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한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관계는 깨지는 것 같다. 내가 호의랍시고 상대방에게 주는 것들이 상대방이 느끼기에는 받았으니 버리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자기가 원한 것도 아닌데 쓸데도 없어서 처치 곤란하게 된 쓰레기일 수도 있으니까. 그게 참 안 되는 걸 알면서도 그런다. 내가 누군가를 구해줄 수 없다는 것을. 제일 잘 알면서도 괜히 마음에 걸리고, 모르는 척하려다가도 신경이 쓰이고, 자꾸 보니까 안타깝고, 걱정이 되고, 그러다 보니 모르는 척은 못하겠기에 결국 말을 걸고, 어느새 얘기를 너무 많이 해버렸고, 그래서 이따금씩 마음이 아려오고, 그 사람의 떨리는 목소리를 듣고, 긴장한 것 같은 손으로 커피를 들고 티 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마시는 것을 보게 되면, 나를 보는 반짝이는 그 눈을 빤히 바라본 순간에는 마치 내가 뭐라도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또 그런 헛된 희망에 사로잡혀서 내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이 그 관계가 깨지는 순간 같다. 나는 도움이랍시고 계속 무언가를 퍼다 줄 것이고, 그 사람에게는 그것이 전혀 쓰잘머리 없는 쓰레기일 테니까. 건강한 관계라는 것은, 건강한 관계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그리고 가능한지도 잘 모르겠지만, 이제는 나를 무너뜨리면서까지 유지해야 하는 관계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이 든다. 그 정도에서 선을 지키는 것이 건강한 관계가 아닐까. 너는 너대로 너의 삶을 책임지고 있고, 나는 나대로 나의 삶을 책임지고 있고, 같이 시간을 보내면 재밌고 따뜻한 순간이 생기기도 하지만, 누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둥, 변하게 할 것이라는 둥. 하는 주제넘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내가 감당할 수 있는 관계의 거리인 것 같다.
이게 정답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고 그럴 리도 없다. 사람마다 감당할 수 있는 거리가 다르고, 관계의 가까움과 상처는 비례한다. 나는 너무 가까운 관계에서 받는 상처는 감당하기가 (심하게) 어렵고, 가까워서 느낀 따뜻함보다 상처의 차가움이 훨씬 큰 것 같아서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는 0인 게 나은 건지, +100이었다가 -100이었다가 하는 게 나은 건지, 항상 고민했다.
평화롭게 심심한 게 나은 걸까? 아니면 많이 재미있을 때도 있고 꽤나 괴로울 때도 있는 게 나은 걸까? 나는 평화롭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심심하게 있는 것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재미있고 따뜻한 순간을 보내려고 할 것이지만, 그 시간 때문에 내가 다치는 것을 바라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내 마음을 정리했다. 어찌 되었든 내가 재미있고, 따뜻한 시간들을 보내기 위해서는 행동하겠지만 그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거나, 누군가를 변하게 할 것이라거나, 그런 욕심은 가지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 그렇다면 많이 다치게 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고 생각했다.
누구든지 너는 너의 모습으로, 나는 나의 모습으로 만나서 재미있고 따뜻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좋은 것이고, 아니라면 아쉽지만 각자의 길을 가야겠지. 나는 아직도 2주에 한 번씩 병원에 가고, 30 분씩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고, 매일 저녁 약을 챙겨 먹는다. 2주라는 시간이 어떤 의미냐고 선생님이 나에게 물었을 때, 나는 1주는 너무 빠른 것 같아서 별로 할 얘기가 없을 것 같고, 3주는 너무 멀어서 무슨 일이 생겼을까 봐 안될 것 같다고 대답했다. 2주 만에 가도 별일 없이 잘 지내서 딱히 할 말이 없을 때도 있고, 2주간 너무 많은 일이 생겨서 미처 다 말하지 못하고 올 때도 있다.
모든 것에 지쳐서 아무랑도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아무 시간도 보내지 않을 때에는 거리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나 자신과의 거리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때 선생님은 나에게 달리기를 구경하고 있는 사람 같다고 했다. 자기가 참여하지는 않고 그냥 바라만 보니까 그렇게 지루함을 많이 느끼는 것이라고. 내가 조금은 우울의 늪에서 빠져나와 내 인생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 없어도 그만인 나에게 관심과 마음을 나눠주는 사람이 생겼을 때에도 거리에 대해서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에 그저 다 양보하고 퍼주려고만 했으니까. 없어도 그만인 난데, 그런 나에게 신경을 써주고 호의를 보여주다니. 뭐든 양보를 못 하겠을까.
조금 더 내 인생에 걸어 들어가서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게 되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었을 때. 내 생각이 나를 괴롭히거나, 타인이 나를 괴롭히도록 그냥 둬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을 때. 나만큼은 온전한 내 편이, 나의 보호자가 되어주어야겠다고 다짐했을 때. 역시나 이 우주에 나 하나쯤 없어도 그만인 건 마찬가지지만 나를 위해 거리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해도 어렵고 머리가 아파서 그냥 때려치워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조금씩 찾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나는 혼자 평화로운 것도 좋지만, 다른 사람들과 즐겁고 따뜻하게 보내는 시간도 소중하고 행복하기 때문에. 내가 건강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들과 즐겁고 따뜻한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도록 고민하는 시간들을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그 거리를 찾다가 사라져 버릴 수도 있지만 나보다 훨씬 공부를 많이 했을 선생님도 나랑 한참 얘기를 하다가, 관계라는 게 아무리 해도 어렵다고 했으니까. 필요할 때는 혼자서 평화롭게 시간을 보내면서 균형을 찾고, 또 조금 심심해지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내가 칠하고 싶은 색을 열심히 칠해갈 것이다. 그 그림이 어떻게 완성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칠해가다 보면 나는 분명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렸을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