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I 부록
(원래는 이렇게 이 책을 끝내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어서 만든, 단단하지만 뾰족하지 않은 마음이 된 줄 알았던 필자의 빠른 후기)
척척박사가 된 줄 알았는데 여전히 조빱이었다. 혼자 성숙한 척, 초연한 척, 자존감 높은 척, 멘탈 건강한 척, 어른스러운 척, 이제는 건강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척. 척이란 척은 다 했지만 나는 여전히 조빱이었다. 아무리 어른스럽게 생각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현명하게 행동하려고 해도,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적당히 거리를 두려고 하면, 내가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없고, 마음처럼 가까워질 수 없어서 짜증이 나서 하루 종일 웬일인지 기분 좋지 않은 상태로 보내야 했고, 하고 싶은 대로 해보고 표현하고 얘기하면 너무 좋아서 또 내 마음이 주체할 수 없이 폭발해버릴 것 같아서 무서웠다.
그래도 괜찮아, 으이그 나란 인간(하트 필수)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되고, 마음먹은 대로 되는 거였으면 애초에 인간이 아니지 않았을까? 그래도 내가 예전과 조금이라도 달라진 것이 있다면, ‘으이그 나란 인간♥’이라는 애정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봐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관계가 항상 무서웠다. “관계로 걸어 들어가지 말아야 하는 걸까요? 아니면 들어가야 하는 걸까요?” 나의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에 선생님은 관계에는 들어가야겠지만 영향을 많이 받지는 않아야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아니 근데 그게 마음대로 되냐고요.) 끌림이 있는 관계, 무엇인가와 관계가 깊어지고 가까워진다는 것은 곧 나를 알게 되는 과정이라고. 내가 똑같은 상황에서 이번에는 얼마나 달라졌을지, 얼마나 더 건강하게 해쳐나갈 수 있을지 겪는 시험 같은 것이 아니겠냐고.
/갑자기 과거 회상/
처음에 우울증이 찾아왔을 때 나는 손목을 긋고, 응급실에 실려갔다가 병원을 전전하며 2 년 만에 약을 끊었다. 병원은 나를 낫게 해주지 않았고, ‘결국은 세상에 나 혼자고, 나 혼자 이겨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으로 갑자기 불끈, 오기가 생겨서 괜찮아졌던 것 같다. 나는 이제 마음이 튼튼해졌다고, 누가 나를 싫어해도 이제 나는 아무 상관도 하지 않을 거고, 절대 다시 다치는 일도 없을 거라고 가시를 바짝 세우고 있었다.(feat. 미움받을 용기:그때 한창 빠져있던 책) 아무리 가까워지고 친해지는 사람이 있어도, 그다음 날 그 사람이 없어진다고 해도 나는 마음이 아프지 않을 거고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내 마음을 계속 담금질하면서 미움받을 용기를 갈고닦았다.
그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었는데 마음이 너무 아파서 많이 좋아하지 않고 그냥 그만둬버렸다. 그리고는 무표
정하게 며칠을 보냈던 적이 있다. 한창 독기로 똘똘 뭉쳐있을 때였다. 나는 이건 예방주사라고. 시간이 지나면 아무렇지도 않아질 거지 같은 착각이라고, 나는 이런 거에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거고, 이따위 고통은 시간 앞에 다 빛이 바래서 날아가버릴 것이라고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무표정하게 며칠의 시간을 보냈다.
/계속 회상/
그러다 정말 좋아하게 돼버린 사람을 만났을 때 예방주사 따위의 효과는 하나도 없었다. ‘지금 아픈 거, 아무것도 아니고 시간 지나면 다 괜찮아져.’ 그런 예방주사는 이 사랑에는 전혀 효과가 없는 것이었다. 시간이고 나발이고 고통스러워서 죽을 거 같으니까.
/다시 현재/
무섭게도 신경 쓰이는 사람이 생겨버렸다. 시험이 닥쳐왔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제 예방주사는 쓸모가 없는 것도 알고 있다. 관계에 들어가되 내가 무너질 만큼 영향을 받지는 않도록, 나는 끝없이 거리를 고민해야 한다. 그걸 잘 알고 있는데도 끌림이 있는 관계 안에서는 웬일인지 나를 내려놓게 되고 내가 그간 열심히 쌓아왔던 균형의 탑이 와르르 무너져버리고 만다. 아무도 좋아하고 싶지 않았는데, 더더욱이나 나한테 안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은 사람은 정말 좋아하고 싶지 않았는데. 우울해하는 게 꼭 예전에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가까이하지 말아야겠다 하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게 더 어려웠다. 내가 그 친구랑 계속 통화하고, 만나고, 신경 써주는 것들이 사실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다. 거기서 나올 수 있는 건 오로지 자기의 힘으로 나오는 방법뿐이라는 걸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다가갔다. 내가 그 친구에게 주는 마음은 내가 그 친구에게 선물한 책갈피 같았다. 책을 읽지 않는 그 친구에게는 쓸모도 없는 물건이지만, 내 딴에는 호의랍시고 좋아하겠지 싶어서 준 책갈피. 선물이라고 줬으니까 받았는데 버리지도 못하는. 책갈피를 계속 그
친구에게 주면서 그게 어느 순간에는 나한테 좋아하는 마음으로 돌아오기를 바랐던 것이다. 좋아하는 건 역시나 아팠다. 너무 아팠다. 마음이 아픈 건데 그게 통각까지 지배해서 손가락 끝이 저릿저릿했다. 내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닿지 않았고 아플 일도 없는데. 마음속에만 있는 감정인 게 분명한데. 분명하게 느껴지는 아픔은 내 착각인 걸까? 얼마나 아프길래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감정이 내 손가락 끝까지 아프게 만드는 걸까. 물리적으로 어떤 자극도 없는데 추상적인 감정이 물리적인 자극으로 환원되는 건 어떻게 이루어진 일일까. 아무래도 이 감
정이라는 것은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육신을 가지고 내가 슬퍼할 때마다 나를 괴롭히는 것 같다. 정말로. 아프거든. 그냥 몸이 아파. 누가 때리고 찌르고 짓누르지 않는다면 이렇게 아플 리가 없을 정도로 아파. 이건 너 때문이 아니야. 감정이라는 놈이 보이지 않는 육신을 가지고 있어서야. 절대로 너 때문이 아니야. 네가 아프게 하는 게 아니야. 너 따위가 나를 아프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나는 무엇보다도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을 멈추지 못하는 나를 보면서,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해서 아픈 게 아니라고 부정해보려고 했다. 나한테는 그 사람보다 내가 훨씬 소중하다고. 마음대로 될 리가 없이 그냥 아프기만 했다. 같은 과제 앞에서 또 좌절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다음날 눈을 뜨고 일어날 자신이 없었다. 내가 아무리 괜찮아도 괜찮은 게 아니었던 거다. 그냥 구제불능인 인간이었는데 내가 좀 괜찮아진 줄 알고 너무 오만하게 굴었던 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글을 쓸 자격도 없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나는 평화를 찾은 지 얼마 안 돼서 또 벌을 받아야 했는데, 이제는 벌을 달게 받으면서 살아나갈 자신이 없었다. 네가 이겼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인생인지, 고난인지, 내 마음을 괴롭혔던 사람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네가 이겼다. 이겨서 좋겠다. 내가 구제불능인 거였구나.
/유서/
제가 두 번째로 찾아온, 길고도 깊은 우울증을 조금씩 이겨내고 지내온 2019 년의 지난 6개월은 제가 살면서 가장 우울하고 죽고 싶던 시기를 지나서 조금씩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행복해져서 감사한 시간이었고, 그 시간이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을 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다들 고마워요. 저는 행복하게 지내다 갑니다. 진짜 안 슬퍼하길 바랍니다 제발. 남들이 저를 아프게 한 줄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제가 병신이었어요. 제가 한 헛소리들은 다 잊어주세요. 슬프고 마음이 아파서 더는 이걸 감당할 힘이 없는 것 같아요. 진짜 미안합니다. 더 이상은 정말 먹잇감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미안하지만 극복 같은 거 없습니다. 아주 죽을힘을 다해서 발버둥 쳐 나와도 또 똑같은 내가 풀 수 없는 과제가 나한테 주어지고, 또 죽을힘을 다하면 또 주어지고, 또 주어지고, 그냥 그렇게 평생 괴로워하다가 답을 고민하다가 끝나는 겁니다. 그러다 운이 좋은 어느 순간에는 반짝, 행복하다 혹은 즐겁다고 느끼면서 합리화하고 자기 위안으로 버텨가면서 그냥 거기에 수긍하고 순응하고 받아들이며 사는 겁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들과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들을 두서없이 적으면서, 그 와중에 통장 비밀번호와 잔액을 어떻게 쓸지에 대한 메모를 다이어리에 붙여놓고는 가방에 모든 짐을 쑤셔놓고 친구와 술을 먹었다. 나는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절대 술을 먹지 않는데 조금이라도 망설이면 오늘 죽을 수 없을 것 같았고 그러면 내일 아침 눈을 뜬 나를 죽도록 원망하면서, 찾아온 아침이 재앙처럼 느껴질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절대 다시는 이렇게 우울해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평화는 정말 빨리 끝나는구나. 그렇게 그렇게 건강해지고 단단해졌다고 생각해도 이렇게 무너지는구나. 나는 그걸 다시 겪으면서 다시 괜찮아질 자신이 없었다. ‘어차피 그렇게 죽을힘을 다해 괜찮아져도 또 금방 이렇게 될 거.’ 친구와 술을 먹으면서 계속 쏟아져 나오는 눈물을 냅킨으로 대충 닦아가며 그냥 내가 구제불능인 것 같다고 했다. 좋아하는 게 생기면 균형을 못 잡고 그거밖에 안 보이고, 흔들리고, 넘어지면서, 죽어도 끝까지 매달려야 직성이 풀리는. 이제는 건강해져서 다시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똑같은 상황이 되니 똑같이 그러는 거 보니까 내가 병신이었다고. 그리고 당연하게도 꼭 그렇게 좋아한 사람들은 필요할 때만 나를 찾다가 비겁하게 도망을 치면서 나를 쓰레기처럼 내다 버린다. 밤새도록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대면서, 술을 좀 취할 만큼 마셔야 집에 가는 길에 망설임 없이 뛰어내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술을 먹었다. 친구가 미안해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내 얼굴을 보고, 내 얘기를 들어주고, 나에게 마음을 써준 사람이니까. 내가 그냥 아파서 죽은 거라고 생각하라고, 얼마 전에 뉴스에서 봤는데 암보다 우울증이 사망률이 높다는 얘기를 해대면서 제발 아파서 죽었다고 생각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집까지 무사히 들어가는 걸 확인한 친구 덕분에 나는 집에 가는 도중에 어디 뛰어내리지도 못하고 조용히 집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내일 눈뜨면 진짜 죽지 못한 나를 원망할 것 같다고 괴로워하며 잠들었다.
‘이유 없이 우울해진 날’에서 ‘이유 없이 우울함이 사라진 날’로.
다음날 눈을 떴더니 웬일인지 괜찮았다. 생각보다 괜찮았다. 일어나서 생각보다 무덤덤하고 괜찮아진 마음에 놀랐다. 이유 없이 우울해진 적은 많아도, 이유 없이 우울해지지 않은 적은 없었는데. 한참을 ‘정말 괜찮은 건가?’라고 생각을 하다가 오랜만에 스트레칭을 했다. 내가 일상을 조금씩 되찾아갈 때 스트레칭을 했었다. 네모난 침대 안에서 스트레칭 영상을 켜놓고 이 넓은 지구 상에 표시도 안될 이 네모 안에서만큼은, 여기서 스트레칭을 하는 이 시간만큼은, 온전히 평화롭고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떠올랐다.
‘어떻게 이렇게 괜찮은 거지?’ 내 인생에 안전망을 잘 설치해 놓았다. 내가 갑자기 연락이 안 되거나 SNS에 평소와 다르게 부정적인 글을 퍼부어대거나 하면 괜찮냐고 무슨 일 있냐고 물어봐 주는 친구. 한참 연락이 없었다가 앞뒤 맥락도 없이 갑자기 ‘뒤지고 싶다.’라고 해도 의아해하거나 나무라지 않고 어디냐고 물어봐 주는 친구. 같이 맛있는 거 먹자고 하고, 밥 사주고, 술 사주고. 내가 들어먹지도 않는 긍정적인 얘기를 해대며 어떻게든 죽지 않게 설득을 하려고 애를 쓰다가, 죽어도 내가 안 들어 처먹으니까 에라 그러면 같이 죽자면서 집까지 데려다주고 내가 집에 제대로 잘 도착했는지 걱정해주고 신경 써주는 친구. 나의 부족한 부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친구. 남들이 나에게 상처 주지 못하게 가시를 세워 뾰족하지 않더라도, 내가 다치지 않을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상처 받을 상황이 되니 마음에서 다시 뾰족한 가시들이 삐쭉삐쭉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가만히 지켜보거나 가라앉을 때까지 참지 못하고 어딘가에 화를 내고 싶었다. 떠오르는 사람들은 여럿 있었지만, 그 대상이 정확히 누군지도 모르겠고, 그게 한 사람인지, 여러 사람인지, 현실의 한 인물인지, 아니면 여러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했던 내가 싫어하는 인격들의 합동 체인지도 모르겠는 그 대상에게, 예전에 분명 누군가에게 쏟아부었던 적이 있는 것 같은 비난의 그들을 싸질러 놓고는 또 사람들을 걱정시켰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 정말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내가 했던 말들 중에 가장 쓰레기 같은 말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공격적이고 치졸하고 거지 같은 말들이었다. 나를 상처 줬던 모든 사람들을 싸잡아서 원망하고 저주하는 글이었다. 사람들이 내 밑바닥을 보고 싫어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충동적으로 휘갈긴 글에 어떤 사람들은 비난을 해왔고, 어떤 사람들은 뜻밖의 걱정을 해왔다. 내가 부족하고 실수하는 모습을 보여도 실망할 사람들은 실망하고, 걱정하고 감싸 안아주는 친구들은 그렇게 해준다. 내가 부족한 모습을 보여도 감싸 안 아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생각보다 놀라운 경험이다. 그걸 나 자신이 해주는 것도 그렇고, 타인이 나에게 해준다는 것은 더더욱. 내 존재에 부족하고 완벽하지 못한 부분이 있더라도 내가 나를 부정하지 않게 된다. 어차피 내가 신도 아니고 아니, 신조차도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는데 내가 어떻게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일 수 있겠나. 어떨 때는 그런 친구들이 있는데도 그게 하나도 의미 없이 느껴질 때도 있다. 어차피 그 친구가 내 인생을 책임져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가 공허해지는 모든 순간마다 같이 있어줄 것도 아니고. 내가 내 몫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빌빌 거리는 모습을 내 친구들에게 계속 보인다면 친구들은 얼마나 속이 상하고 답답할까. 차라리 내가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그래, 그렇게 사라져 버리면 그만인 난데, 뭐라고 이렇게까지 신경 써주고 걱정해주고 챙겨주고 같이 속상해해 주는 건지.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내가 자기들한테 대단히 도움이 되는 사람도 아닐 텐데. 나 하나 죽는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텐데, 뭐 잠깐은 슬플 수도 있겠지만 또 아무 일 없이 일상을 살아갈 수 있을 텐데.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주는 것일까. 아무것도 아닌 나를 위해서 내일 출근이라 피곤할 텐데도 아무리 들어줘봤자 소용없는 나의 우울한 소리를 밤새 들어준 친구의 따뜻한 마음이 나를 밤새 토닥여준 덕인지, 다음날 눈을 떴을 때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어제의 절망적인 기분은 사라져 있었다. 신기했다. 아무 이유도 없이 문득 우울해진 적은 많았지만, 아무 이유도 없이 문득 괜찮아진 적은 없었기 때문에. 한 번만 더 찾아오면 다시는 참지 않고 바로 죽어버릴 거라고 생각했던 우울을 생각보다 쉽게 너무 기고 나니 다음에 찾아와도 생각보다 쉽게 넘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가 생겼고, 내가 이 정도는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은 힘이 생겼나 보다 하는 믿음이 생겼다. 아마도 훨씬 큰 파도가 나를 덮쳐오면 그때는 또 오래 걸릴 수도 있겠지만 그때도 지금을 생각하면서 조금은 견뎌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내가 힘을 찾을 때까지 기다려주고, 조금은 주변의 따뜻한 사람들로부터 돌봄을 받고, 그러다 보면 또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생각보다 괜찮네?”라는 승리의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사실 모르겠다. 나도 항상 해답을 찾던 사람이라서 온갖 무기력증과 우울증에 관련된 책과 영상과 자료와 강의 등등을 찾아봤지만 뾰족한 해답은 없었다. 문득 괜찮아진 뾰족한 이유가 있다면 당장에 알려줬을 텐데. 하지만 내가 확실하게 알려줄 수 있는 것은 나도 절대 괜찮아 수 없을 것 같았던, 정말 정말 구제불능의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럴 수도 있다.
여전히 나란 인간은 같은 과제에 부딪히면 죽을 것처럼 괴로워하고 흔들리는 조빱이지만, 조금씩 일상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조금씩 조금씩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가며,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보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거 하면 한방에 우울해지지 않고, 단번에 괜찮아지고, 인생이 바뀌는 방법은 나는 찾지 못했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해볼 수 있는 게 있으면 했다. 병원을 다니고, 약을 먹고, 내 마음을 달래주는 글을 읽기도 하고, 내 마음을 정리하는 글을 쓰고, 글을 읽기가 싫을 때는 안 읽고, 쓰지도 않고, 누워있고 싶을 때는 그냥 누워있고, 샤워하고 싶을 때는 샤워하고, 그것도 힘들 때는 그냥 쉬고. 그러다 운동을 할 수 있을 때는 해보고, 또 그러다 힘들 때는 하지 않고. 작은 거라도 내 기분을 맞춰주려고 애쓰고, 내가 내 기대보다, 또는 다른 사람들의, 사회의 기대보다 못해도 내가 나를 괴롭히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나한테 행복한 것인지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조금은 고마움을 나누고, 일상을 되찾고, 거기에 감사하고, 나름대로 보람을 느끼면서 일할 수 있는 직업을 찾고. 갈수록 더 어려운 거라서 ‘이런 건 너였으니까 가능한 거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 모든 것은 그냥 쉬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거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나처럼 회사를 그만두고 하루 종일 쉴 수만은 없겠지만, 적어도 먹고살기 위한 일을 하고 있다면, 나머지 쉬는 동안은 자기 자신을 괴롭히지 않도록, 그래서 그 시간만큼은 정말 온전히 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니까. 일주일 내내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그중에 딱 하루, 1 시간을 투자해서 병원을 갔다 온 것이 다였다면, 그래도 괜찮다. 그렇게 힘든 데도 살아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나의 할 일은 다 한 것이다. 그런데 병원까지 다녀왔다니 대단하잖아? 그게 내가 그때에 할 수 있는 만큼이라고 생각하고, 조금 더 할 수 있을 때 하면 되고, 할 수 없으면 그냥 하지 말고. 하지 못하더라도 나를 괴롭히지 않기. 쉴 수 있는 만큼은 최대한 쉬면서 나를 괴롭히지 않기. 나를 괴롭히지 않기 위해 필요한 말이든, 글이든, 아무거나 가져다 써도 된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 내가 에너지를 찾기 위해서 하는 것들이니까.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그렇게 내가 에너지를 되찾았을 때 조금씩 조금씩 내가 하는 일들이 정말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 같다. 어떤 것은 내가 한 수고에 비해서 아무 효과도 없는 것처럼 보여서 더 절망했을 때도 있지만, 정말 차곡차곡, 하나하나, 쌓아갔을 때 비로소 찾아오는 어려운 것이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보면서 기다려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울할 때는 절대 그 가치를 알 수가 없다. 무엇을 보아도 아무 의미가 없이 느껴질 거니까. 시간이 걸리더라도 거기서 나왔을 때, 햇빛에 반짝이는 푸른 나뭇잎을 바라보는 순간의 가치를 재평가해보았으면 좋겠다. 이겨내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분명히. 그리고 그 순간을 경험하고 나면 그다음에는 더 쉽게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면 용기가 생기고 믿음이 생기고 두렵지 않아 질 것이다. 그렇게 나와서 용기가 생겼을 때, 오로지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에게는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을 찾아 각자만의 그림을 꼭 완성해 보기를. 그게 대단하든 대단하지 않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누가 평가할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