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하지만 뾰족하지 않은 마음

에필로그

by 최서연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힘든 나의 마음을 그대로 써놓은 것 같은 글을 보며 ‘맞아 맞아, 진짜.’ 그렇게 공감하면서 빠르게 책장을 넘겼다. 결론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래서 어쩌라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해결된다고? 어떻게 해야 여기서 벗어날 수 있냐고? 그래서 이렇게 힘든 게 다 무슨 의미인 거냐고? 내가 읽은 책들은 아무리 책장을 서둘러 넘겨도 나에게 답을 주지 않았다. 책 한 권을 읽는다고 나의 우울함이 거둬지지는 않았다. 뭐라고 해보려고 발버둥 쳐봤지만 그럴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더 나아질 게 없었고, 그냥 다 사라져 버렸으면 했다. 철학자들은 인생을 한 마디로 정의 내리는 것을 자신의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평생을 공부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나도 철학을 공부하고 좋아하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인생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되어 있는 진리를 찾으려고 했다. 아니면 내가 그 한마디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지금쯤 와서 생각해보건대 그 한마디는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다 그 과정에 있으니까. 적당한 말로 결론을 낼 수도 있긴 하겠다. 근데 그게 끝이 아니니까. 어떻게든 또 변하고, 내가 지금에 끝맺은 한마디로도 해결이 안 되는 것이 분명 나에게 찾아올 것이니까.


우리는 함께 그 과정을 걷고 있다. 이 여정이 어떻게 끝맺음이 될지, 이 여정의 끝에서 ‘결국은 이거였구나.’ 하면서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게 될지 모를 일이다. 이유도 모르면서 걷고 있기는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분명 나만의 방식으로 이 길을 색칠하며 걸어왔을 것이다. 나도 잘 모르는 새에. 나는 이게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분명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특별해 보일 것이다. 누군가가 특별하게 생각해주지 않아도 특별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특별하다는 말이 사실은 그 모든 것이 특별하지 않다는 거랑 똑같다는 말에, 지금의 나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무지개의 일곱 가지 색깔은 모두 다르지만 어느 한 색깔이 더 뛰어난 건 아니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 색깔들이 다 별거 아닌 것도 아니니까. 그게 누구에게 별거이고, 또 별거가 아닌지? 나는 나에게 별거인걸 찾으면 되지.



그냥 우리는 계속 계속 걸으면서 이렇게 만납시다. 책으로도 만나고, 길에서도 만나고, 친구로도 만나고, 운이 좋지 않으면 서로 싫어하는 사람으로 만날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그렇게 만나서 별거 아닌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가끔씩은 따뜻한 마음을 나누기도 하고, 잠깐은 따뜻해진 마음을 기운 삼아 또 걸어봅시다. 걷다 보면 나만의 색깔로 채워진 한 폭의 수채화가 내 뒤에 그려지고 있을 거예요. 우리는 마지막 순간에서야 뒤돌아 그 그림을 볼 수 있겠지만, 그래도 이 순간에는 그냥 걸어갑시다. 무리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그저 내가 할 수 있을 만큼씩만. 내가 그린 그림인데 이왕 걷기 시작한 거 무슨 그림 인지 못 보면 아깝잖아요. 60 억의 인구가 60 억 가지의 각기 다른 행복한 수채화를 그리려고 태어났는데 아직 그 과정이라 길을 잃고 헤매는 것뿐이에요. 헤매는 그 발걸음 조차도 내 그림의 일부겠지요!


행복을 그리려는 길에 많은 유혹이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히겠지만, 그런 것에 눈을 감고, 누구도 아닌, 내가 원하는 것에 눈을 떴으면 좋겠습니다. 혹은 지금 너무 지쳐서 아무것도 그릴 수 없을 것 같다면, 지금은 그저 나를 돌보아주세요. 지금 당장 대단한 이유를 찾을 수는 없을 거예요. 아픈 사람에게 회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지금 당장 어떤 멋진 그림을 그릴 건지 생각해내라고 한다면, 어떻게 생각해내겠어요. 지금은 이유를 생각하지 말고, 거기서 아낀 힘은 그저 당신이 쉴 수 있도록 하는데 써주세요. 그리고 조금씩 걸어갈 수 있을 힘이 생기면 한걸음 씩 내디뎌보고, 옆에 친구가 걷기 힘들어할 때 손을 잡아주는데 쓰기도 하고요. 저도 그렇게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면서 여러분을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관계에 들어간 저는 또 실패를 하게 될지, 이번에는 건강하게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 잘은 모르겠습니다. 저는 또 저만의 해답을 찾아서 걷고 있는 중이겠지요. 이 책은 제가 우울함과 무기력함의 늪에서 나와 마음의 행복을 찾은 이야기를 썼습니다.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조금은 기운을 차릴 수 있기를,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지기를 바랐는데, 이 글로 당신이 조금은 마음을 편하게 먹고 걸아갈 수 있도록 설득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 다. 근데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 저의 글솜씨가 부족하기 때문이겠지요.


저는 단단하지만 뾰족하지 않은 마음을 가지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많이 단단해진 후에도 가까운 사람들의 뾰족한 말들이 저를 찌를 때도 물론 있었습니다. 그전보다는 담담히 지나갔지만 아린 느낌은 여전했습니다. 이제는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합니다. 그런 뾰족한 말들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단단하지 못한 마음을 숨기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래도 이해하기가 어려울 때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합니다. 최대한 그 생각과 빨리 멀어질 수 있도록, 그 생각을 빨리 떨쳐버릴 수 있도록, 그 말과 그 사람과, 그 생각과 멀어질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합니다. 좋아하는 음악에 집중을 해보든지, 재미있는 영상에 정신을 팔던지, 그 말에 깊이 빠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빨리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서운함을 그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보다 그 사람의 연약한 부분을 방어하기 위해서 뾰족했다는 것에 조금의 안타까움을 가지는 것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그게 내가 그 사람보다 훌륭하다거나, 그 사람이 나보다 못하다는 뜻은 아니에요. 우리 모두 부족한 부분이 있고, 내가 약한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뾰족하게 굴 수도 있으니까. 그 사람도 아마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뾰족하게 굴었다는 것을. 하지만 인정하는 것까지 바라지는 않아요, 이제. 사과하는 것까지는 바라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이제.


다만 나의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의 여린 부분이 뾰족한 말 뒤에 숨어서 아무도 모르게 계속 계속 상처 받기보다는, 단단해져 가길 기다린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모두가 단단하지만 뾰족하지 않은 마음이 되어서 서로를 아프게 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제가 정말 힘들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정말 듣기 싫어했는데 결국 이 말로 마무리를 짓네요. 지금 힘을 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지금 괜찮아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시간이 필요할 뿐인 거니까요,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 줄 거예요. 세상에 누구 하나쯤은 기다려 줄 거예요. 버티기만 했더라도 당신은 오늘의 할 일은 다 해낸 겁니다. 그렇게라도 버티고 있는데 기다려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다면, 나 조차도 나를 기다려줄 수 없으시다면, 저는 마지막까지 기다리고 있을게 요. 설득도 못한 주제에 기다리기라도 해야죠. 지금도 기다리고 있고, 앞으로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또 다른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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