 나와 생각보다 가깝든 가깝지 않든 고려하지 말고 그냥 얘기를 나누라고. 털어놓고 싶은 게 있으면 털어놓고, 가볍게 떠들고 싶으면 그냥 떠들고. 그때 그 사람은 진심으로 나를 대한 게 아니더라도, 그 순간에 내가 그게 필요하다면 그냥 그걸 취하라고.
그러면서 내가 나를 쪼고 있던 몇 가지의 원칙들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사실 남들은 신경도 안 쓰는 것들. 관심받고 싶다고 관종처럼 행동하지 않는 것. 행복한 척하려고 인스타에 행복한 척하는 사진 올리지 않는 것. 타인에게 내 감정을 많이 내비치지 않는 것. 남이 상처 받을 거 걱정해서 내가 부담스럽고 힘들더라도 다 들어주던 것. 침묵하고 있는 시간이 어색해서 괜히 있는 얘기 없는 얘기 계속 이어가다가 피곤해지던 것. 쓸데없이 가까워지면 쉽게 마음 열고 상처 받으니까 방어적으로 굴었던 것. 하루 종일 티브이나 영상 보면서 앉아있지 말기로 한 것도. 설거지는 먹으면 바로바로 해놓기. 집에 오자마자 화장은 꼭 지우기. 등등 내가 편하려고, 또는 나중에 후회할 일 생길까 봐,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 정해놓은 원칙들. 그 원칙들에 내가 다시 묶여서 힘들어지니까. 그냥 모든 원칙을 내려놓기로 했다. 지금은 일단 되는대로 흘러가고, 다른 거 상관 않고, 마음이 내키는 대로 해보기로.
어떤 것들은 조금의 용기가 필요하고, 좀 없어 보인다거나, 민망해지거나, 남들이 보기에 어때 보일까 신경 쓰이는 순간들이 있었지만, 나는 다행히 용기가 조금은 있는 편이라서 그렇게 했다. 아니, 내가 죽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남들의 시선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고, 그러다 보니 용기가 생겼다. 나는 사실 사람들이 나한테 그렇게 크게 관심이 없다고 생각한다. 나도 남들한테 대단한 관심이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자기 인생 바쁠 텐데 남들한테 무슨 그렇게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수가 있을까. 그냥 그때그때 자기가 느끼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일 텐데, 내가 거기에 그렇게 크게 휩쓸려야 하나 생각을 하면서. 나중에 자기가 그런 얘기했는지 본인은 기억도 못할걸. 그리고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면 사람들은 또 그냥 그러려니 하는 것 같다. 생각보다 그러려니 해준다. 원래 저런 사람이구나. 그래서 나는 나에서 벗어나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일 일을 조금씩 줄여나갔다. 내가 만약 내일 죽을 건데 ‘생각해보니까 오늘까지 한 번도 내 마음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내 편한 대로, 내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 살아본 적이 없네.’ 싶으면 너무 슬플 것 같아서.
당장에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면 돈이나 탕진하고, 여행이나 다니고, 사람들한테 심술도 부리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그건 아마도 나의 진정한 모습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제대로 쉬는 게 필요하고, 그래서 에너지를, 여유를 찾은 나의 모습을 아는 게 필요하고, 나를 받아들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보통 사람들 다 밑바닥은 비슷하지 않을까? 굳이 나의 밑바닥만 보면서 ‘너는 사실 엄청 나쁜 면을 가지고 있는 나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기보다 내가 그 밑바닥에서 조금은 걸어 나올 수 있도록, 쉴 수 있게 해 주고, 에너지를 찾았을 때의 내 모습이 어떤지보고,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하면서 살 수 있는 환경을 연구하고, 만들어나가고, 그게 내 마음대로 되기는 정말 힘들지만 말이다.
어차피 힘들게 살다가 갈 거면 이왕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힘든 게 낫지. 주변 기준에, 평균 기준에, 남들 시선에 맞추다가 내일 죽게 되었을 때 내가 한 번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고 살았다면 그게 더 허무할 것 같다. 그렇게 해서 내가 나의 자연스러운 모습에 가까워질 때 주변에 내 모습 그대로를 그저 받아들여주는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면 정말 감사하고 나에게도 힘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주변에 있을 필요도 없다. 그래서 혼자라면 내가 나한테 그렇게 해주면 된다. 언젠가는 나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여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